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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각계각층이 참여한 독립운동으로 일제 식민 통치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한민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제강점기 최대의 전 민족적 독립항쟁이었던 ‘3・1운동’을 2025년 3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일제가 헌병무단통치를 통해 한국민들을 탄압하며 한국을 일본화하려는 정책을 강행하던 시기에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국제정세 변화와 맞물려 독립운동의 전환기가 마련되면서 국권을 침탈당한 지 8년 6개월이 된 1919년 3・1운동이 시작됐다.
3・1운동을 위해 1월부터 독립선언서 작성 준비가 시작됐고 종교계와 학생층의 개별적인 독립운동 추진계획이 통합·단일화되면서 범국민적 독립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됐다.
이후 3월 1일에 33인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제창한 뒤 일본 경찰에 연행됐고 탑골공원에 모여있던 학생과 군중들은 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연호한 뒤 종로 쪽으로 이동해 대규모 시위행진을 전개했다.
시위대열이 대한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서울 시내가 만세 소리와 군중들의 함성으로 뒤덮였고 시위대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일부 대열은 미국영사관으로 일부 대열은 총독부로 향3월 1일에 점화된 독립운동의 불길은 점차 각 지역으로 확산돼 고종의 국장에 참례하였던 여러 지역의 인물들이 귀향해 3・1운동을 전했고 일부 주민들이 마을 산 위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만세운동을 알리는 등 5월말까지 전국에서 1700여 회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당황한 일제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 만세 군중을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총검을 사용해 시위자를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혔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에게는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하고 시위자 개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해 3・1운동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이처럼 3・1운동은 전국적・전국민적・전민족적인 독립운동의 시발점으로 다양한 형태의 민족독립운동이 발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또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민족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국가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다고 보훈부는 평가했다.
한편 보훈부는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해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1개월간 국가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 등의 누리집을 통해 국민의 추천을 받았다. 국민이 꼽은 3월의 독립운동은 만민공동회 개최(1898), 안중근의사 순국(1910), 중광단 조직(1911), 조선산직장려계 사건(1917), 조선국민회 결성(1917), 추산정 만세의거(1919), 북간도 용정 3・13만세 운동(1919), 파리장서 사건(1919), 신민부 성립(1925),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결성(192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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