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지난해 핵심 고객인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를 상대로 영업·판매에서 호조를 보여 ‘역대급 실적’ 중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SK하이닉스가 공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판매법인 ‘SK하이닉스 아메리카’는 지난해 매출 33조4천859억원, 순이익 1천49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매출(12조5천419억원)과 비교하면 약 2.6배 증가한 수치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66조1천930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썼다.
이런 성장세는 2023∼2024년 사이 반도체 업황이 하락기에서 상승기로 전환한 것과 고대역폭 메모리(HBM)·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DDR5 등 인공지능(AI) 메모리에 대한 빅테크 수요 확대가 맞물려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3분기(누적)까지 국내외 지역별 매출 총계(46조4천259억원)에서 미국 매출은 58%(27조3천58억원)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어디(국가)냐에 따라 지역별 매출이 집계된다. 가령 엔비디아가 대만에서 HBM을 수입해 AI 가속기를 만들더라도 미국으로 매출이 잡히는 식”이라며 “모바일용 수요가 몰리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서버용 제품(AI 메모리)을 사들이는 빅테크들이 몰려 있어 이들 수요가 커지면 미국 매출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올해 HBM 물량을 ‘완판’한 상태다. 올해는 5세대 HBM인 ‘HBM3E 12단’ 제품에 주력하는 가운데 상반기 중 HBM3E 16단을, 하반기에는 ‘커스텀(맞춤형)’ 제품인 6세대 HBM4 공급을 본격화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실적발표 뒤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회사의 HBM 매출은 강한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전년 대비 100%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며 “올해는 ASIC(에이직) 기반의 HBM 고객 수요도 의미 있게 증가함에 따라 고객 기반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 밝혔다.
ASIC(주문형 반도체)은 오픈AI, 브로드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SK하이닉스 아메리카는 미국 빅테크를 대상으로 한 영업·판매 활동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주법인은 HBM의 검증 및 양산 과정에서 회사와 고객사 간 소통 채널을 열고, 회사가 제시하는 설루션과 고객의 요구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와의 영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류성수 HBM비즈니스 담당(부사장)이 새로운 미주법인장 책임을 맡아 글로벌 빅테크와의 HBM 파트너십 강화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HBM3E 출하량 확대로 작년 4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36.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인 삼성전자(39.3%)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3일(현지시각) 대만 반도체업체 TSMC가 미국에 1천억달러(약 145조9천억원)를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TSMC의 웨이저자 회장은 이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바로 이곳 미국에서 만들어질 것이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TSMC가 만들 것”이라면서 “이것은 경제 안보는 물론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말했다.
전임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을 비판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업체들에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를 압박한 결과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에 대한 반도체법 보조금 취소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 미주법인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 상황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SK하이닉스 아메리카의 호실적을 이어가려면 영업·판매를 넘어 현지 생산시설 확대 등 직접투자에 더 적극 나설 것을 종용하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압박이 더 거셀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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