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 여야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빈손으로 끝이 난 가운데, 여야는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네 탓 공방’에 돌입한 모습이다. 정쟁을 그치고 민생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자던 의지와 달리 결국 정책 주도권 다툼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국민의힘은 사실상 빈손으로 끝난 국정협의회 책임을 더불어민주당에 겨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반도체 특별법과 연금 개혁에 있어서 입법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조금도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에는 이념도 정파도 없다”며 “말로만 연금 개혁이 급하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민주당의 이중적인 태도는 미래세대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앞서 여야는 지난달 최 권한대행을 비롯해 우원식 국회의장, 양당 대표가 참여하는 국정협의회를 출범하고 민생 현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실무협의 끝에 전날(20일) 진행된 첫 회의에서 여야정은 추가경정예산 필요성에만 공감했을 뿐, 그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특히 그간 힘겨루기를 이어오던 반도체법과 연금개혁에 대해선 사실상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반도체법의 경우 ‘주52시간 적용 예외’를 둘러싼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여당은 그간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의 근로 시간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근거로 ‘주52시간 적용 예외’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견이 없는 부분’ 우선 처리 입장을 밝혔고 전날 협상에서도 이를 고수했다. 정부와 여당이 ‘3년 한시 적용’을 주장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였다. ‘모수개혁’이라도 우선 하자는 민주당의 주장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의힘의 입장이 엇갈리면서다. ‘모수개혁’ 숫자를 놓고서도 힘겨루기를 펼쳐졌다. 보험료율 13% 인상에 대해선 양측 모두 공감했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해선 야당은 44%, 여당은 42% 선을 주장하면서다. 여당은 ‘재정 안정성’에, 야당은 ‘노후 소득 보장’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여야는 일단 대화의 물꼬를 틔웠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지만, 쟁점 사안에 대해 물러설 의사를 보이지 않으면서 향후 논의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새어 나오는 상황에서 정책 주도권을 쥐기 위한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은, 향후 논의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여야가 책임 공방을 벌이고 나선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협상 불발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꺼낸 ‘중도 보수’ 프레임과 엮으며 이 대표의 진정성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반도체법 관련 ‘주52시간제 적용 예외’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은 좋은 공세의 명분이 됐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강성귀족노조 눈치만 보며 반도체특별법 원안 처리에 반대하는 민주당이 무슨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위장전입을 시도하는가”라고 쏘아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여당이 오히려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여당의 무능을 부각해 대안세력으로서의 존재감 띄우기에 나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이것 안 된다, 저것 안 된다’ 이러지 말고 ‘이것 하자, 저것 하자’ 이렇게 능동적으로 나와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국정에 대해서 아무 정책을 내지 않고 야당이 하자는 것 반대만 하면 그것이 무슨 여당이겠나”라고 꼬집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전부가 아니면 전무? 국민의힘은 비합리적 태도를 버리라”고 직격했다.
여야가 신경전을 펼치는 가운데, 전날 일단 공감대를 이룬 추경 관련 협의도 속도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부내용에 대해 실무협의를 통해 논의하기로 했으나, 민주당이 힘을 싣고 있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두고 여당이 여전히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대표적 난제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정치적 공방이 격화될 경우 추경 논의 자체가 동력을 잃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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