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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는 위법했지만 법률은 유효하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했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관련 권한쟁의 심판에서 2023년 3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취지로 선고해 논란이 됐다. 해당 입법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국회의장의 법률 가결 선포 행위는 무효가 아니라는, 앞뒤가 안 맞는 판결이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용이든 기각이든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탄핵 찬반 진영 간 격렬한 대립뿐만 아니라 헌재를 포함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불신은 오랜 기간 누적된 경험의 결과다. 흉악범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 판사에 따라 제각각인 ‘고무줄 판결’ 같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년 전 헌재의 ‘검수완박법’ 판결도 마찬가지다. 최근 헌재의 정치적 편향성,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이 지지를 얻는 이유다.
한국갤럽이 이달 11~13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16.1%)에서 헌재에 대해 ‘신뢰한다’는 응답률은 52%, ‘신뢰하지 않는다’는 40%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2023년 10~12월 실시한 공공기관 신뢰도 설문 조사에서도 우리나라의 법원·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33%로 OECD 평균인 54%보다 크게 뒤처졌다.
인류 역사에서 자유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1989년의 저서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의 다른 저서 ‘트러스트’에서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원활한 협력이 이뤄져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이 촉진돼 경제적 성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심각한 갈등과 논란이 결국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지만 사법부조차 신뢰받지 못한다. 그 결과 갈등과 논란이 해소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지키는 보루인 사법부가 흔들리면 사회의 안정은 물론 경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심리적 분단’에 이르렀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최근의 갈등과 논란을 사법부가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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