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해야
“국회 권한 남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낭만적 생각”
악용 못하도록 국민투표 등 절차 엄격히 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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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계기로 각계에서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대표들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모임’에서는 국회에 개헌 과제를 논의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범국민 개헌촉구 서명운동’도 전개하기로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 여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들도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부겸 전 총리, 김경수 전 지사 등 민주당 내 이른바 ‘비명계 야권 잠룡들’까지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그동안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개헌을 주장하는 의견이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여야 원로들과 여당, 특히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이 직접 나서서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현행 헌법을 만들 때도 이전 제5공화국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통제장치를 뒀다.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고 임기도 7년에서 5년 단임으로 단축했으며, 국회해산권을 삭제했다. 그 대신 국회를 1년에 150일까지만 개회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삭제해 국회의 상설화를 기하고, 국정감사권을 부활하는 등 대정부 견제 권한을 강화했다. 당시에는 이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의 그간 정치 상황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착각이었다. 여소야대인 21대와 22대 국회에서 정부는 무기력하기만 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해 사실상 그들의 뜻대로 운영했다. 쟁점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고, 이재명 대표 취임 이후 무려 29번이나 ‘아니면 말고’ 식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정도로 탄핵권을 남발하는 등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심지어는 헌정사상 최초로 2025년도 예산안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감액 처리해 버렸다. 이에 맞설 수 있는 정부‧여당의 대책은 기껏해야 대통령의 거부권뿐이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면 “탄핵 사유”라고 위협했다(실제로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소추 사유에는 ‘거부권 행사’도 포함됐다).
지성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의 말대로 “국회의 권한 남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낭만적 생각”으로 헌법을 만들다 보니 이런 ‘제왕적 국회’가 나타난 것이다.
미래에는 현재의 22대 국회보다도 더 제왕적인 국회가 출현할 수도 있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한다면, 국회에 대한 확실한 통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임시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제도도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국회 통제 방안의 하나가 되겠지만, 그간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절한 통제 수단이 되기 어렵다. 또한 열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상대 정당 국회의원을 끌어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따라서 이참에 국회해산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전 헌법에서는 대통령은 ‘국회의장의 자문 및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 국회를 해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상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회를 해산할 수 있어 악용의 소지가 있었다.
앞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다면, 대통령이 국회해산권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국민투표에 붙이게 하는 등 절차를 엄격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국회 해산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니 “국민의 주권 의지가 국정에 반영되도록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라고 한 이 대표의 약속과도 부합한다. 물론 이에 따른 당분간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막대한 예산이 낭비된다는 문제도 있겠으나, 작금의 정치 상황처럼 장기간에 걸쳐 국론이 사분오열되고, 낡은 이념대결이 판치고, 국정이 마비되는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한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특정 정당의 입법권 전횡을 자제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혼돈의 국제 정치 격랑 속에서 국익은 안중에도 없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민생은 내팽개친 채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대한민국 국회,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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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선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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