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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부터 ‘로봇 심판’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던 메이저리그(MLB)가 시범경기 무대에서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 챌린지를 실험 중이다.
ABS는 야구장에 설치된 카메라가 추적한 투구 궤적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하는 시스템으로 미국 언론에서는 주로 ‘로봇 심판’이라 칭한다.
모든 투구를 ABS 시스템으로 판정하는 KBO리그와 달리 올해 MLB 시범경기에 도입되는 ABS는 챌린지 형식을 띠고 있다. 심판이 판정하고, 선수가 모자를 반복해서 치고 이의를 제기하면 ABS 시스템으로 판독하는 방식. 팀당 두 번씩 챌린지 기회가 있고, 판정이 번복되면 챌린지 기회가 유지된다.
심판의 권위를 지키면서 우선은 치명적 실수만 잡아내겠다는 것이 MLB 사무국 구상.
MLB가 ABS 도입 추진한 이래 빅리그 레벨 경기에서 ABS를 적용한 것은 이번 시범경기가 처음이다. 첫날부터 ABS 챌린지가 나왔다. 21일(한국시각) 시작한 ‘2025 MLB 시범경기’ 시카고 컵스-LA 다저스전.
1회말 무사 1루 볼카운트 1S에서 맥스 먼시(다저스)가 타석에 들어섰고, 컵스 선발 코디 포티트의 2구째가 구심으로부터 볼 판정을 받았다. 투수는 모자를 치면서 ABS 챌린지를 신청했다. 심판이 이를 받아들였고, ABS를 통한 리뷰 결과 볼 판정이 번복돼 2S가 됐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은 포티트는 삼진을 잡아냈다.
경기 후 로버츠 감독은 “챌린지 횟수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승부처에서 정확한 판정을 받아야 하는 것에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말하며 로봇 심판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남겼다.
피치클록(Pitch Clock), 연장 승부치기 등 과감하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경기시간 단축의 결실을 맺고 있는 MLB는 유독 ABS에 대해서는 신중했다. 포수 핵심 기술 중 하나였던 프레이밍 기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반감과 입지가 좁아질 심판들의 반발도 거셌던 것이 사실이다. 피치클록 효과를 확인한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시간을 들여 제대로 시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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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팬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미국 현지 야구팬들도 ‘ABS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KBO리그와 마찬가지로 MLB에서도 오심에 가까운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이어지고 있다. 변형 패스트볼이 속출하고 볼 스피드가 더 붙고 있는 현대야구판에서 사람인 심판이 모든 것을 잡아내기 어렵다. 과거에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여기며 하나의 묘미 아닌 묘미로 여겼지만,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볼 하나의 오심이 경기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다양한 통계 수치를 야구팬들도 접하고 있다.
물론 ABS 시행으로 프레이밍 기술의 가치가 사라지면 포수 포지션을 차지하는 선수 유형이 달라질 수 있다. 수비에 집중하는 프레이밍 포수 대신 공격적인 선수가 포수 포지션을 점유하는 등 선수들 커리어에도 혼란이 따를 수 있다. 프레이밍 스킬 등 분명 놓치는 부분은 아쉽지만, 잘못된 판정으로 인해 경기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아쉬움 보다 더 큰 분노를 자아낸다.
2024시즌 ABS를 도입한 한국 KBO리그도 초반에는 논란이 컸지만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는 공정의 키워드가 오심으로 인한 분노 보다 낫다는 여론 아래 ABS가 자리 잡았다. 지난 시즌 선수나 지도자들이 완벽하게 ABS에 적응하지 못해 불만이 종종 나왔다. 하지만 투구 판정의 공정성을 크게 높였다는 면에서는 팬들이 선호한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첫 발을 내딛었고, 이제는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도입 전 컸던 반대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찾기 어렵다. ABS가 정상 가동한다면, 최소한 오심이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찝찝함을 안고 경기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이미 체감했고, 미국도 점점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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