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먹는 방송) 유행의 시초이자 하멜표류기의 하멜을 놀라게 한 고봉밥의 겨레. 한국인은 예로부터 ‘밥 먹었어?’를 안부 묻기로 쓰는 밥심의 민족이다.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 사회에도 경기 불황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로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대학로와 식당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들의 지갑 사정은 날로 얇아져만 간다. 점심 한 끼조차 부담스러운 시대에, 본보는 세대별 점심밥 현황과 경기 불황 속 지역 주민들의 식사 실태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안녕하십니까, 식사는 하셨어요?”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서울 여의도 직장가. 점심시간이 되자 수많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쉽게 발길을 옮길 곳은 많지 않다.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오른 외식 물가 탓에 직장인들의 점심 고민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오늘 뭐 먹지?”였다면 이제는 “어디서 싸게 먹을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점심값 부담이 커질수록 직장인들의 한숨도 깊어진다.
직장인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가장 저렴한 식당을 찾거나 비교적 가격이 낮은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고민 끝에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도시락을 사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고물가 시대를 맞아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2021년까지만 해도 9000원대였던 서울 직장인들의 평균 점심값은 2023년부터 1만원을 넘어섰다. 일부 구내식당 식대도 7000원을 훌쩍 넘긴 곳이 많다.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점점 녹록지 않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푸드테크 기업 ‘식신’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전국 일반 식당의 평균 결제금액이 1만원을 돌파하며 사실상 ‘점심값 1만원 시대’가 열렸다. 여러 지역 중 서울이 1만798원으로 가장 높았다.
외식 물가 상승도 체감 물가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5.71(2020년=100)로 전년 대비 2.2% 상승했다. 특히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121.01로, 전년보다 3.1% 상승하며 직장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 ‘경제의 허리’로 불리는 이들이 점심 한 끼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실정이다.
이에 본보는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물가 현실을 생생히 확인하고자 여의도 직장가를 직접 찾아가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이를 통해 이들이 나날이 오르는 물가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점심값 부담이 실제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다.

물가상승에 면 플레이션까지…가지각색 ‘자장면’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 오픈 시간인 11시부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문이 열리자마자 테이블은 순식간에 찼고 홀은 분주한 발걸음과 주문 소리로 가득했다. 이 식당이 유독 직장인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단연 ‘가성비’다.
최근 ‘면플레이션’(면+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면 요리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장면(유니짜장)을 단돈 7000원에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단무지와 김치는 기본에 군만두 1개와 매실차까지 무료로 제공된다. 식사 한 끼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이 정도면 직장인들에게 ‘최고의 한 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장면 외에도 짬뽕 8000원, 삼선볶음밥 9000원. 주변 식당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다. 덕분에 손님들은 쉴 새 없이 몰려들고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인다. 밀려들어올 손님들을 이미 예상했는지 주문한 뒤 5분도 채 되지 않아 음식이 서빙되고 손님이 떠나면 테이블은 금세 정리된다. 분주한 흐름 속에서도 가게의 운영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합리적인 가격과 빠른 서비스, 정갈한 음식. 이 세 박자가 어우러지니 점심 한 끼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점심시간의 소소한 만족으로 번진다. 동료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여유마저 묻어난다.
그러나 같은 여의도에서도 자장면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불과 100m 떨어진 다른 중식당에서는 같은 유니짜장이 9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8000원, 1만원, 1만1000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를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1만3000원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물론 원재료의 질과 양, 서비스 등의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메뉴 하나에도 가격대가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
이처럼 같은 음식을 두고도 가격 차이가 크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각자의 경제적 여건에 맞는 선택을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가성비 좋고 배를 채우는 식사 한 끼가 일상의 작은 위로이자 힘든 하루를 견디는 중요한 선물이나 다름없다.

점심대란 속 살아남는 법
값비싼 점심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직장인들이 요즘은 비싼 식당 대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의 즉석식품 코너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편의점 내부 한쪽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은 직장인들로 금세 가득 찼다. 도시락과 음료를 고르며 한 끼를 해결하는 이들. 평균 5000~6000원대인 도시락과 음료로 마음 편히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은 예전처럼 비싸고 복잡한 식당을 찾기보다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집어든 A씨는 “주 5일 중 3일 이상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며 “편의점에서 밥을 먹으면 밖에서 먹는 것보다 80% 이상 아낄 수 있어서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3년 전 학생이었을 때에 비해 물가가 엄청 오른 것이 느껴진다”며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보다 편의점에서 사서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즉석식품 코너도 많은 직장인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해당 마트는 앞서 제조된 식품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샌드위치나 김밥을 20%로 할인하는 점심시간 특가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어 직장인들에게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같은 저렴한 가격 탓인지 즉석식품 코너는 직장인들의 왕래가 잦았다. 마트까지 찾아와 이를 구매하고 회사에 복귀해 먹고 치워야 하는 과정을 참을 만큼 합리적인 가격이 직장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즉석식품 코너를 찾아 3000원대 김밥을 집어든 직장인 유모(44·남)씨는 “가격이 저렴해서 간편 식품코너에 종종 온다”며 “밖에서 혼자 식사할 땐 보통 1만원 이상 써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 절반도 안 하는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처럼 대형마트 즉석식품 코너는 가격 대비 효율적인 점심을 찾는 직장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날 해당 코너에는 소불고기 비빔밥 5280원, 샌드위치 4280원, 나물김밥 3980원 등 다양한 메뉴가 구비돼 있었다. 서울 평균 점심값인 1만798원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이다.

대형마트를 찾은 유씨와 같은 이유로 밥값을 아끼기 위해 구내식당을 찾는 직장인들도 많다. 기자가 방문한 한 구내식당은 7500원에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하며 6가지 반찬과 국, 디저트까지 푸짐한 구성을 자랑한다. 양도 넉넉하다. 심지어 음료수까지 무료로 제공돼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로 마감 시간인 오후 1시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구내식당을 찾은 박모(46·여)씨는 “재직 중인 회사 내 식당이 공사 중이어서 이 구내식당에 오게 됐다”며 “여의도에서 점심식사를 하면 보통 1만원~1만5000원 사이가 들어서 부담이 심하다. 더욱이 요즘은 1만원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노모(45·여)씨는 “물가도 비싸고 매일 메뉴 선택하는 것도 지치는데, 구내식당은 가격이 저렴한 것은 물론 메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 자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구내식당과 대형마트 즉석식품 코너, 그리고 편의점까지 직장인들은 점점 더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며 ‘런치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다.

직장인 역시 고물가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점심대란’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직면한 식비 부담은 단순한 밥값을 넘어 생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일같이 오르는 외식 물가와 끝을 알 수 없는 경제불안 속에서 직장인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매몰된 채 미래를 쉽사리 꿈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만큼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더 이상 이들이 식사 한 번을 위해 삼만리를 헤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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