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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10대 후반에 갇혀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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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광주, 광고련의 탄생

“독재 타도! 호헌 철폐!” 거리에서는 구호가 계속 울려 퍼졌다. 대학생들의 행진에 광주 시민과 고등학생까지 가세한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최루탄 가스를 피해 골목 여기저기를 누비며 어느새 난 시위 군중 속 일원이 되어 있었다. 매일 수업을 마치고 광주 시내로 나와 고등학생들이 모여 있는 붉은 깃발을 향해 나아갔고 그곳에서 앳된 고등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또래, 형, 누나들이 있었다. 도시는 매일 매캐한 최루탄 가스와 대학생들의 구호로 넘쳐났다. 1987년 광주의 풍경이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던 그해 봄부터 이런 풍경들을 접했다. 6월항쟁이 시작되고 나서는 나 역시 항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내 인생의 사이클도 바뀌어버린 시기이다.

1987년 6월 29일, 독재 종식을 발표하는 노태우의 6.29선언이 있었고, 그해 12월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1987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이자, 민주화를 이룬 중요한 시기였다.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 현대그룹 노동자들을 필두로 전국의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노조 결성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광주 지역 고등학생들은 노동자대투쟁 시기에는 6월항쟁 때만큼 거리에서 투쟁하지는 않았지만, 6월항쟁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이해 자주 만났고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을 토로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그해 12월, 6월항쟁 시위 현장에서 결속을 다진 고등학생들이 광주 시내 ‘무등서고’ 옥상에서 회합했다. 학교별 대표 1명, 1987년 이전부터 광주 지역의 몇몇 고등학교에 구성되어 있던 지하 소모임 조직들, 광주 지역의 고등학생 문학 서클 ‘시동무’를 포함한 동아리 여럿이 모두 참석해 고등학생 연합체 결성의 필요성과 향후 활동 방향을 진지하게 토론했다. 6월항쟁 이후 고등학생이 변혁의 주체로 나서려면 언더(비합조직)에서 탈피해 대중 조직으로 가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였다. 광주지역고등학생연합(이하 ‘광고련’)의 탄생이었다. 당일에 나는 광고련 의장으로 추천 및 선출되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광고련을 세우는 데 주도적이었던 광주 시내의 고등학생 서클 선배들이 정한 수순이었다).

1988년 학민투 출범

1988년 봄 광고련의 첫 사업은 고등학생 대상의 ‘5.18 비디오’ 상영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동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남여상, 송원고, 광주고, 석산고 등에서 학생들을 모아 광주 YWCA 6층 대강당에서 비디오를 상영했다. 광주 학살이 있던 1980년에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그해 5월 총소리도 들었고, 총알을 피해 집을 나서 윗동네로 대피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버지를 따라나서다가 시체가 가마니에 덮여 있는 모습도 보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집에 모여 주먹밥을 만들던 모습, 그 주먹밥을 시위대 버스로 올려보내는 것도 봤다. 그러나 ‘5·18 비디오’의 내용은 더 끔찍했고 충격적이었다. 숨죽여 비디오를 보던 학생들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몇몇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침통한 상황이었다. 비디오 상영은 우리가 왜 모여야 하고 함께해야 하는지 결속의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광고련은 사회의 모순된 현실과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고등학생들이 앞장서는 것은 물론, 학내의 비민주적인 요소를 타파하고 인간화 교육을 실현하자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출범했다. 당시 광주 지역 고등학교는 대부분 사립학교였는데 비리가 난무했다. 게다가 학생에게 가하는 체벌, 인격 모독 등 폭력의 정도가 심했고, 입시교육으로 인해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도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광고련 산하 조직으로 1988년 4월에는 광주전남학원민주화투쟁위원회가 출범했다. 광고련은 현안별 위원회를 두기로 해, 학원민주화 투쟁을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초기에 활동 공간을 광주 지역으로 한정했지만, 담양, 장흥, 보성 등 전남 지역 고등학생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렇게 위원회의 명칭을 광주전남학원민주화투쟁위원회(이하 ‘학민투’)로 변경했다.

학민투의 출범과 함께 나는 공안 당국의 주시 대상이 됐고, 학교에도 활동이 알려졌다. 학교로 형사들이 찾아오고 교장실, 교무실에 매일 불려 다니며 회유와 설득을 당했다. 급기야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오시고 어머니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그 와중에도 학민투 출범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장소 섭외, 성명서 작성, 유인물, 플래카드 제작부터 학교별 인원 동원 등 매일 밤 버스 막차가 끊길 때까지 회의의 연속이었다. 날밤을 새고 학교에 등교하기도 했다.

출범식 당일, 내가 다니던 학교는 오전부터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형사들은 수업 시간 내내 밖에서 나를 지켜보다, 학교를 빠져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평소에는 차량이 올라올 수 없는 학교 건물 출입구까지 차가 올라와 형사들은 강제로 나를 차에 태웠다. 그렇게 끌려가 당시 공무원이었던 작은아버지 집에 유폐되었다. 출범식은 오후 5시에 시작이고, 사회자는 나였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집 앞에 서너 명, 방 안에 두 명 정도의 형사가 있었다. 나는 배가 아프다며 당시 마당과 출입문 사이에 있던 화장실에 가서는 환기통을 뜯어내고 위로 뛰어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출범식 장소인 YWCA를 향했다. 정확히 출범식 시간인 5시에 도착해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사회를 봤고, 광고련 산하 학원민주화투쟁위원회가 출범했다. 출범식에 참여한 학생 수는 700여 명이었다. 출범식 소식은 다음 날 학생들 사이에 퍼져갔다.

▲1989년 9월 광주 고교생 참교육쟁취대회. ⓒ김대현
▲1989년 9월 광주 고교생 참교육쟁취대회. ⓒ김대현

학민투는 구체적으로 학교별 사학재단 비리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학교 대부분이 사립이라 공감대는 쉬이 형성되었다. 당시 사립학교에 교사들이 임용 대가로 재단에 내는 기여금이 교사 1인당 2000만 원 정도였다는 걸 교사들 증언으로 확보했다. 내가 다니던 대동고에서 이 문제를 먼저 공론화했고 학생들과 함께 재단 사무실이 있는 시내를 향했다.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선 재단 이사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재단 사무실에서 시위하자, 재단은 기여금을 내고 들어온 교사들에게(대동고 8명) 돈을 돌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첫 승리였다. 재단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교사들이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는 여세를 몰아 강제로 시행되는 보충·자율학습 철폐 투쟁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먼저 대동고와 석산고가 연합집회를 하는 것으로 하고, 뒤를 이어 학교별 집회를 계획했다. 대동고와 석산고는 지리적으로 가까웠고 백운동 로터리라는 큰 광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석산고 대표에게 1주일 뒤 1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학교를 나와 백운동 로터리에 집결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던 건 그 1주일 동안 우리의 집회 계획은 학교에 전혀 새나가지 않았고 경찰 역시 몰랐다는 것이다. 이 집회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철저히 보안을 지켜냈다.

난 다시 성명서 작성과 유인물 제작 및 피켓 등 집회 관련 준비물을 챙겼고, 매일 석산고와 대동고를 오가며 디데이를 준비했다. 집회 당일, 이른 아침부터 등교해 점검에 나섰다. 1, 2학년 각 12개 반의 반장과 대의원을 소집했다. 30명가량이 모였고 1교시 후 행동 지침을 자세히 설명했다. ‘1교시 후 종이 울리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교실을 나와 운동장에 집결한 후 무조건 뛰어서 백운동 로타리까지 달릴 것.’ 달릴 때는 교문 앞 6차선 도로를 모두 점거한 채 뛰기로 했다. 학교 정문 에서 백운동 로터리까지의 거리는 300미터 정도인데, 무분별하게 뛰지 말고 어깨동무를 하고 뛰면서 ‘보충‧자율학습 철폐’ 구호를 외치기로 했다.

1교시 후 계획대로 백운동 로터리에 도착하니 저만치서 석산고 학생들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벅찼다. 달려오는 시위대와 도착한 시위대는 하나가 되어 목청껏 외쳤다. “보충·자율학습 철폐하라!” 갑자기 도로가 통제되고 놀란 시민들은 신기한 듯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준비한 유인물을 뿌리고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시위 중에 내가 마이크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병력이 버스에서 내리며 우르르 뛰어오는 게 보였다. 한손엔 방패, 한손엔 곤봉을 들고 뛰어오는 경찰들의 모습에 마치 전쟁이 난 듯 주위는 소란스러웠다. 난 침착하게 “학교로 뛰어!”라고 외쳤고 학생들은 학교 앞까지 뛰었다. 우린 학교 정문 앞에 드러누웠다. 다행히 경찰이 강제 진압을 시도하지 않아,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보충‧자율학습 철폐 구호를 외치고 양희은의 ‘상록수’ 노래를 불렀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이날 집회 후 2~3일 후 다른 학교들도 시위에 나서기로 했는데, 집회 바로 다음 날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보충‧자율학습을 전국적으로 폐지한다는 발표였다. 두 번째 승리였다. 정부 당국에서 신속하게 응답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정부 당국의 탄압과 감시는 더욱 심해졌다. 사복경찰들이 학교 곳곳에 보였다. 경찰들의 미행을 피해 학교 뒷산을 넘어 하교하곤 했다. 광고련 사무실도 이미 노출되어 장소를 수시로 바꾸면서 회의를 했다.

우리는 보충학습, 자율학습 철폐에 그치지 않고, 학교 내 비민주적 요소에 계속 맞섰다. 나는 수업시간이든 아니든 수시로 교장실, 교감실, 교무실을 들락이며 학교 측에 우리의 입장을 계속 전했다. 먼저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폭언 금지를 요구했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는데 교사가 엎드린 학생에게 몽둥이를 내리치는 장면을 본 순간 달려들어 교사의 몽둥이를 빼앗아 복도 벽에 세워두고 발로 부러뜨리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일 수 있겠지만, 특히 내가 다니던 대동고는 학생조직이 강해 교사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기에 가능했던 장면일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내 폭력 금지를 내세웠다. 교사뿐 아니라 학생 간 폭행 금지도 선언했다. 학내 소위 ‘일진’들과는 화장실에서 폭행 금지 담판을 지었다. 교사를 대상으로는 교무실에서 선언 아닌 선언을 했다.

1988년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그렇게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공안정국이었고, 올 것이 왔다. 교장은 내게 자퇴를 요구했다. 내게는 퇴학을 당하는 불명예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자퇴라는 선택지뿐이었다.

계속됐던 투쟁과 남은 삶

이후에도 치열한 투쟁을 계속했고, 수배와 복학, 그리고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20대는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공황장애로 절에서 2년여 생활하기도 했다. 30대 후반 다시 발병한 공황장애와 수면장애는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내 삶은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10대 후반에 갇혀 있다.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을 검열하듯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살아오며 당연히 실수도 있었고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도 했지만, 누구보다 정의로워야 했고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일상을 살려 했다. 당시 함께했던 친구들과 후배들도 정기적으로 만날 때마다 30년도 더 지난 당시 고등학생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만큼 그 시간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수많은 친구‧후배의 억울함과 희생은 여전히 내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화 교육 실현하라!” “참교육 실현!” 우리는 구호를 외치며 학생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입시교육에 문제를 제기하고, 학생 인권의 보장을 주장하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교육은 입시제도는 형식만 바뀔 뿐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는 점에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근본적인 교육개혁은 없었다. 고운을 하며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이 혁신적으로 변화되어야 풀 수 있는 멍울이 아닐까. 그렇게라도 젊은 날 우리의 행동의 정당성과 보상이 상처를 치유하지 않을까.

▲1989년 9월 광주 고교생 참교육쟁취대회. ⓒ사회사진연구소
▲1989년 9월 광주 고교생 참교육쟁취대회. ⓒ사회사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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