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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미추홀구를 할퀸 전세사기는 수많은 서민 삶의 터전인 집과 동네에 아직껏 흉터를 남겼다.
고민거리가 되어버린 집에는 ‘전세사기’ 피해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전히 붙어있고, 피해자들은 지금도 불안을 안고 산다.
정부가 한시법안을 기반으로 구제에 나섰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알고 이사 오시는 거죠?”…전세사기 할퀸 동네, 여전한 흉터
24일 미추홀구 숭의동 A 아파트. 발코니 창문에 붙은 ‘전세사기’, ‘보증금’ 등이 적힌 붉은색 현수막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건축업자 A씨 일당의 표적이 된 아파트로 여전히 건물 입구와 승강기 내부, 복도 등에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입니다’, ‘알고 이사 오시는 거죠?’ 등의 문구가 쓰인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미추홀구는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집중된 곳이다.
인천에서 전세사기특별법에 따른 전세사기 피해자(또는 피해자 등)로 결정된 3138건(20일 기준) 가운데 미추홀구에만 63.6%에 달하는 1995건이 몰렸다.
군·구별로는 ▲부평구 358건 ▲남동구 257건 ▲서구 246건 ▲계양구 195건 ▲중구 48건 ▲연수구 30건 ▲강화군 5건 ▲옹진군 0건이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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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찾은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들에는 시간이 멈춘 듯 전세사기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피해 아파트인 숭의동 B 아파트에는 10여 세대의 현관문에 미납관리비 독촉장 및 단전·단수 예고장이 붙어 있었고, 인근 C 아파트 승강기 내부엔 전세사기 공판 일정 검색 방법 등을 안내하는 안내문이 게재돼 있기도 했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D씨는 “전세사기가 발발한 이후, 사람들이 이 근방 빌라나 오피스텔로 들어오는 걸 꺼려 현재 전세, 매매 매물들이 많이 쌓여있는 상태”라며 “전세 사기 피해를 안 입은 사람 역시 세입자가 없어서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고 버티는 상황이다. 동네가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주안동 E 아파트는 지난해 여름 폭우에 떨어진 외벽이 여전히 복구되지 않고 방치된 채 남아있었다.
해당 아파트에 사는 40대 주민 F씨는 “외벽이 무너져 있어 단열재 또한 소실됐다. 안방 쪽 외벽에 단열이 안 돼 보일러를 틀어도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올겨울은 너무 추웠다”면서 “현재 경매는 2차까지 진행되고 중지 요청을 해 멈춘 상태지만 언제까지 중지가 될지는 몰라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팔 걷은 정부…갈 길 먼 피해 구제
전세사기 피해가 2030 청년과 서민 터전을 덮치면서 앞서 정부는 회복과 예방 방안을 고심하고 나섰다.
2023년 시행돼 지난해 개정을 거친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방안 등이 담겼다.
해당 법은 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경매에서 매입하고, 발생하는 차익을 활용해 임대료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임대료 부담 없이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민간보다 낮은 수준의 임대료로 거주 기간을 최장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LH 인천본부는 이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및 우선 공급 등 피해 지원에 팔을 걷었다. 다만 아직 목표로 한 피해주택 1500호 매입에는 크게 못 미친 상태다.
이날까지 매입 신청이 이뤄진 238건 중 LH 인천본부가 매입한 피해 주택은 55건이다.
아울러 21일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우선 공급 및 긴급 주거 287가구를 지원했다. 군·구별로는 미추홀구가 165가구로 가장 많고, 서구(48가구), 부평구(38가구), 남동구(23가구)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피해 지원의 근거가 되는 ‘전세사기특별법’이 한시법인 터라, 올해 시효 만료를 앞둔 것 또한 문제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전국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난 22일 열린 전세사기 희생자 2주기 추모 등 집회에서 “사기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데 바로 몇 개월 뒤인 5월이면 전세사기 특별법 시효가 만료된다. 그러나 아직 연장 결정이 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정혜리 기자 hy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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