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궁화는 나라꽃이기 이전에 겨레의 꽃이었다. 무궁화는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에 걸쳐 겨레의 꽃이었기에 오늘날 나라꽃이 됐다. ‘애국’과 같은 이념적 상징보다 국민 곁에서 동고동락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30여년간 무궁화 선양사업과 학술연구에 집중해온 김영만 신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무궁나라 대표)는 4일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궁화는 수백 년에 걸쳐 우리 선조들의 생활공간에서 함께해온 백성의 꽃이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우리 민족과 무궁화의 역사적인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무궁화는 고려 말 이전부터 500년 넘게 산울타리(산나무를 촘촘히 심어 만든 울타리)로 활용됐다”며 “무궁화는 조상들의 생활 공간 속에서 친숙하게 녹아들었고 이것이 무궁화와 우리 민족 간 관계의 시작점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무궁화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결집과 통합의 구심점이자 희망의 표상이 됐다.
김 교수는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울타리로 쓰이던 무궁화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겪으며 민족적 자각으로 인해 국토상징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며 “일제강점기 국권이 빼앗기는 아픔 속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조들은 무궁화를 ‘조선의 국화’라 부르며 다시 한번 그 의미가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궁화는 민중에 의해 그 상징성이 확장돼왔다. 무궁화꽃은 피었다 지는 생물일 뿐이지만, 평상시 제대로 관리하고 나라꽃 명맥을 잇도록 해야 한다”며 “법제화는 무궁화와 민족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하나의 수단이고, 이를 통해 무궁화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무궁화의 법제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궁화를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 하와이주의 무궁화 활용을 좋은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하와이는 주화(州花) 하와이무궁화를 활용해 셔츠나 기념품 등 문화상품을 개발·보급하면서 전세계에 하와이를 널리 알렸는데, 정작 무궁화를 국화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멈췄다”며 “우리 토종 무궁화의 표준형을 마련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문화상품과 콘텐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사회에서 국화가 국가상징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하와이 무궁화처럼)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상품 개발이 필수적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급·확산시켜 국가문화브랜드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국가상징을 기반으로 문화브랜드가 형성됐을 때 국민 자긍심이 높아지고 전세계에 국가상징을 인지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나라꽃 무궁화 법제화’를 사회적 의제로 확대시킨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가 운영했던 무궁나라 소속 어린이기자단이 주도해 ‘무궁화 기념일’을 제정하자고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1만명 넘는 어린이가 서명에 동참했다. 이는 오늘날 알려진 ‘무궁화의 날’(8월 8일)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를 계기로 심대평 당시 자유선진당 의원이 ‘대한민국 국화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하는 등 무궁화에 대한 입법이 촉발됐다. 또한 무궁화에 대해 주먹구구식 접근이 전부였던 정부부처에 체계적인 보급·관리·육성 정책의 필요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김영만 교수는 현재까지 정치권이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국화 지정 입법을 누구보다 답답하게 지켜봐왔다. 산림청 ‘제2차 무궁화 진흥계획’(2023~2027) 수립에 기초자료로 활용된 ‘무궁화 중장기 정책방향 정립 및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부부처 주관 토론회에 참여하는 등 나라꽃 진흥을 위해 정책 현장을 뛰면서다.
김 교수는 무궁화 국화 지정을 위해 국회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02년 ‘대한민국 국화에 관한 법률’이 처음 발의된 이후 20년 넘게 통과되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반대, 통합법안(여러 상징물을 하나의 법안에 묶은 의안)이냐 개별법안(애국가·무궁화 등을 별개로 다룬 의안)이냐 하는 쟁점이 있었다.
이후로 행안부가 “반대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냈고, 통합법안과 개별법안의 갈등은 개별법 추진으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걸림돌이 해소됐으나 정작 이제는 20년 넘는 오랜 논의에 관심 갖고 발의하는 의원이 없다.
김영만 교수는 “무궁화는 우리 역사에서 민족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결집과 통합의 구심점이자 희망의 표상이 됐다. 무궁화는 일개 생물이지만 우리 민족과는 특별한 관계를 이어온 꽃이었다”며 “겨레꽃으로 시작돼 나라꽃이 된 무궁화의 진흥을 위해 법제화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다예 기자 pdyes@incheonilbo.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