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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노예’가 성공하면 ‘염전 사장’되는 웹툰업계…나는 혁명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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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만 34살의, 웹툰 업계에서 소위 ‘보조작가’로 생활을 한지 8년이 지난 평범한 사람이다. (보조작가라는 단어 자체가 멸칭인 것처럼 느껴져서 ‘스탭’이나 그저 ‘채색작가’로 불리길 바란다.) 그동안 나는 웹툰 업계, 작게는 웹툰 스튜디오나 작가 화실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겪었다. 물론 그 중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이 업계에 자신의 자존심을 걸며 공정하게 일해온 분도 많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일했던 회사들은 전부 불공정 계약을 하고 지나친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을 일삼았던 악덕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그 중 내가 처음으로 웹툰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첫 스튜디오가 기억에 너무 남는다. 왜나면 정말로… 악몽 같았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27살 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졸업 전시로 인해 지쳐버린 나머지 취업계를 작성하고 취직을 먼저 준비했다. 여러 구직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전전하며 이력서를 제출한 끝에 한 ‘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바닥에서는 소위 ‘메인작가’가 작가 여럿을 고용해서 작품을 제작하는 회사 형태를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스튜디오의 사장이자 ‘메인’ 작가인 A씨는 자기 스스로 만화 업계 원로인 ‘이현세’ 화백의 수제자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이현세 화백 밑으로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문하생부터 해서 오고 갔는데 제대로 된 작품 경력도 안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A씨 밑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실수 중에 가장 큰 실수였다.

그 회사의 고료 체계는 이러했다. 사무실 벽에 화이트보드가 있는데, 그 보드에는 나를 포함한 직원 3명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옆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1페이지 당 밑색 : 1000원, 명암 및 하이라이트 : 3000원, 후보정 : 1000원”

세로 스크롤로 보는 웹툰에는 페이지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컴퓨터 용량이 감당하는 작업 크기가 있다. 그 때는 가로 1440 픽셀, 세로 2만 픽셀 남짓이 한 페이지였다. 그것은 내가 작업하는 장르에서는 5~6컷의 그림을 뜻한다. 초보자라면 하루 종일 작업해도 5~6컷을 다 하기 어렵다.

그렇게 나는 월 3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을 받고 살았다. 심지어 그러다 쫓겨났다. 사장이자 메인 작가 A씨는 나를 마치 없어져도 그만인 쓰레기처럼 취급했다. 내가 월급 30만 원을 받으면서도 버틴 것은 웹툰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A씨에게 내가 그림을 연습한 것을 보여주며 조언을 받고 싶어하면 “넌 뭐 그런 쓸데없는 거 그리고 앉아있냐”, “네 수준은 아직 중학생보다 못하다”, “내가 하라는 거나 제대로 해라” 등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나는 한참 배워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욕을 주고 폄하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나중에 “이게 다 너를 아껴서 그런 거야”,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 같은 소리나 해댔다. 방금 전까지는 쓰레기 취급을 그렇게 해댔으면서….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알게 된 바로는, 이게 몇몇 기성 작가라는 작자들이 자기 보조 작가들이 화실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흔히 하는 가스라이팅 방식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보조 작가들이 번아웃과 PTSD에 시달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내게 그렇게 더 노력하라고 말하는 A씨가 자기만의 방에서 실제로 무슨 작업을 어떻게 노력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가 그 방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건물 관리인에게서 담배 연기 때문에 항의를 받는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참다 못해 당신의 흡연 문제까지 내가 억울하게 나쁜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가, 나는 부당하게 쫓겨났다.

그렇게 해고된 것이 너무 억울했다. 월 30만 원을 받으면서 버텼는데…. 급여 문제와 부당해고 문제를 노동부에 신고했다. 그렇지만 노동부의 직원들은 “프리랜서와 프리랜서 간의 계약관계에서 노동부에서는 간섭할 수 있는 사항이 없다”라고 내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왔다.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나는 뭐였을까? 정말 동등한 프리랜서였는데 나는 왜 그렇게 폭언을 들어야 했을까? 난 그 회사에서 부당하게 착취당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제 이 일도 벌써 한참 전이다.

▲ 웹툰 스탭 수난사. ⓒ웬디고
▲ 웹툰 스탭 수난사. ⓒ웬디고

얼마 전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켜서 탄핵심판을 받게 됐다. 추운 날 밖에 나가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던 시민들은 환호했고, 이러한 탄핵 인용은 어떤 의미로 아직도 국민들의 주권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정치에 그렇게 관심 있는 성격도 아니지만 (난 한국의 양당체제와 더불어 현재 거의 대부분의 정치인을 세금먹는 골칫덩이 취급하며 증오하는 입장이다), 이 혁명의 열기가 내 업계에서도 퍼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혁명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바로 누구나 재밌어하는 웹툰, 그 시장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 웹툰 업계의 총 매출액은 2023년 기준 2조 1890억 원대다. 플랫폼 업체의 매출액은 1조 4000억 원대로, 전년도보다 25%나 증가했다. 각종 해외 진출로 성장세는 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허나 개인 작가로써 연 수익 중위 값은 약 4000만 원대에 불과하며, 이는 국민의 연 가구소득 6500만 원 대로, 작가들의 처우는 일반 국민 기준보다 한참 뒤떨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하물며 작가들의 작업을 뒷받침해주는 보조 작가들의 대한 처우는 얼마나 더 심하겠는가? 웹툰 시장은 규모만 커졌지 플랫폼의 전횡과 스튜디오 내의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들의 삶이 지옥으로 변해버린 겉치레만 요란한 허장성세로 퇴보해버렸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몇몇 파렴치한 스튜디오와 작가들은 이러한 웹툰 노동 시장의 불합리적인 구조를 악용하여 사업체를 만들어 보조작가들을 혹사시켜 스튜디오 내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고, 이로 인한 보조 작가들의 피해 사례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에서 2019년 발표한 웹툰 어시스턴트 실태조사에서 “계약과 관련한 불공정한 경험을 겪은 경우”가 50.8%나 되는 데다, 이 이후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어 더욱 더 심각해졌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우리는 을의 위치에서 작가나 스튜디오의 명령 하에 강도 높은 노동을 최소 8시간 혹은 추가 수당 없이 10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노동시간 대비 최저시급보다 못한 임금 혹은 고료를 받으며 생계마저 제대로 꾸리기가 힘들다. 한마디는 우리는 만화 창작이라는 이름의 ‘염전 노예’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그리고 염전 노예 중 누군가가 성공하면, 염전 사장이 된다.

나는 더 이상의 이런 악순환이 싫어서 싸우고자 한다. 나도 맞서 싸우는 걸 포기하고 이 업계에 순순히 순응할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지금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만화 선배들로써 차후에 입문할 후배들에게 이런 환경을 남겨줄 순 없지 않는가?

마치 이번 내란 혐의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인간을 내버려 두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노조에 가입했다. 고질적인 악습과 폐단을 탄핵시키고, 나아가 웹툰 업계에 종사하는 모두가, 작가와 어시스턴트라는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협업하며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업계로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 2023년 5월 열린 '창작노동의 정당한 보상 정책토론회' 포스터에 실린 그림. 출처 : 웹툰작가노동조합 페이스북
▲ 2023년 5월 열린 ‘창작노동의 정당한 보상 정책토론회’ 포스터에 실린 그림. 출처 : 웹툰작가노동조합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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