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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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는 1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적극 활동한 길원옥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란 길 할머니는 13살이던 1940년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 만주의 위안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1년 뒤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도우려 1942년 또 중국으로 갔다가 위안소에 끌려갔다.
해방 뒤 귀국한 길 할머니는 가족을 비롯해 그 누구에게도 끔찍한 경험을 털어놓지 않고 살다가, 1998년 티브이(TV)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장면을 보고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했다. 이후 일본군 ‘위안부’의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앞장서 왔다. 2004~2020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 집’에서 생활하며 수요시위, 일본 순회 증언 집회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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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평화의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한 단짝 김복동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는다면 그 돈을 세계 전쟁 피해 여성을 돕는 데 쓰겠다”며 ‘나비기금’을 제정했다. 2014년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실을 찾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전 세계 150만 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길 할머니의 목소리는 음악과 책이 되기도 했다. 길 할머니는 2017년 ‘길원옥의 평화’라는 음반을 발표해 어릴 적 꾸었던 가수의 꿈을 이뤘다. 길 할머니의 증언은 2018년 김숨 작가에 의해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란 제목의 증언집 소설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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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할머니는 2019년 1월 먼저 세상을 떠난 단짝 김 할머니 영정을 보며 “이렇게 빨리 가시네”라며 안타까워했는데, 결국 둘은 하늘에서 재회하게 됐다. 길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7명으로 줄었다. 90~95살이 2명, 96살 이상이 5명으로, 평균연령이 95.7살에 이른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은 “또 한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떠나보내게 돼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께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지원하고,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길 할머니의 빈소는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 30분이다.
한겨레 정인선 기자 /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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