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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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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9월5일(현지시간)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지코드에서 방역복을 입은 인부들이 뇌염을 유발하는 전염병 니파 바이러스(Nipah Virus)로 사망한 모하메드 하심(12)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이송하고 있다. 7일 인도 언론에 따르면 하심이 사망한 후 유사 증상을 호소한 환자가 11명으로 늘었다.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고열과 두통, 어지러움, 호흡곤란, 정신 착란 등을 겪으며 치사율이 최대 7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2021년 9월5일(현지시간)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지코드에서 방역복을 입은 인부들이 뇌염을 유발하는 전염병 니파 바이러스(Nipah Virus)로 사망한 모하메드 하심(12)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이송하고 있다. 7일 인도 언론에 따르면 하심이 사망한 후 유사 증상을 호소한 환자가 11명으로 늘었다.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고열과 두통, 어지러움, 호흡곤란, 정신 착란 등을 겪으며 치사율이 최대 7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1998년 말레이시아 북부의 한 농장에서 돼지들이 갑자기 호흡기 질환을 앓았다. 뒤이어 농장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265명이 뇌염을 앓았고 그중 105명이 사망했다. 40~75%의 사망율, 치명적인 인수공통감염병.

그 농장은 3만 마리의 돼지를 사육했는데 주변에 망고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개발 때문에 숲과 서식지를 잃은 박쥐들이 망고나무로 이사왔고, 돼지들이 박쥐가 떨어뜨린 과일 조각을 먹었다. 이것이 곧 바이러스 경로였다. 박쥐에서 돼지로, 돼지에서 인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마을 이름을 따 ‘니파’라고 불렀다. 현재까지 백신도, 치료법도 없다.

니파 바이러스의 이동은 오늘날 인수공통감염병의 표준적 경로다. 서식지 파괴, 야생동물 이동, 공장식 축산, 그리고 인간 감염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그렇다. 1968년 홍콩독감, 1981년 에이즈, 2002년 사스, 2009년 돼지독감, 2012년 메르스, 2012년 에볼라, 2015년 지카, 2020년 코로나… 이 모든 감염병을 배양하고 증폭시킨 것이 바로 서식지 파괴와 공장식 축산이다. 그런데도 이 한없이 투명한 진실을 우리 모두가 그저 외면할 뿐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1만 년 동안 지구의 숲이 33% 감소했다. 놀랍게도 1950년 이후에 가장 많이 파괴됐다. 누가 숲을 파괴하는가? 카길을 비롯한 초국적 농식품기업과 그들의 채권자인 블랙록이나 JP모건과 같은 금융자본이다. 21세기 삼림 벌채의 70% 이상이 쇠고기, 콩, 팜유, 목재 때문에 일어났다.

이렇게 숲을 베어내면 그 안에 있던 야생동물들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바이러스들도 날뛰기 시작한다. 이때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매개로 치명적인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변이된다. 단일 유전체 동물들을 고밀도 공간에서 사육하는 것 자체가 감염병의 배양이기 때문이다. 또 이윤을 위해 농장 동물들을 어린 나이에 도축하면서 바이러스 독성을 강화하는 탓이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리스가 명료하게 개진하듯, 축산 농장이 거대해질수록 거대한 감염병이 도래한다. 대부분의 인수공통감염병은 숲에서 방출된 바이러스들이 축산 농장에서 독성이 강화되고 유전자 재편성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으로 변이된 것들이다. 감염병이 등장할 때마다 동물들을 대량 학살함으로써 시간을 벌고 있지만, 축산 농장이라는 배양지가 존재하는 한 대기표를 쥔 바이러스들이 계속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감염병 학자들이 가리키는 파괴적인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조류독감(H5N1). 1918년 스페인 독감에 이은 치명적 팬데믹이 100여년 만에 도래할 거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H5N1의 치사율은 40~60%. 스페인 독감이 최대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H5N1 팬데믹은 최대 10억 명의 피해가 예상된다.

▲ 2016년 12월21일, 조류독감(AI) 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가금류, 생매장 살처분 중단과 업무지침에 따른 인도적인 처리를 요구한다’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6년 12월21일, 조류독감(AI) 살처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가금류, 생매장 살처분 중단과 업무지침에 따른 인도적인 처리를 요구한다’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H5N1의 시작은 1997년 홍콩의 가금류 농장이었다. 한 아이가 감염돼 사망했다. 홍콩과 인접된 중국 남부가 진원지였다. 오늘날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상당수가 중국 남부로부터 온다. 철새 도래지에 거대 가금류 생산 벨트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산업화되면서 숲과 습지가 파괴되었고, 1990년대부터는 골드만삭스 등 미국과 홍콩의 금융 자본이 그곳에 집적되면서 대규모 가금류 시장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조류독감 비상사태의 배경이다.

그렇게 중국과 홍콩을 기점으로 H5N1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2020년경 유럽에서 수많은 바닷새를 죽이고, 2022년에는 북미로, 2023년에는 남미로 퍼져나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바다표범 새끼의 70%를 절멸시켰고, 바로 얼마 전에는 남극의 모든 동물 종이 감염됐다는 아연한 소식이 전해졌다. 마침내 지구의 모든 곳에 H5N1가 깃발을 꽂은 것이다. 수억 마리의 조류가 죽어나가는 동안 조류에서 포유류로, 포유류에서 인간으로 종 장벽을 거침없이 뛰어넘고 있다.

좋은 소식은 아직 ‘인간 대 인간’ 감염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머잖아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이다. 조류독감 연구의 권위자인 로버트 웹스터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도 팬데믹의 경고를 일제히 발신하고 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가공할 감염병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비상사태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계란값만 걱정한다. 또 농장에서 동물들이 살처분이 됐다는 소식을 무심하게 흘리며 고기 먹방에 넋을 놓는다. 심지어 미련하게도 성장과 긴축을 위해 공공의료 시스템을 서서히 침식시킨다.

단언하건대 지금의 육식 행성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자연의 한계를 무너뜨리는 파괴적 식단을 바꾸지 않는 한, 파멸의 감염병은 끊임없이 우리의 어깨를 두드릴 것이다. 조류독감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필연의 청구서이자 비상의 경고장이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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