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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가격 도미노 인상… “어수선한 정국 틈타 안 오른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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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물가가 심상치 않다. 매달 가격 인상 소식이 흘러나온다. 탄핵 정국에 눈치 볼 수장도 사실상 없다 보니 정부의 물가 상승 통제 시도도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식품사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 기후에 따라 원룟값이 올랐고,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마저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어서(원화 가치 하락) 손익 관리 차원에서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서민들이 식품 가격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 커피·맥주·빵·아이스크림… 이어지는 가격 인상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식품사들이 꾸준히 제품 가격 인상을 공지하고 있다. SPC그룹의 비알코리아가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는 이날부터 아메리카노 가격을 400원 올린다.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더벤티도 가격 인상 행렬에 동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을 이달부터 200원 올려서 판매하고 있다. 컴포즈커피도 지난달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을 1500원에서 1800원으로 30% 올렸다. 캡슐커피도 예외는 아니다. 네스프레소는 캡슐 커피 가격을 개당 81원 인상했다.

커피와 함께 소비되는 빵과 케이크 가격도 올랐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베이커리 브랜드 뚜레쥬르는 이달 1일부터 빵류 94종과 케이크 16종 등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했다. 식사 대용으로 많이 팔리는 데일리 우유식빵은 3500원에서 3600원으로, 단팥빵은 1800원에서 1900원으로 올랐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지난 2월 빵과 케이크 약 120종의 가격을 평균 5.9% 올렸다. 같은 그룹사 던킨도 도넛 가격을 평균 6% 올렸다. 이에 따라 던킨의 대표 제품인 스트로베리 필드 도넛은 1900원에서 2000원으로 100원 올랐고, 카스텔라 도넛은 3700원에서 200원 인상됐다.

맥주와 차 음료 가격도 올랐다. 롯데아사히 주류는 이달 맥주 가격을 최대 20% 인상한다고 밝혔다. 아사히 수퍼드라이 캔맥주(350㎖)는 3500원에서 4000원으로 14.3% 오른다. 차 음료인 웅진식품의 하늘보리(500㎖)와 옥수수수염차(500㎖)의 편의점 가격은 10%가량 올랐다. 아침햇살 500㎖나 초록매실 500㎖ 등의 가격도 2150원에서 2350원으로 올랐다.

아이들 간식 가격도 만만치 않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빙그레의 붕어싸만코나 해태 부라보콘, 롯데웰푸드의 월드콘은 모두 종전보다 300원 오른 2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식품업계에서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고환율에 원가 상승, 가격 인상 안 하면 기업 운영 힘들어”

식품사들은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선 수익을 낼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원화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경영 상황이 어려워졌다. 최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5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 전쟁이 시작된 것도 문제지만, 작년 12월 나온 비상 계엄령에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를 떨어트리는 데 한몫했다.

금융시장에선 1500원대 천장을 뚫는 것도 가능하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와 환율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관세 압박과 무역 갈등은 결국 미 달러화의 강세로 연결되고 상대국 통화의 절하로 이어진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높이면 중국은 위안화 가치 절하를 통해 관세 인상 여파를 줄이려 하고 이에 연동해서 국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 시각) 예고한 대로 중국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원재룟값도 올랐다. 이상 기후 탓이 크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가격은 2023년 이후 3배 정도가 됐다. 작년 12월엔 5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산지인 코트디부아르·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에 연달아 찾아온 수해와 가뭄 탓이다. 장마엔 평년의 두 배 이상의 비가 내리더니 겨울엔 엘니뇨가 찾아오면서 카카오나무가 타들어 갔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엘니뇨는 호주에도 영향을 미쳐서 밀 가격을 오르게 했다. 여기에 오랜 기간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밀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 국내 밀가루 소비량은 연간 200만t에 이르지만 이 중 국내 생산량은 단 1만6000t 수준이다. 한국의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99%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베트남과 브라질에 닥친 가뭄과 폭우는 커피콩 가격을 밀어 올렸다. 던킨 관계자는 “국제 커피콩 상승에 연동해 가격을 올리는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방배동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열린 '식품업계 현안 해결을 위한 간담회'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과 김명철 한국식품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방배동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열린 ‘식품업계 현안 해결을 위한 간담회’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과 김명철 한국식품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官 목소리 먹히지 않는 식품업계… 서민 직격탄

식품 가격 인상이 이어지자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나서고 있지만 실상 효과는 크지 않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1일 송미령 장관 주재로 17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 가공식품 물가 안정을 논의했다. 이어 박범수 차관도 외식업계 간담회를 열어 “수익이 줄어 가격을 올리고, 이에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인해 외식업계 전체가 불황의 늪에 빠질 것이 가장 우려된다”면서 사실상 가격 인상 자제를 부탁했다.

송 장관 주재 만남에 참여한 기업은 CJ제일제당, SPC삼립, 남양유업, 농심, 동서식품, 동원F&B, 대상, 롯데웰푸드, 롯데칠성, 매일유업, 빙그레, 삼양식품, 샘표식품, 오리온, 오뚜기, 일화, 풀무원식품 등 17개 식품 기업의 대표와 임원이다. 이들 기업 중 최근 1년 새 가격을 올리지 않은 곳은 네 곳 정도다. 참석 기업의 75%가 이미 가격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탄핵정국에 행정부 수장이 사실상 없는 격이라는 점에서 식품사들이 가격 인상 억제에 동참하길 꺼리고 있다는 것이 식품업계의 중론이다. 한 식품사 관계자는 “정부의 물가 통제에 참여한다고 해서 어떤 호의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올릴 수 있을 때 가격을 올리고 나중에 가격을 인하하거나 덜 올리는 선택이 기업 입장에선 합리적”이라고 했다.

식품 가격 인상의 직격탄은 저소득층이 맞을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일수록 처분가능소득에서 식품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식품가격이 오르면 먹는 양 자체를 줄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식비 부담은 월평균 43만4000원이었다. 작년 처분가능소득(103만7000원)의 45%를 식비에 썼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인상이 잇따르면 서민층 부담이 커져서 아예 소비 자체를 줄이고 안 하는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식품 가격의 도미노 인상이 단기적으로 기업 이익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비 빙하기 악순환을 부추길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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