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에는 안정적인 일상, 여유로운 인생 2막을 꿈꾸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영용(75) 씨는 그 반대의 삶을 산다. 매일 아침 2시간 동안 근력 운동을 하고, 자격증과 학위 공부로 하루를 꽉 채우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게 그의 일과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취득하는 자격증과 학위가 얼마나 쓸모 있을지 의문을 품는 주변인들도 있다. 하지만 신 씨는 도전하고 배워나가는 것 자체가 인생의 의미라고 믿는다. 라이프점프는 평생학습을 삶의 동반자로 삼은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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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씨는 1951년 경남 밀양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를 “풍족하지 못해 모두가 힘들게 살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신 씨의 청소년기도 그랬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농사일을 돕느라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계속 이렇게 살게 되는 걸까’하며 고민하던 그는 19살에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배고픈 하이에나였어요. 공장에서 일은 일대로 하고 월급은 못 받은 채 내쫓기기도 했어요. 알고 보니 촌사람을 부리고 월급을 가로채는 악덕 사장이더군요. 어린 마음에 ‘법을 잘 알았으면 이런 일을 안 당했을까, 힘이 좋았으면 한 대 때려줄 수라도 있었을까’ 같은 생각도 했지요.”
신문도 팔아보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던 그는 설움이 북받칠 때마다 배움을 갈망했다. 어린 신 씨가 보기에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취업을 잘하고, 가방끈이 길면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어디서든 적응을 잘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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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의 눈에 우연히 ‘무료 기술 교육, 숙식 제공’이라는 광고가 들어왔다. 1970년대는 중동의 건설 붐으로 한국 기술자들이 대거 중동으로 파견됐던 때다. 그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기술 교육을 듣고, 1979년 건축목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생애 첫 자격증은 삶의 행로를 바꿨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2년, 리비아로 1년 파견돼 보조 잡부로 일했다.
“말이 안 통해서 손짓으로 소통하며 살았죠. 그래도 자격증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떳떳했는지 몰라요.”
귀국한 신 씨는 기술자로 살며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도 품에 안고, 44세에는 시설관리직 공무원으로 식약청에 입사해 2011년 정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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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씨는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하고 나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공무원이 된 후, 동명대에서 야간 과정으로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도전하고 배워나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그는 이후 여러 방송통신대, 사이버대 등에서 경영학, 요가명상, 한방건강 등 6개의 학위를 취득했다. 한자지도사, 보일러기사, 냉동기사, 마사지사, 논술지도사 등 그가 가진 자격증만 45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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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 씨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2010년 960번의 도전 만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해 도전과 끈기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차사순 할머니다.
“960번이요. 960번. 대단하지 않나요. 생명이 있는 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도 도전과 끈기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등에 봉사를 하고 싶어 사이버한국외국어대에서 한국어 교원 학위 마지막 학기를 밟고 있다. 프로 비보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kg짜리 바벨을 들고 스쿼트를 하고, 철봉에 오르는 등 매일 아침 2시간씩 운동한다.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노력해도 잘 안될 때가 많아요. 답답하지요. 그럴 때는 나이 핑계를 대게 돼요.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아직도 못 고쳤어요.”
이런 그의 노력이 모두 허황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10년간 공부해 온 한자 자료들로 ‘한자 영어만 잘해도 절반은 성공이다’는 책을 써내 작가가 됐다. 오랜 수련 끝에 브레이크댄스의 대표 동작 ‘프리즈(손으로 바닥을 짚고 다리를 높이 치켜올리는 동작)’도 쉽게 해낼 수 있다. 봄이 오면 거주지 인근의 아파트 단지에서 파워포인트와 엑셀 등을 가르치는 노노강사가 될 예정이다.
70세 된다고 인생 끝나지 않아…”후회하기 전 도전해야 해”
유난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전 정신은 전염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얻어 도전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보약을 먹은 것처럼 한 달은 든든하다. “이제 그만 도전하시라”며 만류하는 두 아들도 아버지를 닮는 모양이다. 체육 교사로 일하는 첫째 아들은 바리스타 등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다. 둘째 아들도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관련 분야로 취업한 걸 보면 그는 내심 뿌듯하다. 주변에 그보다 10세는 어린 퇴직자들도 “형님을 보고 반성한다”며 도전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 것이 모두 신 씨에게는 행복이다.
“보통 70세가 되면 인생이 다 끝난 줄 알아요. TV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죠. 하지만 20~30년은 더 살아요. 나중에 분명히 후회해요. 제 나이쯤 되면 자격증을 안 따도, 졸업장이 없어도 살아가지는 게 삶이에요. 그래도 일종의 보험이고 투자지요.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도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도전하면 성장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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