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확정했다. 국내 산적한 현안이 많은 데다, 결정적으로 미국 재무장관의 불참이 공식화하면서 며칠간 자리를 비우는 것이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가 겹쳐 불참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1일 “최 권한대행은 오는 26~2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기재부는 당초 지난주까지만 해도 최 권한대행의 G20 회의 참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의 ‘키맨’으로 여겨지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참석 가능성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소추로 트럼프 신(新)정부와의 ‘정상 외교’가 부재한 상황에서, G20을 계기로 한·미가 정식으로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할 기회로 여겨지면서다. 일각에선 권한대행 출장에 따른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기) 동원 여부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베센트 장관이 이날 G20 회의 불참을 공식 선언하면서, 기재부 역시 판단을 굳히게 됐다. 베센트 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워싱턴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G20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며 “다른 고위 당국자가 대신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최 권한대행 대신에 재무장관 대리 자격으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참석할 예정이다. 2008년 기재부 출범 이후 기재부 장관이 G20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G20 회의의 또 다른 참석 주체인 이창용 총재도 오는 25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일정과 겹쳐 불참하게 됐다. 이 총재 대신 권민수 부총재보가 남아공에 가게 된다. 대신 이 총재는 G20 회의 이후 오는 28일과 3월 1일 이틀간 남아공에서 열리는 BIS(국제결제은행) 총재 회의는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의 경제수장들은 모두 참석할 수 없게 됐지만, 외교수장은 이번 회의 전 일정에 참석해 외교 공백을 가까스로 메꾸고 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앞서 지난 20~21일(현지 시각) 열리는 G20 외교장관회의에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그는 호주와 양자회담을 시작으로 믹타(MIKTA,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튀르키예·호주 협의체) 외교장관회의, 영국·유럽연합(EU)·네덜란드·남아공과의 양자회담 등 일정을 소화 중이다.

한편 이번 남아공 G20 회의를 둘러싼 잡음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에 이어 재무장관까지 모두 이번 회의에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이례적인 두 수장의 불참은 최근 악화한 미국과 남아공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다자간 회의보단 양자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식 외교 스타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자주의 체제가 힘을 잃은 상징적 사건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위기 관리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 창설자 겸 회장인 이안 브레머(Ian Bremmer)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G7이나 G20 같은 국제 협의체가 더는 과거처럼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 ‘G-zero’(강력한 글로벌 리더가 부재한 상태에서 국제 질서가 혼란스러워지고 협력이 어려워지는 현상)가 가장 큰 글로벌 리스크”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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