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취재팀이 주목한 것은 ‘53.9%’라는 숫자였다.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중 53.9%가 65세 이상이다. 이는 고령화와 장애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취재팀은 고령 인구의 건강 통계 자료를 분석하고 장애인과 돌봄 가족, 의료진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스피커를 달았다. 고령 장애인의 삶은 우리 사회 의료와 복지 패러다임의 과감한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였다. [편집자 주]
‘쿵짝, 쿵짝’ ‘푸우~~우웅’
지난 2월 19일, 의정부 화룡역 인근의 상가 빌딩에 자리한 다사랑 노인복지센터. 40여 명의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며 한 곡조씩 뽑고 있다.
출력이 좋은 스피커에 노래방 반주가 흘러나오고 두 명의 색소폰 연주가들이 특유의 애절한 음색을 더하자 꽤 근사한 무대가 마련됐다.

“이번에는 최달원 어르신 모시겠습니다. 어르신의 애창곡 ‘철갑산’ 반주 들어갑니다. 어르신, 어서 앞으로 나오세요.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회를 맡은 사회복지사의 능숙하면서도 공손한 호출에 두툼한 파카를 껴입은 최달원(78세) 씨가 맨 뒷줄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주 잠깐 주저하는 듯하다, 이내 몹시 기다렸다는 속도의 걸음으로 무대 앞으로 나갔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최 씨는 마치 무언가를 후련하게 뱉어내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냈다.
최 씨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왼쪽 시력과 청력을 잃었고 고혈압에 전립선 비대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신체적 질병보다 그를 아프게 한 것은 극도의 우울감이었다.
그는 4번이나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최 씨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애창곡을 부르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의정부시 자살예방센터는 집에 틀어박힌 그를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놓았다.

주민 신고 → 방문 진료 → 주간 보호 센터
“또 자살 시도를….”
2024년 초, 건강관리공단 의정부 지사 직원이 최 씨의 집을 직접 찾았다. 이웃 주민이 최 씨의 잇단 자살 시도와 불결한 주거 환경을 살펴달라며 신고한 데 따른 조치였다.
최 씨가 거주한 공간은 차마 발을 들이기 꺼려질 정도로 지저분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식 쓰레기 위로 곰팡이가 북슬북슬 피어 올라 있었다. 담배 성분인 니코틴 특유의 찌든 냄새도 코를 찔렀다.
“어르신 표정이 너무 어두웠어요. 잘 드시지 못하니까 볼이 홀쭉 했고요, 기력이 없어서 비틀비틀 걸었어요.”
공단 직원과 함께 최 씨 집을 방문했던 희밍실버케어 이혜주 센터장의 말이다.
게다가 최 씨는 외부인과의 대화를 일체 거부했다. 의정부 일대에서 방문진료 의사로 활동하는 노동훈 편한자리의원 원장은 최 씨와의 첫 만남을 또렷이 기억했다.
“마침 비오는 날 어르신의 첫 방문 진료가 있었어요. 밖에서 수차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문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겨우 진료를 시작했는데, 어르신은 ‘죽겠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는 노인이 복지 정책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리 없었다. 노 원장과 이 센터장은 최 씨의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도왔다.
정부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장기요양등급(1~5등급, 인지지원 등급)에 따라, 세면, 구강 관리, 빨래, 식사, 머리 단장, 외출 동행 등을 제공해 준다(서비스의 15~20%는 본인이 부담해야 함).
최 씨는 경도 인지장애 판정으로 인지지원 등급을 받았다. 인지지원 등급이 나오면 집에서 요양 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 대신, 주 3회 주간보호센터(복지센터)의 참여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울산 조선소 누비던 용접공
최 씨는 전남 영광 태생이다. 남도 사람답게 ‘거시기’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그의 평생 주 무대는 경남 울산이었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짐을 꾸려 울산으로 향했다.
최 씨는 의정부에서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울산의 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50년간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숨은 주역이었던 것이다.
그는 쇠를 자르고, 녹이고, 붙이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일을 일찍 배워 기술이 좋은 데다 관련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게다가 힘이 남들보다 셌다. 체격이 좋았다. 키 178cm에 체중이 85kg이 넘었다.
그의 인생에 ‘화양연화’가 있었다면, 늦장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얻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이 눈 안에 시커먼 흰 창이 생기대. 거시기가 뇌종양이라고 하대. 그 놈 살리려고 재산 다 깨묵고. 50년 용접한 게 다 날아가고 없어.”

아홉 살 딸의 죽음. 유독 정이 많은 최 씨에게 딸을 잃은 슬픔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었다. 그는 알코올 치료 센터에 다녀야 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아마 우리 집이 5남 5녀였던 것 같은디. 이제 아무도 없재, 아무도. 부모도 형제도 다 죽고, 나는 자식도 없어. 여동생 딱 하나 살아 있는데, 거기도 아퍼가꼬 꿈쩍도 못해.”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 부모는 물론이고 형과 형수, 누나들도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외로움이라는 무게가 계속 더해졌다.
사람을 살리는 루틴
“빨리 죽었으면 쓰것어요. 이제 자살도 안 되고….. 내가 자살을 4번 했는데, 안 죽더라고. 이 놈의 ‘대가리’를 쳤을 때 피가 범벅이 되고 이 동네가 아주 난리 났었지.”
2월 중순, 기자는 의정부 자택에서 최 씨를 만났다. 그는 기자를 만나서도 ‘죽어야지’했다. ‘입버릇’이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을 특별히 경계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기자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전화도 받았다.
그가 거주하는 공간도 비교적 깨끗했다. 청소는 누가 하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하지”라고 답했다. 집은 물론 자신마저 방치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기적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1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게 있다면, 최 씨에게 ‘루틴(routine, 반복된 일상)’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는 매주 월, 수, 금 아침마다 복지센터에서 보내준 봉고차를 타고 출근하듯 센터로 나간다. 한 달에 한 번 집에서 방문 진료 의사와 간호사의 진료와 간호를 받는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정기적으로 와 주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이 드신 어르신일수록 약속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강성희 방문 간호사의 말이다. 그는 최 씨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도 신경을 많이 쓴다. 혈압을 재고 약을 챙겨드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버님, 무례한 말씀인데, 제가 아버님을 엄청 귀여워하잖아요. 웃는 모습이 100만불 짜리이니까요.”
간호사의 말에 최 씨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뻬빼 말라가꼬 몸무게가 60kg까지 떨어졌는디, 요즘 2kg 져서 62kg이더라고. 사람들은 얼굴에 살 올랐다고 하더마.”
“유치원과 똑같아요, 하나만 빼고”
“어르신들은 집에 고립돼 있으면 안 돼요. 무조건 나와야 해요. 최달원 어르신이 집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 아니라 인지지원 등급을 받아 복지센터에 오게 된 게 건강에는 더 좋은 효과를 가져왔을 거예요.”
한승목 다사랑 노인복지센터 대표의 말이다.

다사랑 노인복지센터의 주간 스케줄 표는 대략 이렇다.
월요일 스포츠 활동, 보름 빙고,번호대로 색칠하기 / 화요일 악기 노래 교실, 퍼즐하기, 연 꾸미기 / 수요일 전등 만들기, 보름 퍼즐, 음악 교실 / 목요일 구연동화, 길 찾기, 스티커 붙이기/금요일 꽃 만다라, 노래 교실
이 곳에 근무 중인 한 사회복지사는 “노인복지센터의 프로그램이 유치원 프로그램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면서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등·하원을 해드리는 것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집 교사 출신으로 3년 전 이곳에 합류했다.
“다만, 배우고 성장하는 어린이들과 달리 어르신들은 잊어버리는 게 많아지니, 이 부분을 특별히 신경 써드려야 하는 거죠.”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국가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 1위다. 이 부끄러운 통계는 우리 사회 공동체의 급속한 해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방문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사들이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새 구심점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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