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쥐떼 퇴치’ 방역업체가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 지난 19일 출동했다. 원스톱방역 정의석 대표가 화단 울타리를 발로 툭 걷어차는 순간 쥐 3마리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정 대표는 “이 정도면 단지 전체에 쥐떼가 싹 퍼진 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도 “쥐가 나왔다는 민원이 올 들어 3~4일에 한 건 꼴로 들어오고 있다”며 “한 가구는 하루에만 쥐 4마리가 싱크대, 천장, 냉장고 바닥에서 잇따라 나왔다고 신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화단 쥐구멍→하수관 물어뜯은 틈새→아파트 싱크대·냉장고 바닥
2월에도 강추위가 계속 되면서 야생 쥐떼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아파트로 찾아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도 쥐떼가 곳곳에 침입 통로를 뚫은 것으로 나타났다. 화단에는 남자 어른의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쥐구멍이 보였다. 외부에서 아파트 지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튼 셈이다.
실제로 각종 설비가 들어선 아파트 지하 공간을 쥐떼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재질(PVC)로 만든 하수 파이프에 손전등을 비추자 작은 틈새와 깨진 자국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정 대표는 “이 틈을 쥐들이 이빨로 물어뜯고 넓힌 다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하수관 안쪽을 기어오르면서 움직이기 때문에 층이 낮은 세대는 집 안에서 쥐가 나온다”고 했다.

아파트 지하 공간의 콘크리트나 우레탄폼으로 마감된 천장 곳곳에도 틈새나 구멍이 있었다. 주변에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설치한 철제 쥐덫과 끈끈이덫이 있었지만 쥐는 걸려들지 않고 벌레만 잡혀 있었다. 정 대표는 “쥐의 이동 경로를 잘 파악해 약을 치고 덫을 깔아야 한다”라며 “요새 쥐는 웬만한 덫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 대표는 이 아파트 쥐떼 퇴치에 필요한 기간을 최소 6개월로 잡았다. 쥐약은 물론, 쥐가 들어오면 전기로 쥐를 기절시키는 방식의 쥐덫, 끈끈이덫 등 다양한 방역 제품을 사용할 계획이다. 비용은 총 500만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상황에 따라 추가금이 붙을 수도 있다고 한다.
◇길고양이 돌보는 캣맘, 강한 쥐덫·쥐약 사용엔 반대
아파트 쥐떼 퇴치에는 주민들도 동의하고 있지만 그 방식에는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방역 업체를 부르기 전 우리가 자체적으로 약을 치고 쥐덫을 깐 적이 있다”면서 “그랬더니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맘들이 전화로 언성을 높이거나, 아예 쥐덫을 본인들이 치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주변 길고양이들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를 준다는 40대 여성 김모씨는 “죄 없는 고양이까지 피해를 본다면 그 방역은 잘못된 것”이라며 “길고양이가 쥐를 잡아주기도 할 텐데 화단에까지 약과 덫을 쓸 필요가 있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주민인 30대 여성 이모씨는 “예전에는 길고양이들이 배고파서 쥐 사냥을 좀 했다고 들었다”라며 “근데 요새는 캣맘들이 먹이도 주고 집도 줘서 고양이들이 쥐 사냥은커녕 쥐 퇴치에 방해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주민 유모(54)씨는 “쥐 나와서 집값 떨어지는 거 캣맘들이 책임지는 것 아니지 않느냐”라며 “쥐들이 냄새만 맡아도 죽을 정도로 강한 약을 써서 아주 그냥 싹쓸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논란은 다른 아파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20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최근 업체를 불러 단지 곳곳에 쥐약, 쥐덫 등을 깔았는데 동네 캣맘이 이걸 마음대로 치우려다 주민에게 걸려 큰 소동이 있기도 했다”라며 “다른 주민들은 강한 약과 덫을 써서 쥐를 다 없애길 바라는데, 그랬다간 캣맘 민원이 관리사무소로 빗발치니 중간에서 너무 괴롭다”고 했다.
한편 야생동물보호단체도 강한 쥐약·쥐덫을 쓰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가 언덕배기 숲이나 산을 끼고 있는 경우 많은데,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왔다가 쥐 잡는 끈끈이에 걸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되도록 야외에는 살상력이 너무 강한 쥐약이나 끈끈이 쥐덫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센터가 지난해 충남 지역에서 끈끈이 쥐덫에 걸린 야생동물 구조 건수는 35건이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1년 이래로 가장 건수가 많았다. 또 황조롱이, 수리부엉이같은 천연기념물이 끈끈이 쥐덫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센터가 2011~2023년 끈끈이 쥐덫으로부터 구조한 야생동물 190마리 중 45마리(23.7%)가 황조롱이, 4마리(2.1%)가 수리부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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