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코엑스=이영실 기자 “봉준호 감독의 시각은 아름답다. 그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매력은 굉장히 특별하다.”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미키 17’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연출을 맡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나오미 애키‧스티븐 연‧마크 러팔로 등이 참석해 취재진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다.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시튼의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일곱 번째 장편 연출작 ‘기생충’(2019)으로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등 전 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이후 첫 작품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런던 프리미어와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돼 독창적인 세계관과 봉준호 감독 특유의 풍자와 유머 속 담겨 있는 심도 있고 날카로운 메시지 등을 향해 호평이 쏟아졌다. 국내에서도 예매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은 “원작 소설의 핵심 콘셉트는 휴먼 프린팅”이라며 “사무실에서 서류를 출력하듯 사람을 프린팅한다는 콘셉트 자체에 이미 희비극의 쓰라린 드라마가 내포돼 있다. 그 지점에서 기존 복제인간물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미키 17’의 차별화 포인트를 짚었다.
이어 “출력되는 사람은 미키다. 착하지만 ‘찐따’ 같은, 맨날 손해 보고 다니는 청년이다. 슈퍼 히어로나 천재적 두뇌, 능력을 가진 사람을 출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너무나 평범한,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착하고 가여운 청년이 계속 출력되면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미 거기서부터 기존 SF와 다르게 출발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고 덧붙였다.
‘설국열차’에서는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계급 문제, ‘옥자’에서는 대량 축산 시대 속에 고통받는 동물의 생명 문제, ‘기생충’을 통해서는 양극화 사회의 이면을 극단적인 세 가족의 공생과 참극으로 그려낸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에서는 인간의 본성부터 식민주의, 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는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목표나 깃발을 들고 하진 않는다”면서 전작인 ‘기생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는 반지하에 살았던 기우(최우식 분)의 하루가 어땠을까, 처음 과외를 하러 부잣집에 들어갔을 때, 잔디밭에 물이 뿌려지는 걸 볼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며 “모든 인물의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영화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키 17’도 마찬가지였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가 프린터에서 출력되고 있는 자기 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 마샬 같은 사람에게 혼나고 무서운 상황에서 얼마나 겁이 날까, 유일한 친구 티모가 깐족거리면서 괴롭힐 때 미키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힘든 상황 속 나샤 때문에 버티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위안과 위로를 받겠구나, 그런 구체적인 감정을 다 나누고 싶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자본주의를 분석한다,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 것은 책에 더 명확하게 설명돼 있을 것”이라며 “영화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숨 쉬는 인간의 감정을 같이 나눠보자는 거다. ‘미키 17’을 본 동료 감독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했을 때 기뻤다. 미키가 여러 힘든 상황 속에서도 결국은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결국 파괴되지 않았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전했다.
‘미키 17’은 로버트 패틴슨부터 나오미 애키‧스티븐 연‧토니 콜렛‧마크 러팔로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개성 있는 캐릭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압축적이고 새롭게 보여준다.
로버트 패틴슨은 같은 외모지만 성격이 극과 극인 ‘미키 17’과 ‘미키 18’을, 나오미 애키는 미키의 여자친구이자 유능하고 용감한 요원 나샤를 연기했고, 스티븐 연은 깐죽거리고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미키의 친구 티모로, 마크 러팔로는 악당이자 독재자인 케네스 마셜로 분해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특히 마크 러팔로는 데뷔 후 첫 악역에 도전, 그동안 보지 못한 파격 변신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성격이 이상해서 사람을 볼 때도 자꾸 이상한 면만 보게 되나보다. 흔히 알려진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면 집착이 생긴다. 마크 러팔로가 그동안 한 번도 악역을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며 웃었다.
이어 “그 첫 기회가 내게 왔다는 게 신나고 재밌었다.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줬더니 (마크 러팔로가) 되게 낯설어했다”며 “‘왜 나에게? 내가 뭘 잘못했어?’ 이런 느낌이었다”고 마크 러팔로의 반응을 떠올렸다.
또 봉준호 감독은 “독재자가 가진 이상한 매력이 있다. 위험한 매력인데 역사 속 독재자를 돌이켜 보면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대중을 휘어잡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그걸 마크 러팔로가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마크 러팔로를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마크 러팔로는 “나 자신도 의심하고 있을 때 믿어준 것에 대해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전하며 “스스로 연기를 보고 만족할 수 없고 항상 미완성인 부분이 보이고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영화의 결과물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영화의 취지에 맞게 연기하는 게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도전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반응이 나올지 겁이 나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마크 러팔로는 독재자 마샬의 모습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일부 반응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마크 러팔로는 “이 인물이 어떤 특정인을 연상시키지 않길 바란다”며 “전형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다. 쩨쩨하고 그릇이 작은 독재자들을 우리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봐 왔잖나. 계속 반복되고. 자신만 알고 자신의 이익만 원하고 연약한 자화상도 갖고 있고 걸국에는 실패하게 되는 독재자들. 다양한 인물이 의도적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인물이 말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하는데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해석을 하게 되길 원한다”며 “전 세계 모든 지도자, 과거의 지도자들을 연상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예언자처럼 현실에서 나타나게 된 요소도 분명히 있다. 소름 끼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닮았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며 “2년 전 촬영할 때는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신께서 보며 그렇게 현실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3년이 더 지나고 나면 이 영화가 더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독재자 마샬에 당당히 맞서고 목소리를 내는 건 냐샤다. 그리고 나샤는 나오미 애키를 만나 더욱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완성됐다. 나오미 애키는 “정말 나를 자유롭게 했던 역할이었다”며 “나샤는 굉장히 진정성 있고 진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캐릭터다. 그런 인물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너무 신났다”고 나샤를 연기한 소감과 함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봉준호 감독은 “나샤는 독재자에게 엄청난 에너지로 소리를 지르고 창과 칼이 아닌 목소리 하나로 제압해 버리는 인물이다. 나오미 애키가 휘트니 휴스턴의 전기 영화에서 역사적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노래하며 연기한 배우다. 그런 에너지를 가진 나오미를 내가 알아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호연을 펼친 나오미 애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티븐 연은 ‘옥자’에 이어 다시 한번 봉준호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스티븐 연은 티모에 대해 “전체적으로 굉장히 재밌는 캐릭터였는데 모두 그를 싫어한다. 미움받는 캐릭터인데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티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티모도 약점이 있다. 그런 것을 탐구해 봤다”고 캐릭터 접근 과정을 떠올렸다. 이어 “연기에 대해서는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체적 비전을 봤을 때 내가 내 역할을 다했다면 참여한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은 스티븐 연에 대해 “‘미키 17’을 SF지만 인간 냄새, 땀 냄새가 나는 영화로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스티븐의 도움 없이는 절대 할 수 없었을 거다. 티모는 일반적인 SF영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인데 스티븐 연이 이런 진귀한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해 줄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배우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감사하고 행운이었다”고 진심을 전했다.

배우들 역시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봉준호 감독의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 듣고 웃음을 터트린 나오미 애키는 “정말 좋았다. 작업을 할 때 감독을 부모라고 생각한다. 아이처럼 통제나 경계선을 설정해 주길 바란다”면서 “‘봉테일’은 내가 기대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자유롭게 해줬다.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봉준호 감독의 자유로운 방식에 익숙해졌고 그의 작업 방식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마크 러팔로는 “봉준호 감독은 정말 섬세하고 꼼꼼한 동시에 지원을 잘해준다”며 “스스로 창의력을 발현해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준다. 봉준호 감독이 스토리보드에 그림을 직접 다 그렸는데 캐릭터의 특징을 그림으로 보여줘서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했다.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만들고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발견하고 볼 수 있게 해줬고 이렇게 꼼꼼하게 설계한 공간에서 연기한 것도 처음이었다”고 봉준호 감독의 현장을 떠올렸다.
또 “정말 친절하다고도 생각했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데 겸손하기도 하다”면서 “그래서 계속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재치 있는 칭찬을 덧붙여 취재진에게 웃음을 안겼다.

스티븐 연 역시 “봉준호 감독은 캐릭터와 배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며 “어느 정도 경계를 주지만 궁극적으로 배우를 믿고 지지해 주는 편이다. 또 봉준호 감독은 눈빛이 정말 아름답다. 시각이 아름답다는 거다. 봉준호 감독만의 시각으로 찾아낸 매력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같이 작업하게 된다면 함께 진화하는 모습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오미 애키는 ‘미키 17’에 담긴 메시지를 강조하며 많은 이들에게 닿길 희망했다. 나오미 애키는 “최고의 영웅, 최고의 지도자들은 어떤 영광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그들이 행동하게 될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사랑에 의해서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이기게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나샤와 미키도 큰 그림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그저 일상을 사는 거다. 어떻게 될지, 무엇을 이룰지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고 한 행동이 갑자기 눈사태를 일으키고 큰 결과를 이뤄낸 거다. 평범함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게 이 스토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날 봉준호 감독은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관련 질문이 나오자 봉준호 감독은 “계엄은 이미 극복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엄을 극복한 우리 시민들, 국민들이 자랑스럽다. 남은 것은 법적, 형식적 절차”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봉준호 감독은 “계엄령 뉴스가 나왔을 때 마크 러팔로가 ‘괜찮냐’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며 “블랙핑크 로제의 노래가 차트 몇 위까지 올라가고 이런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계엄령 뉴스가 나왔다. 좋은 것은 지금은 기자회견을 하고 있잖나. 음악도 영화도 우리의 일상은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봉준호 감독은 “어떤 작품이 스크린에 걸리길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개봉 날 달려가는 흥분감, 이런 것들이 시네마 자체가 가진 힘이자 소중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영화가 가진 힘을 강조하면서 “‘미키 17’은 우주선도 날아다니고 수만 마리 크리퍼가 설원을 달려가는 스펙터클한 장면도 있지만 배우들의 풍부하고 섬세한 연기를 대형화면으로 봤을 때 그것 자체가 스펙터클이 되는 모먼트들이 있다. 극장에서 안 보면 후회할 것”이라며 극장 관람을 독려했다. ’미키 17‘은 오는 28일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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