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좇는 20·30 청년 세대,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외국인들에게 하루아침 덮친 ‘전세사기’는 견뎌내기 어려운 상처다.
▲꿈 품은 청년 향한 전세사기…“우리 같은 피해 없어야” 호소
“첫 전세 계약이라 많이 알아봤고, 부동산에서 안심시켜 주니 믿었죠. 사기당한 걸 안 순간 ‘아 나는 빚쟁이다’란 생각에 모든 게 막막했습니다.”
25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 A(34)씨는 이같이 토로했다.
A씨는 20대이던 지난 2019년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한 아파트에 전셋집을 얻었다.
성인이 되면서 시작한 자취 생활 전부 ‘월세 살이’였지만, 돈을 아끼고 결혼 자금도 마련할 겸 처음으로 전세로 집을 얻기로 결심하면서다.
1억원짜리 은행 담보 대출이 껴있던 탓에 불안함도 있었지만, 매매가에 비하면 대출금이 적은 데다가 “건물주가 돈이 많고, 내가 이 계약을 보증하겠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계약했다.
그러나 그의 첫 전셋집은 미추홀구 일대를 휩쓴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였다.
A씨는 “2021년 12월에 재계약을 했고, 그로부터 두세달 후 집이 경매에 넘어갈 예정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엄청난 피해자를 만든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에 당사자라는 건 그해 여름 알게 됐다. 굉장한 충격이었고 1년 가까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개인 회생까지 고민하던 중 제정된 전세사기특별법이 한숨 돌리게 했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A씨는 “특별법이 나왔지만 법에 대한 설명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 막막한 만큼, 이 부분이 보완되었으면 한다”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와 같은 2차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세사기 피해는 주로 청년층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실제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피해자 인정 요건을 충족한 전세사기 피해는 총 2만4668건이다. 이 중 25.95%(6402건)가 20대였고, 30대는 48.40%(1만1937건)에 해당했다.
인천에서는 전세사기 피해자인 20~30대 청년들이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죽음이 잇따르기도 했다.
이에 청년들이 전세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일반 청년들의 임금으로는 집을 살 수가 없는 시대에서 대출을 통해 전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청년들을 희생하게 했다”라며 “특별법이 제정된 지 2년이 돼가지만, 전세 사기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대인의 횡포에 청년들이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강화돼야 한다”라며 “법 강화가 내 삶을 당장 내일부터 바꿀 수 있는 것이 더 많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피해 구제 사각지대 놓인 외국인 피해자들
전세사기는 피해자들의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
인천시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따르면 20일 기준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 건수 3138건 중, 외국인은 약 3.0%에 해당하는 94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미추홀구에만 과반인 66건(70.2%)이 집중됐다. 또 남동구(8건), 부평구(6건), 서구(5건), 중구(5건), 계양구(3건), 연수구(1건) 순으로 뒤를 이었고, 강화와 옹진군, 동구는 0건이다.
이날 미추홀구 주안동 한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에서 만난 중국 동포(조선족) 이모(41·여)씨 역시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같게만 해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중국 연변에 살던 이씨는 10년 전 한국 생활을 시작해 서울과 경기 광명을 거쳐 2019년 인천에 뿌리를 내렸다. 지금의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가 이씨와 남편, 아이가 인천에 처음으로 튼 둥지였다.
더 큰 문제는 이씨의 어머니와 남동생도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전셋집을 마련했는데, 그 또한 전세사기 피해 대상이 되면서 가족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는 점이다.
전세사기특별법 제·개정으로 피해자 지원이 추진되고 있지만, 외국인 피해자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공공임대주택에서 최장 20년을 거주하는 지원책 등에서는 제외된다.
이씨는 “우리 가족은 모두 외국인이라 전세자금 대출이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전세 자금이 우리 돈”이라며 “피해자 결정은 받았지만, 긴급주거지원을 제외하면 받을 수 있는 피해 지원이 거의 없다. 뭐든 ‘외국인이라 안 된다’는 얘기만 들어왔다”고 호소했다.
그의 집은 다음 달 3차 경매를 앞뒀다.
이씨는 “경매를 앞둔 상황이라 긴급주거지원 신청을 고민 중이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일까 걱정”이라며 “내·외국인 모두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인 만큼 같은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 곧 경매일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혹시나 하는 (제도 보완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품고 있다”고 했다.
/정혜리·홍준기 기자 hy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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