선관위, 반론으로 의혹 잠재우기에 부족
부정선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 아니다
법관, 위원장직은 선관위 독립성과 공정성 담보책
특검 거부, 불순한 정치적 의도 있다고 생각

부정선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과거에는 선거에서 패배한 일부 정치인들이 물증이라고 내세우며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조작의 근거라는 통계적 수치까지 등장해 국민들을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은 탄핵 반대 집회나 유튜버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참조), 의혹을 잠재우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선관위 해명에는 아예 귀를 막아버리는 분위기다. 필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에 관해 설명하지만, 그때마다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듯하다.
부정선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7년에 실시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컴퓨터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선관위에서는 컴퓨터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었음에도 마치 사실처럼 되어 버렸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2.33%P, 약 57만 표 차로 패배하자 “전자 개표기 조작으로 부정 개표를 했다”라고 주장하며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1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국 80개 개표소에서 전체 투표수의 44.6%인 1104만 9311표를 수작업으로 재검표한 바 있다. 그 결과 당선자인 노무현 후보는 785표 줄고 이회창 후보는 135표 늘어난 데 그쳤다. 조작도 없었고 개표도 사실상 완벽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2017년에는 방송인 김어준 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의 부정 의혹을 다룬 영화 ‘더 플랜’을 제작‧상영하기도 했다.
과거에 문제가 됐던 이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란 게 확인됐듯이, 현재 제기되고 있는 각종 부정선거 의혹도 사실이 아님은 이미 법원의 검증과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1대와 22대 총선, 20대 대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관련 소송 182건 중에서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32건을 제외한 150건 모두 기각되거나 각하, 소 취하된 것이다. 그러자 법관들이 선관위 위원장을 맡고 있으니 짬짜미하는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난무한다. 법관들이 위원장직을 맡는 것은 선관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창설 초기부터 관행적으로 운용되어 온 장치인데, 이젠 그마저도 시비의 대상이 되고 불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논란이 되는 부정선거 의혹은 국론분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국민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1월에 실시된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 여론조사에 의하면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라는 응답이 43%(매우 공감 30%, 대체로 공감 13%)였다(공감하지 않는다는 54%). 전체 국민의 반 정도가 부정선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과 지역, 세대로 갈라진 나라가 더욱 분열되고, 공고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데도 이를 해소해야 할 선관위는 불신의 대상이 됐고,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까지도 같은 편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다. 이처럼 선관위도 사법부도 못 믿는 상황이라면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방법밖에 없을 듯하다.
특검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낱낱이 밝히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견해에서는 억울함을 풀고 싶을 것이고, 부정선거라고 믿는 처지에서는 실제로 어떤 부정행위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저질러졌는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확인해야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부정선거로 다수당이 됐다는 의심을 받는 민주당이나, 부정선거를 맹신하는 일부 열렬 지지층과 합리적인 중도층 사이에서 어정쩡한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특검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거부한다면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여야 합의로 ‘부정선거 의혹 진실 규명을 위한’ 특검을 하자. 특검을 통해 의혹의 중심에 있는 중앙선관위 서버도 확인하고, 지금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면 작금의 국가적 혼란과 국론분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다만, 특검 시기는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망국적인 부정선거 의혹, 더 이상 선관위에게만 모든 책임을 미룬 채 방관하지 말고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소책을 강구해야 한다.

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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