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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보도, ‘균형 강박’ 속 고민 깊은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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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취재진이 특정 인물의 발언을 취재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여러 취재진이 특정 인물의 발언을 취재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12·3 내란 사태 이후 언론을 향한 비판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 등 비상계엄 선포를 주도한 내란 세력과 이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을 제목에 직접 인용구로 달아 보도하면서 이를 확산한다는 맥락이다.

현장에서 직접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 고민은 깊다. 사실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누군가의 발언을 그대로 나르는 것 같다는 자괴감을 전하기도 했다. 부족한 시간, 자극적 발언이 부각된 기사가 ‘잘 팔리는’ 현실, 적은 인력에서 파생되는 문제 등은 기자 개인을 넘어 각 언론사 뉴스룸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이어진다. 지난 17~18일 경력 4~20년 차 이상에 이르는 정당, 법조 현장 취재 기자 및 데스크급을 포함한 8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기사를 생산하는 중·저연차 기자들은 한정된 시간에 기사를 쏟아내야 하는 현실 속 고민을 전했다. 방송사 정당 출입 A기자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기에 정확도, 신빙성이 조금 저하된 발언도 일단 보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야당이 제보를 정치인 발언을 통해 의혹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아침 10시에 발표해도 저녁에 내보내려면 팩트체크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의원은 면책특권이 적용되니, 의혹이 가치 있다고 볼 때 이를 따옴표 처리해 쓴다”는 설명이다.

A기자는 “국회에서 챙길 일정과 기사가 많다 보니 ‘누구는 뭐, 누구는 뭐 마크해’ 이렇게 역할을 배분한다”면서 “방송사는 일종의 기계 부품처럼 큐시트에 맞춰서 보도해야 하는 것이 많다. 정당에서 정치인 싱크(발언 녹취)마저 하나씩 공평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전한 뒤 “(타사의 경우) 여당 출입 기자가 여당 발언이 말도 안 돼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안 쓰면 정당에서 항의가 들어온다”고 했다.

서울 소재 언론사에서 법조 취재 중인 B기자는 “탄핵 국면에서 내란 옹호 세력들의 말을 기사화하는 것이 지지자들에게 지령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아서 서부지법 폭동이 났을 때 자괴감이 컸다”고 했다. 다만 “법조에서는 말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따옴표 저널리즘’의 순기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히려 실시간으로 진술이 증거로 남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를 출입하는 매거진 소속의 C기자는 “따옴표를 침으로서 기자들은 ‘우리는 받아쓴 거다, 의원이 잘못 말했다’고 피해 갈 수 있다”고 했다.

지역 매체는 수도권 중심 현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다. 제주지역 언론사 D기자는 “계엄, 내란이 아주 엄정한 사안인 만큼 지역에서도 꾸준히 후속 보도를 해야 했는데 여건상 지역에서 관련 내용을 취재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전무했다. 결국 인터뷰 등 누군가 전해주거나, 중앙지에서 보도하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에 그쳤다”면서 “많이 아쉬우면서도 어떤 대안이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 전했다.

현장 기자들은 직접 인용구를 앞세운 기사가 보편화하면서 발화자들의 자극적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기사가 쉽게 쓰이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고민도 전했다. 탄핵 관련 취재 경험이 있는 경제 매체의 15년차 이상 E기자는 “계엄 이후 극단적 유튜버들이 퍼 나르는 정보들에 대해 레거시 미디어가 게이트키핑을 해줘야 하는데 이들과 경쟁하다 보니 자극적인 정보들을 너무 같이 다루고 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당 출입 기자들은 격무에 시달리는 동안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치인 발언을 놓치이 않으려 계획한 기사 외에 추가 보도를 하게 되는 현실도 전했다.

영남권역 언론사 법조출입 F기자의 경우 “기사도 휘발되기 쉽게 쓰이고, 그 노동에 대한 기억도 쉽게 휘발되어 지금은 고민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점도 고민”이라고 전했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할 경우 조기 대선 국면에서 따옴표 제목을 비롯한 받아쓰기 보도 행태가 극심해질 거란 우려도 있다. B기자는 “언론사 내부적으로 만연한 ‘한 건 주의’를 비판하고, 조회수에 연연해 자극적인 워딩을 앞세워 기사를 내지 않으려 해야 한다”면서 “(조기 대선 시) 쏟아지는 관계자들의 말, 사실인지 확인 안 되는 주장들이 난무하면서 따옴표 저널리즘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인 배보윤·배진한·서성건 변호사를 취재진 영상카메라가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측 대리인인 배보윤·배진한·서성건 변호사를 취재진 영상카메라가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C기자 또한 “속보 경쟁 체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해결 방안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면서 “공자님 말씀, 교과서적 얘기가 될 수 있다”는 한계를 토로했다.

결국 데스크급 이상의 역할이나 회사 차원 결단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다수 확인됐다. D기자는 “데스크 역량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내란 사태는 단순히 윤석열 개인의 오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정부와 군, 대통령 측근이 치밀하게 입체적으로 계획한 사건”이라면서 “짚어야 할 사안이 많은데 보도하는 내용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단 생각”이라고 말했다.

F기자는 “어려운 기사나 심층 기사를 쓰기 위해 언론사 내부에 기자 채용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언론사 중에 가치 있는 기사를 많이 쓰는 언론사들에게 심사를 해서 정부 지원금을 주면서 수익 창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책임직급 이상의 기자들도 문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사 소속의 20년차 이상 G기자는 “(따옴표 보도는) 해석에 대한 파장에 대한 책임을 벗으려는 게 가장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 취재 부서에서 ‘얘기한 그대로 기사에 넣어줘야 뒤탈이 없다’는 생각에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만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되는 발언 보도를 자제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는, 윤 대통령 사례를 들어 “현직 대통령이고 계엄 사태를 초래했던, 국민의 생활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던 이의 발언이 왜 논리적으로 부정합성을 갖는지, 논리적 충돌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기사가 아니면 어떤 것을 기사라 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언론계 보도 관행 문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은 “(내부에서 문제를 지적하면) 현장 기자들은 바로 ‘그럼 속보 대응 어떻게 하느냐’고 반응한다. 속보 쓰라면서 고치라는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기자들이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따옴표로 1보를 쓰고 이후 종합을 내는 관행이 너무 굳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 개인의 각성도 필요하지만 개개인을 넘어 경영진과 국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옴표 보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다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언론이 ‘내란세력 스피커’가 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강혁 변호사(전 민변 언론위원장·법무법인 H&K)는 “기본적 주장은 당연히 넣어줘야 하고 오히려 잘 받아써야 한다”면서 “거기서 끝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소한 이전에 이미 나온 사실 등을 신속하게 점검해서 1보에서 못 내면 2보에서라도 종합을 내야 한다”면서 “최대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 말해줘야 한다”고 짚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 제목에 직접인용부호를 사용한 주요 일간지 보도를 연구했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사 제목에 인용문을 쓰는 현상이 전 세계에서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게으른 용어”라며 ‘따옴표 저널리즘’ 표현을 붙어 언론 보도 전반을 비판하는 방식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문제적 보도가 있다면 그 보도가 나온 이유를 묻고, 그보다 시민 관점에서 필요한 보도가 무엇인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그는 “기자들도 누가 (기사를) 잘 쓰는지 보고 서로 격려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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