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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편집하는 일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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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11일 오전 1학년 초등생이 살해당한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 시민들이 두고 간 편지와 꽃, 과자, 인형 등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 2월11일 오전 1학년 초등생이 살해당한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 시민들이 두고 간 편지와 꽃, 과자, 인형 등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비탄에 젖은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아이의 꿈이었던 유명 아이돌 멤버에게 조문을 부탁하는 말을 남겼다. 해당 멤버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는 조문을 요청하는 댓글이 쇄도한 한편으로, 아이의 아버지를 둘러싸고 ‘조문 강요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들도 나타났다.

일련의 상황을 보고 내가 기자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봤다. 조문을 간청하는 그 멘트를 기사에 넣었을까.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 입장에서, 아이가 생전에 열렬히 좋아했던 이에게 보러 와주길 부탁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멘트를 기사에 넣는 순간 조문을 강요하는 댓글이 달리고 되레 화살이 아이의 부친에게 돌아갈 일 또한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사건의 초점이 수사나 대책 마련이 아닌, 아이돌의 조문 여부에 쏠릴 일도 우려스럽다. 나라면, 그 멘트를 기사에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실과는 다르게 내 주변의 동료 기자들도 ‘쓰지 않는다’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 멘트를 기사에 옮겼다고 해서, 해당 기자나 언론이 비판받아야 하느냐는 데는 의견이 갈렸다. 발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고, 연예인 SNS에 달려가 조문을 종용한 댓글러들과 아이 아버지를 둘러싼 ‘논란’을 만든 이들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해당 멘트를 넣는 순간, 기사 제목과 썸네일이 연예인 이름과 얼굴로 도배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기사의 제목을 짓거나 이미지를 첨부하는 등의 일은 취재 기자가 아닌 편집 기자, 데스크에 권한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 멘트를 기사화하는 것 자체가 시선을 ‘연예인 조문’으로 돌리려는 기자의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같은 논쟁은 인물의 재현에 관한 나의 오랜 고민을 팝업시켰다.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일이란 가장 날 것의 현실을 언어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뷰를 한다손 치면, 해당 인물의 삶에 대한 편집권이 그 순간만큼은 기자에게 있다.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는 것, 나의 답변을 오려 붙일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무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 작성이란 타인의 삶을 편집하는 일의 무거움을 알고, 인터뷰이의 모든 말을 실을 순 없더라도 그의 뜻 만큼은 왜곡되지 않도록 뉘앙스를 남기는 일이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임에도 문제는 자주 발생한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별 문제 없었던 말이 따로 뚝 떼어 활자화하면 문제적 발언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에 각종 ‘고나리질’(아는 체하며 지적하기)의 표적이 된다.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를 자주 인터뷰 하면서부터는 고민이 더욱 심화됐다. 상시적으로 혐오 공격에 시달리는 이들을 인터뷰해 기사화하는 일은, 가끔은 혐오 세력들에 이들을 욕할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터뷰이들은 나의 인터뷰 제안에 응한 죄 밖에 없는데,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의 댓글창,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악플을 접했다. 그래서 나는 발언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음에도, 저들이 트집 잡을 만한 말들을 적극적으로 편집해 생략하기를 반복했다. 더 나아가 한 때는, 인터뷰 자체가 ‘기사를 쓰겠다’는 나의 이기심 탓에 누군가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일처럼 느껴져 피하게도 됐다. 그러다 이런 식의 비가시화야말로 혐오 세력에 효능감을 안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전투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 2022년 5월 음주운전을 하다 가로수와 변압기 등을 들이받은 사고를 낸 배우 김새론이 2023년 4월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2천만원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 2022년 5월 음주운전을 하다 가로수와 변압기 등을 들이받은 사고를 낸 배우 김새론이 2023년 4월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2천만원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실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사의 반향 때문에 생기는 일 보다, 언론이 앞장서 인물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끼치는 해악이 더 크다. 배우 김새론의 사망도 마찬가지다. 2022년 음주운전 사고를 낸 이래 언론에 의해 프레이밍된 그의 삶은 ‘알바 호소인’, ‘셀프 열애설’, ‘결혼 어그로’, ‘반성 없는 자숙’ 등이었다. 유튜브의 사이버 레커 채널도 그의 삶을 악의적으로 재현하는 주체 중 하나였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두고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가 상부상조하며 서로의 시각을 퍼날랐다. 여기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악플러들이 적극 조응했다. 언론이 악플러들의 불쏘시개 역할을 통해 돈을 벌고, 이들이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 해당 인물의 SNS로 달려가 폭력적인 언사를 퍼붓는 악순환의 정점에 있다.

언론이 크게 일조한 조리돌림의 시대에는, 점점 더 언론 앞에 나서겠다는 이가 줄어든다. 취재원 입장에선 기자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 쓸까 걱정되기도 하고, 굳이 나서서 욕받이가 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혐오 세력의 공격에 노출된 사회적 소수자나 범죄 피해자 뿐 아니라 수많은 전문가들도 언론에 멘트를 하길 점점 더 꺼려 한다. 언론이 기사의 ‘야마’에 맞게 재단하느라 멘트의 진의가 훼손될 가능성에 더해, 그 멘트가 공론장에서 또 한 번 조리돌림 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언론이 깊이 연루된 또 하나의 마녀사냥 피해를 목도하며, 악의적 보도에 대한 적극적인 제재는 이제 고려가 아닌 필수의 영역이다. ‘어그로성 기사’가 수익이 되는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거기에 더해 인물의 재현에 관한 더 섬세한 고민도 필요하다. ‘사이버불링’(온라인 상의 괴롭힘)이 일상화된 시대에 미디어 앞에 서는 용기를 낸 취재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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