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표 우화가 돌아왔다. 이번엔 ‘기생충’과 ‘설국열차’, 혹은 ‘옥자’의 중간 어디쯤에서 만났다. 인간을 프린팅하는 ‘휴먼 프린팅’ 기계에서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들이 출력되며 벌어지는 SF 영화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고군분투하는 미키17의 생존기는 현실과 맞닿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결국, 땀 냄새, 인간냄새 나는 ‘봉준호’ 장르의 우화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17’을 원작으로 하는 이번 영화는 역사학자였던 미키를 처참히 망한 마카롱 가게 사장으로 둔갑시킨다. 가게를 열며 사채까지 끌어다 쓴 미키는 지구 끝까지 쫓아오는 사채업자들을 피하기 위해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와 행성 니플하임으로 떠나는 항해에 지원한다.
미키가 지원한 건 ‘익스펜더블(expendable)’. 말 그대로 소모품처럼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며 죽음을 반복하는 일이다. 죽을 때마다 이전의 기억과 함께 새로운 몸을 얻을 수 있지만, 미키의 죽음이 반복될수록 외주화된 위험은 당연해지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사라진다. 티모마저 태연히 “죽는 건 어떤 느낌이야?” 물으며 웃어 보이자, 미키는 말을 아낀다.


니플하임으로 떠나는 우주선에선 독재자 마샬(마크 러팔로 분)의 어설픈 진두지휘 아래 엄격한 계급과 차별도 존재한다. 부조리한 우주선 내 시스템은 꼬리칸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설국열차’나 반지하에서 신분 상승을 노린 ‘기생충’처럼 필연적인 추락을 예감하게 한다.
가끔 ‘왜?’라는 의문을 품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 현생이 고된 미키는 그저 순응할 뿐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러(?)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샬과의 저녁 식사를 선택한 건 지금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찌질하지만 처연하고, 얼빵하지만 가여운 미키를 변화하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키의 곁을 지키는 나샤(나오미 애키 분)의 사랑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단순히 미키를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선 밖 외계 생명체와의 갈등을 봉합하고 나아가 인간 중심의 모든 부조리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다.

지난 20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봉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목표, ‘깃발’을 들고 만들진 않는다”면서도 “자본주의 분석 같은 건 사회과학 전문가들의 책에 명확히 적혀있다. 영화는 그런 틈바구니 속에 숨 쉬는 인간들의 감정을 나누기 위해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를 본) 동료 감독으로부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며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 미키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결국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력만점 미키의 1인 2역을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과 필모 사상 첫 악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의 미워할 수 없는 독재자 연기도 미키17을 꼭 봐야 할 이유다.
장르 ‘봉준호’를 집대성한 ‘미키17’은 오는 28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한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