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 주요 계열사가 중국에서 쫓기듯 탈출한다. 중국 기업 대비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현지 법인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청산 작업이 잇따르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과거 중국 대비 우위에 있는 기술력을 강점으로 시장 장악을 자신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다. 중국 기업은 몇년 지나지않아 홈그라운드 이점을 발휘해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 기업을 압도했다. 기술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우위에 섰다. 한때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이 한국 기업의 ‘무덤’으로 전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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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기, ‘5년 연속 적자’ 中 법인 청산 작업 완료
삼성전기는 2009년 세운 중국 쿤산법인을 15년 만에 정리했다. 2019년 12월 이사회가 영업정지 결정을 한 중국의 삼성전기 쿤산법인의 청산 작업이 2024년 말 모두 완료됐다.
삼성전기 쿤산법인은 스마트폰 핵심 부품 간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부품인 고밀도 회로기판(HDI)을 생산했다. 삼성전기는 쿤산법인의 수익성 개선 방안을 추진했지만 중국 기업의 경쟁 참여와 실적 악화로 결국 영업을 중단했다.
쿤산법인은 영업 중단에 이르기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속되는 적자로 반도체 기판 등 미래 먹거리 사업까지 차질을 빚었다.
삼성전기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삼성그룹이 중국에 처음 세운 생산거점인 둥관 공장도 2023년 말 청산을 완료했다. 둥관 법인은 삼성전기 사업구조가 MLCC 중심으로 변함에 따라 중국 톈진공장에 통합되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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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매각…中에 LCD ‘맹주’ 자리 넘긴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2008년 당시 급성장 중이던 LCD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광저우에 LCD 모듈 공장을 지었다. 2014년에는 8.5세대(2200㎜×2500㎜) 대형 LCD 패널 공장도 건설하며 중국 현지 생산 체제를 강화했다.
2014년 9월 1일 LCD 패널 공장 준공식 당시 CEO였던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LCD패널 공장 가동을 계기로 세계 최대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실히 끌어올려 글로벌 일등 체계를 갖추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시장 흐름은 기대와 달랐다.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은 저가 출혈 공세로 LCD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2023년 중국 기업의 LCD 시장 점유율은 60%를 넘겼다.
LG디스플레이는 결국 대형 LCD를 생산하는 광저우 공장을 TCL 자회사인 차이나스타(CSOT)에 지난해 매각했다. 과열 경쟁으로 더이상의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이제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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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서 ‘쓴맛’
배터리 업계도 중국 시장에서 잇따라 쓴맛을 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과거 중국 소형 배터리 사업 확대를 위해 설립했던 합작 사업에서 손을 뗐다. 장시 VL 배터리는 2020년 LG화학이 중국 베켄 테크놀로지와 설립한 소형전지 합작사다.
장시 VL 배터리는 2020년 4억원, 2021년 102억원, 2022년 199억원, 2023년 상반기 6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실적이 지속 악화했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 상반기 장시 VL 배터리 지분을 무상양도하고 125억원의 손상차손과 13억원의 지분법손실을 인식했다.
삼성SDI는 2022년 중국 우시, 장춘 배터리 팩 법인을 청산했다. 우시법인은 2020년과 2021년 모두 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장춘법인도 2018년을 제외하면 2016년 6억원, 2017년 8억원, 2019년 9억원의 순손실을 보이며 부진했다.
설립 초기부터 당국 규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등이 맞물리면서 정상적 운영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중국 정부는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삼성SDI의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월 중국 배터리 사업 법인인 자회사 ‘블루 드래곤 에너지’를 청산했다. 설립 6년 만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지분 100%를 소유한 중국 자회사 SK 배터리 차이나 홀딩스의 법인명을 블루 드래곤 에너지로 바꾸면서 이 법인에 864억원을 출자했다. 배터리 셀과 팩을 중국에서 생산하며 현지 전기차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부진한 업황으로 사업성이 하락했고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까지 맞물리며 이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물적분할한 SK온으로 중국 내 배터리사업 전권이 넘어가면서 법인의 존재 이유도 사라졌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과감한 중국 진출 시도는 결과적으로 중국 기업의 급성장을 이끈 계기로 작용했다”며 “미중 관세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자국 기업 선호가 높은 중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설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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