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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즉위 – 동북면의 촌뜨기, 고려를 무너뜨리다 [정명섭의 실록읽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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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첫 번째 기록은 서기 1392년 7월 17일, 태조 이성계의 즉위에 관한 내용이다.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

수창궁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는 별궁으로 현종 때 이미 존재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거의 4백 년 전부터 존재한 궁궐이었다. 고려와 내내 운명을 함께 했던 수창궁은 잔인하게도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장소로 선택되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 역시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4년 전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이성계가 최영 장군을 무찌르고 개경에 입성하는 걸 본 고려의 대신들은 예전의 악몽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로 무인 정권 시대, 그중에서도 4대 60년간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고려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최충헌이 생각난 사람들도 많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자신의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산대첩 기념 어휘각 (직접 촬영)
황산대첩 기념 어휘각 (직접 촬영)

이성계에게는 최충헌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장수로서의 명성과 신진사대부들의 지지가 있었다. 특히, 황산에서 왜구를 대파한 것을 비롯해서 홍건적부터 원나라군까지 고려를 괴롭히고 침략했던 존재들을 격파하면서 최영 장군에 버금가는 명성을 쌓았다. 아울러, 그의 명성을 보고 모여든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은 썩어빠진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서 토지 분배 같은 개혁 정책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변안열과 조민수 같은 반대파를 제거하고, 마지막 충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몽주까지 선죽교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고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기 5일 전인 12일에 왕대비 안씨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성계와 동맹을 맺으려고 하면서까지 고려 왕실을 지키려고 했던 공양왕이 그의 저택으로 출발하려는 찰나, 시중 배극렴은 왕대비 안씨에게 공양왕이 임금의 도리를 잃고 인심도 떠났으니 폐위시켜야 한다고 고한다. 공민왕의 네 번째 아내였던 안씨는 남편이 비명횡사하고 의붓아들인 우왕이 이성계의 손에 폐위당할 때, 교서를 썼고, 창왕 역시 명목상 왕실의 최고 어른인 그녀의 손에 폐위당했다. 마지막 공양왕 역시 왕대비 안씨가 교서를 내리면서 왕위에서 축출되었다. 자기 손으로 무려 세 명의 임금을 갈아치운 그녀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다가 세종대왕 때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공양왕은 결국 눈물을 삼키고 왕위에서 쫓겨나 원주로 떠났다. 다음날인 13일, 왕대비 안씨는 이성계를 감록국사(監錄國事)로 삼았다. 감록은 감독하고 기록한다는 뜻으로 공양왕이 폐위된 상황에서는 사실상 군주나 다름없는 직위였다. 어느 정도 물밑에서의 정리가 끝나고 16일에 이성계의 저택으로 배극렴과 조준을 비롯해서 정도전과 이지란과 남은을 비롯한 수십 명의 관리들이 몰려왔다,

그냥 온 게 아니라 옥새를 들고 찾아왔는데 나름 평화롭게 양위를 받았다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절대로 받을 수 없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때 관리들 사이에 있던 대사헌 민개가 마땅찮은 표정을 짓고 서 있지 남은이 본보기 삼아 죽이려고 했다. 그걸 들은 이성계는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다. 문을 열고 옥새를 받아달라는 신하들과 그럴 수 없다는 이성계의 밀당은 해 질 무렵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결국 배극렴이 문을 밀치고 들어와서 마루에 옥새를 올려놨다. 그리고 이성계가 조카인 이천우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나자 만세를 부르며 왕위에 오를 것을 권했다. 이때 배극렴이 내세운 논리는 공민왕 사후 대가 끊기고, 신돈의 아들 우가 왕위를 강탈했으며, 포악한 우가 무리하게 요동을 정벌하려고 하다가 실패했고, 그 이후, 우의 아들 창이 다시 왕위를 이어받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탄했다. 이어서 정창 부원군을 임시로 왕위에 앉혔다. 하지만 역시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면서 이성계에게 국새를 가지고 왕위에 오를 것을 청했다. 배극렴의 거듭된 요청에 이성계는 자신이 덕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사양한다. 하지만 배극렴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거듭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하자 결국 받아들이고 만다. 지금 기준에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락 볼 수 있겠지만 명분에 죽고 사는 시대에는 이런 사양과 권유는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다음 날인 17일,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다. 이때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말이나 가마를 타고 들어오지 않고 걸어서 들어왔으며 옥좌에 앉지 않고 기둥 사이에 서서 신하들의 조하를 받았다. 그리고는 내가 몸만 건강했다면 말을 타고서라도 도망쳐서 이 자리에 안 왔겠지만 지금은 병에 걸려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관리들에게 예전처럼 업무를 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성계는 여전히 감록국사의 지위에 있었지만 어쨌든 고려 왕조는 475년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막을 내리게 된다. 그 역사적인 교체를 알리는 실록의 첫 문장은 너무나 담백하게 사실 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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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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