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C커머스)의 국내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동안 C커머스는 중국산 초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해외 직구(직접구매)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국내 판매자(셀러)를 끌어들여 쇼핑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구축하려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사업이 부진해질 것으로 보이자, C커머스 업체들이 한국 시장을 대안으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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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무에서 파세요… 韓 판매자 모집 나선 C커머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국 쇼핑 플랫폼 테무는 최근 오픈마켓(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 주는 온라인 장터)을 열기로 하고 한국인 판매자 모집에 나섰다. 중국산 제품을 해외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구 방식으로 판매하던 기존 사업에 더해 한국 제품을 직접 유통하는 로컬투로컬(L2L) 사업을 추가한 것이다.
2023년 7월 한국에 진출한 테무가 한국인 판매자를 모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위해 테무는 지난해 말부터 인사·총무·마케팅·물류 등 핵심 직군의 담당자를 뽑고 있다. 최근엔 김포에 위치한 대형 물류센터와 장기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주요 물류업체와 계약하는 방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테무 사업은 본사가 제품을 저가로 직매입한 후 판매 및 배송까지 하는 구조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에서의 사업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선 800달러 미만의 소액 소포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면제가 폐지되는 데다 중국산 제품에 추가 10%의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이에 테무는 직매입 판매 대신, 판매자가 직접 제품을 미국으로 배송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중국 패션 플랫폼 쉬인 역시 생산 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업체들에 매입가를 높게 쳐주고, 납품 기한을 연장해 준다고 제안한 바 있다.

◇ 中 소비 둔화·美 트럼프발 관세… 대안은 한국?
업계에선 C커머스 업체들이 미국 관세 정책 변화에 맞춰 미국 사업 전략 수정과 함께 한국 시장을 대안으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린아 LS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비가 둔화하고 미국은 구매가 과거 대비 활발하지 않게 되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를 확보한 한국을 주요 공략 시장으로 삼을 공이 크다”면서 “미국에서 입지가 불안정해진 C커머스 업체들이 한국에서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진행하게 되면, 국내 이커머스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국의 해외 직구 중 중국 비중은 2023년 49%에서 지난해 60%로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발 직구 금액은 4조7772억원으로 전년 대비 48% 늘었다. 중국산 제품 대부분이 초저가인 걸 고려하면, 그만큼 구매 건수가 많았다는 의미다.
중국 직구 활성화와 함께 C커머스 플랫폼의 MAU도 증가했다. 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의 연간 MAU는 쿠팡,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순이었다. 이 기간 알리와 테무의 연간 결제 추정 합산 금액은 4조2899억원으로 전년 대비 85% 증가했다.
직구를 통해 인지도를 확보한 C커머스가 직진출에 나선 건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전선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알리와 테무 입장에선 로컬(지역) 소비자들에게 업체나 셀러를 입점시키는 게 플랫폼의 신임도와 신뢰도를 증대시키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테무에 앞서 2018년 직구로 한국에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도 2023년 10월 한국 상품 전문관 ‘케이-베뉴’를 출범하고 한국 판매자를 모집한 바 있다. 이 회사는 2026년까지 11억달러(약 1조5848억원)를 투자해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고 한국 판매자의 글로벌 판매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쉬인 역시 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특화 상품군을 출시하며 영향력을 넓히는 중이다.

C커머스는 또 국내 플랫폼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한국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이달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업계에서는 알리가 에이블리의 경영 참여에 나선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울러 알리익스프레스는 올 상반기 중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지마켓과 합작법인(JV)도 설립해 공동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 개인정보 침해 논란… 서버 이전 등 제도적 보완 필요
과거 C커머스는 제품 경쟁력이 약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오죽하면 가성비는 좋지만, 품질이 실망스럽다는 의미로 ‘테무산 OO’이라는 조롱 섞인 신조어도 나왔다. 그러나 한국산 제품을 직접 유통하는 건 다른 의미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을 한국에 파는 것과 자본을 투입해 한국에서 플랫폼을 운영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후자인 지금이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인 쿠팡을 운영하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지난해 5월 콘퍼런스콜에서 C커머스 진출로 인해 경쟁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플랫폼에 입점하는 판매자로서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겼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C커머스는 입점만으로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지마켓과 쿠팡 등 기존 이커머스도 역직구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대개는 내수시장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C커머스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개인정보 유출 논란은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최근 중국 인공지능(AI) 챗봇 딥시크가 사용자 정보를 틱톡 운영사인 바이트댄스에 넘겼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국산 애플리케이션(앱)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알리익스프레스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실태 조사 결과 한국 고객의 정보를 해외 판매 업체 18만 곳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19억7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테무에 대한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 교수는 “C커머스의 제품의 품질이나 개인정보 보완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돼 온 만큼 한국 사업 데이터베이스 서버를 한국에 두는 식의 방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 소비자의 민원 및 피해 조치 체계 등 제도적 보완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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