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계육기업 하림이 이물질 논란과 대규모 파생상품 손실, 신사업 부진이라는 3중고에 직면했다. 특히 최근 잇따른 이물질 검출로 소비자 신뢰가 훼손된 가운데, 192억원 규모 파생상품 손실까지 겹치며 기업 경쟁력 근간이 위협받고 있다.
◇최근 1년 3개월 사이 이물질 논란 3차례 반복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최근 하림 닭가슴살 제품에서 체모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이물질 제보를 한 소비자는 “이전에도 같은 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됐으며, 당시 하림 측은 ‘사람털’이라고 답변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소비자 역시 유사한 이물질을 발견했다며 사진을 공유했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전문기관 분석 결과 체모가 아닌 식물성 유기체로 확인됐다”며 “IFF닭가슴살은 공장에서 급속 냉동하기 때문에, 공정이 아닌 소비자 조리 과정에서 이 식물성 유기체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하림의 총체적인 품질관리 체계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2023년 11월 ‘하림 동물복지 통닭’에서는 벌레가 다량 발견됐다. 당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까지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고 직접 해명에 나설 정도로 하림에는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두 달 만인 이듬해 1월 ‘용가리치킨’에서 노끈으로 추정되는 초록색 이물질이 또 검출됐다. 이어 1년 여가 지난 올해 재차 이물질 논란이 불거졌다.
국내 닭고기 시장에서 하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34.5%다. 시중 닭고기 세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하림 제품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하림 정읍 생산공장에서 최종 포장 단계 이물질을 점검하는 인력은 단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 관계자는 “당시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은 없었지만 그동안 최종 포장하기 전에 이물 검사를 인력 2명이서 해 왔던 점에서 재발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해 시정을 요청했다”며 “하림측에서도 2명인 인력을 8명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림은 벌레 발견 이후 검수 인력을 8명으로 증원하고, 전 공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1년 만에 두 차례나 추가 이물질이 나타났다. 증원과 조사가 실효성이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파생상품 거래 손실로 재무 건전성 악화
하림 재무상태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하림은 지난 11일 지난해 통화선도거래 등 파생상품 거래에서 192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자기자본 대비 6.65%에 해당하는 규모다. 구체적으로 파생상품 관련 총손실 324억원, 총이익 138억원에 평가손실 6억원이 포함됐다.
파생상품 거래 손실 여파로 하림 재무지표는 악화됐다. 2024년 1분기 금융원가는 21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2억원 증가했다. 3월 말 기준 단기차입부채는 4조2387억원으로 3개월 만에 2968억원이 늘었다. 연결부채비율 역시 2023년 말 155%에서 2024년 3월 말 164%로 상승했다.

수출 기업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종종 파생상품에 손을 댄다. 결제 받는 시점 환율이 현재 환율과 괴리가 커지면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환율 변동에 대한 예측(환헷지)을 잘못하면 환차손으로 이어진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융원가를 포함한 금융비용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 현금흐름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 양재동 도시첨단물류단지 복합개발 등 그룹 차원에서 벌이는 투자 계획에 맞춘 차입과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하림지주가 2017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2024년 1분기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하림 측은 “환율 변동위험을 회피하고자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으나, 환율 급등으로 손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신사업 부진·본업 경쟁력 하락 악순환
하림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사업 성적표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출시한 프리미엄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더 미식’은 여전히 낮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장인라면을 출시하면서 “더미식을 연매출 1조5000억원 규모 메가 브랜드로 키우고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하림산업은 해마다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
하림산업 매출은 2019년 36억원에서 2022년 461억원으로 뛰었다. 다만 같은 기간 영업손실 역시 148억원에서 868억원으로 크게 불었다. 하림산업은 더미식·푸디버디 등 간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다. 하림지주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하림지주 매출은 2023년 705억원으로 증가했다. 동시에 영업손실 역시 1096억원으로 확대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더 미식, 푸디버디 같은 새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웠지만, 지난해 이후 유통 시장 전반에 걸쳐 가격민감도가 높아진 소비 트렌드가 퍼지면서 전략적인 실패를 경험했다”며 “금융권 등에서는 하림이 기존 닭고기 가공식품을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과 시너지를 내지 못한 점을 아쉽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신사업 부진은 본업이자 그룹 시작점이었던 계육 사업 부문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생닭을 가공해 파는 육가공 부문은 하림에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해주는 주된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육계 공급량이 치솟으면서 하림 육계 사업은 외형과 내실이 동시에 위축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준 하림 매출액은 1조130억원, 영업이익 357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6%, 53%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199억원에서 144억원으로 줄었다. 저렴한 외국산 닭고기가 몰려든 탓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은 23만4873톤이다. 4년 전인 2019년(14만1686톤)에 비하면 65.8%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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