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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퍼주기’가 퍼주기 아니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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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정치적 조급함에 원칙이 없어

엄청난 현금 지불…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성

북한 주민 인권, 삶이 조금도 개선 안 돼

통일 지향 아닌 분단 관리적 교류협력 한계 이겨야

지난 2020년 6월 17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모습(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
지난 2020년 6월 17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모습(자료사진). ⓒ조선중앙통신

가야만 하는 길로 ‘북한 주민 변화를 통한 북한 변화’를 설정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에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교류협력이 중심일 테고, ‘퍼주기’를 또 하란 말이냐는 반응이 온다.

남북 교류협력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추진했던 정부와 정치인들이 왜곡이라며 억울해하겠지만, ‘퍼주기’란 비판은 상당 부분 타당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자체가 서독의 대 동독정책, 구체적으로 빌리 브란트에서 시작되어 헬무트 콜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추진되었던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작은 걸음들의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 즉 교류협력을 통한 동독 주민의 점진적 변화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추진 원칙을 서독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정치적 동기, 정치적 조급함으로 원칙이 없었다.

서독은 통일이 당장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독과 대립과 갈등이 길어지면, 민족 간 이질성이 커지고 동독 주민의 인권과 삶이 어려워질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우선 동독과 교류협력을 통해 동독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눈과 귀를 열어주면서 변화와 통일을 중·장기적 목표로 추진하고자 했다.

서독의 대동독 교류협력 원칙은 세 가지였다. 첫째, 교류협력에서 대 동독 현금 지불을 최대한 제한하고, 동독 주민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현물을 주었다. 차관 형식으로 현금을 이전하더라도 고속도로 건설과 같이 실제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사업을 대상으로 했다.

동독에 수감된 정치범을 동독 당국에 대가를 지불하고 서독으로 데려와 자유롭게 하는 ‘자유거래(Freikauf)’에서도 현물 지급을 원칙으로 했다. 동독이 현물을 받자마자 국제시장에 팔아 현금화하는 일도 있었지만, 원칙을 지켰다.

현물 지급은 서독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서독 생산품들로 하여 내수 진작에 기여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했다. 전쟁을 했고, 갈등과 대립의 심각성이 독일보다 훨씬 더 큰 상황에서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교류협력 자체를 우리가 원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김정일·김정은의 처지가 우리와 교류협력해서 ‘통치자금’을 획득해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우리가 차단했을 때 김정일·김정은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우리 대통령들을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재개와 확대를 요구한 것은 그 둘이었다.

그들의 처지와 우리의 경제력을 이용해, 북핵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모두가 우려하는 현금 지급 대신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가 원하는 방법으로 해야 했다. 최소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고리로 해서라도 현물 지급으로 바꾸어야 했다.

둘째, 교류협력을 일회성이나 이벤트성이 아니라 동독과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 제도적 차원에서 지속성을 가지도록 했다. ‘체육협정’, ‘청소년협정’, ‘문화협정’, ‘출판협정’, ‘과학기술협정’, ‘언론방송협정’, ‘환경보호협정’ 등이 결과다.

2007년 7월 개성공단 현장. ⓒ 사진=손기웅
2007년 7월 개성공단 현장. ⓒ 사진=손기웅

반면 우리는 엄청난 현금을 지불하는 일회성, 이벤트성이 대부분이었다. 교류협력에 관한 큰 틀의 합의는 있었으나, 구체적 협정을 북한으로부터 이끌어내지 못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은 북한과 합의한, 제도적·지속적 교류협력의 성과가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맞는다, 두 사업은 남북 교류협력사에 한 획을 그은 획기적 사변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업은 모두 북쪽 접경지역에 있는, 북쪽 땅에서만 이루어진 경협이었다. 태생부터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닫힐 수 있는, 북한 것이 될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당시 정부가 ‘분단 관리’가 아니라 ‘통일 지향’에, 더욱 실질적인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진정한 의지를 갖췄더라면, 두 사업의 형식과 내용은 달리 진행될 수 있었다.

즉 DMZ를 가운데 두고 남북쪽 접경지역을 연결하는 교류협력이다. 금강산관광을 위해서는 어차피 동해 철도·도로가 연결되어야 하니, 금강산을 주 관광지로 하더라도 설악산과도 연결해 관광객들이 남북을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개성공단을 위해서는 경의선 철도·도로가 연결되어야 하니, 개성을 주 공단으로 하더라도 파주와도 연결해 남북의 인력과 물자가 남북을 오르내리는 경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과연 북한이 그것을 허용할 수 있었겠냐고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그 넓은 금강산과 개성의 땅을 남북경협이란 이름으로 내어놓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어야 했다. 그만큼 외화 획득이 절실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우리가 협상에서 이용해 압박했어야 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서독은 대동독 교류협력을 통해 동독 주민의 인권과 삶을 개선했다. 동독 정부와 협상해 그렇게 만들었다.

동서독 주민 간 상호 방문, 은퇴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 상호 서신 및 선물 교환, 라디오·TV 시청 등이 가능해졌고, 동독 주민이 서독 사회를, 바깥세상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 동독 주민 변화의 동력이 되었고, 동독 체제 변화를 이끌었다.

햇볕정책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북한에 이전된 돈이 얼마인가. 그 정확한 규모를 알지 못할 정도로 크다.

동독 주민만큼은 언감생심일지라도 그 기간 북한 주민의 인권이, 삶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는가. 그 기간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 우리 동포가 굶주려 숨을 거두었는가. 우리로부터 획득한 돈이 북핵 개발에 투자되지 않았다고 과연 자신할 수 있는가. 북한 주민이 아니라 김정일·김정은의 권력을 굳히고 독재체제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작금의 한반도 상황에서 교류협력은 상당 기간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향후를 준비해야 하고, 김정은도 상황에 따라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 제3국과 달리, 김정은 자신이 뭐라고 주장하건, 북쪽을 한민족이자 동포로 여기는 남쪽과의 교류협력이 가지는 장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퍼주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금까지의 교류협력은 더 이상 아니다.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이 우리 사회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이 우리와의 통일 의지를 키우게 할 수 있을까를 바탕에 두는 교류협력이어야 한다. ‘분단 관리’가 아니라 ‘통일 지향’ 교류협력이 되어야 한다.

하나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서독이 ‘통일 준비’를 하고, 실제 ‘통일’은 동독 주민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다.

문제는 서독이 통일 준비를 했으나, 역설적으로 실제 통일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서독은 접촉과 교류협력을 동독 주민의 삶 개선, 이질감 감소, 중·장기적으로 통일 추진이란 구도에서 추진했으나, 사실상 통일을 상정하지 않았다.

미·소가 대립하고, 미국과 소련이 서독과 동독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는 환경에서, 동독 주민이 서독과 통일을 요구하는 상황이, 소련은 물론이고 독일을 분단시킨 다른 전승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를 허용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독의 통일 준비는 사실상 분단 관리였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 교류협력이 아니었다.

통일 준비 차원이었다면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동독 체제와 사회 구석구석을 자세히 파악·분석하고, 유사시 통일 가능성이 닥치면 어떻게 사회 각 부분을, 주민을 통합할 것인가를 큰 틀과 세부적 차원에서 마련해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서독 관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통일·통합의 정책 방안을 상시로 평가하고 개선했을 것이다.

동독 주민의 결단과 선택으로 통일의 문이 열렸을 때, 서독은 통일 준비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짧은 기간에 통일과 통합의 준비와 실천을 동시에 추진해야만 했었다. 통일비용을 엄청나게 쏟아 부어야만 했던 큰 이유였다.

벌써 35년 전에 통일을 이룬 독일이 부럽기 짝이 없지만, 서독이 동독과의 교류협력에서 견지했던 원칙으로부터, 통일 지향이 아닌 분단 관리적 교류협력이 가졌던 한계로부터 교훈을 얻고 시사점을 도출해 우리의 정책을 정립한다면, 한반도 통일·통합 과정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후발 주자의 이익’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

글/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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