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복수국적자 급증에 형평성 논란
정부, ‘거주 요건’ 도입 검토… 논란은 여전

“이걸로 어떻게 살라는 건가요?”
A씨(72)는 매달 국민연금으로 50만 원도 채 받지 못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젊었을 때부터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해 왔지만, 막상 은퇴 후 받아보니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A씨는 “그래도 기초연금이 있어서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연금도 오를 기미가 없고, 물가는 계속 뛰는데 이걸로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최근 A씨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처럼 오랫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한 사람이 아니라, 국내에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은 복수국적 노인들도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우리는 꼬박꼬박 냈는데, 누군가는 그냥 와서 받아가는 거 아니냐. 이게 과연 공정한 거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연금 효과 약화… 노인 빈곤율 다시 상승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38.2%로 2년 연속 증가했다.
노인빈곤율은 2013년 46.2%에서 2021년 37.6%까지 점차 줄어들었지만, 최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확대가 멈추면서 빈곤율 감소세가 멈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기초연금의 인상 폭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노인빈곤율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며 “연금제도의 개혁 없이는 개선이 어렵다”고 경고했다.
복수국적 노인, 연금은 받지만 세금은 안 냈다?

한편,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기초연금이 외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복수국적 노인들에게도 지급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초연금을 수령한 복수국적 노인은 5,699명으로, 2014년(1,047명)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이 받은 연금 총액도 2014년 22억 원에서 2023년 212억 원으로 9배 넘게 늘었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국내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복수국적자는 해외에서 거주하며 경제활동을 했기 때문에 연금 재원 조성에 기여한 바가 적다. 그런데도 국내 저소득 노인과 동일하게 연금을 지급받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한 연금 전문가는 “해외에서 재산을 형성했거나 연금을 수령하고 있어도 한국 정부가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복수국적자는 소득인정액이 낮게 산정돼 기초연금을 더 쉽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복수국적자의 평균 소득인정액은 34만 원으로, 단일 국적자의 58만 원보다 훨씬 낮았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기초연금은 보편적 복지제도다. 복수국적자라고 해서 가난한 노인을 차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초연금을 주지 않으면 의료급여나 생계급여 같은 다른 복지 혜택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거주 요건’ 도입 검토… 해외 사례는?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 요건에 국내 거주 기간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연금개혁안을 통해 “국내 기여도가 낮음에도 기초연금을 받는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세 이후 5년 이상 국내 거주 요건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국가가 기초연금 지급을 위해 일정 기간의 국내 거주 요건을 두고 있다.
덴마크는 내국인의 경우 3년, 외국인은 10년 거주해야 하며, 캐나다는 18~64세 사이 최소 10년 이상 거주해야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호주는 10년 거주 요건을 두고 있으며, 35년을 채워야 연금을 전액 지급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거주 요건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노인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해 처음부터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연금정책 전문가는 “처음에는 3~5년 정도의 최소 거주 요건을 적용한 후, 점진적으로 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제도가 급격히 바뀌면 기존 수급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이 지연될수록 국민 부담은 커지고 복지 사각지대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거주 요건 도입을 비롯해 기초연금 구조 개편에 나설지, 국민연금 개혁과 맞물려 어떤 방향으로 조정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