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만에 대폭 하향 조정한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이유가 있었다.
KDI가 전망한 올해 성장률 1.6%는 ‘중국에 대한 10% 보편 관세 인상’를 가정하고 도출한 결과다. 추후 미국의 통상 정책 전개 양상에 따라 추가적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자동차’에 대해서도 관세율을 상향할 경우, 성장률이 가파르게 고꾸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차들과 컨테이너 박스들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273/image-dfe3bf18-3aa3-409b-8959-8590fbd2840b.jpeg)
◇ ‘中 관세’만 반영했는데도 韓 성장률 2→1.6% ‘뚝’
KDI는 11일 ‘2025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종전 전망치보다 0.4%포인트(p) 낮춘 1.6%로 제시했다. 하향 조정한 주요 이유는 ‘트럼프 신(新)정부의 관세 부과 현실화’다.
KDI는 향후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도 트럼프의 통상정책 불확실성을 꼽았다. KDI는 “미국 통상정책 변화의 대상·시기·정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경우, 대내외 투자 수요가 축소되고 우리 수출에도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통상 분쟁에 따른 교역 제약의 직접적 영향과 함께, 이에 따른 각국의 경기 둔화는 우리 수출에 추가적 하방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내다봤다.
이번 전망에선 트럼프 통상 정책의 여러 리스크 중 ‘중국에 대한 10% 관세 인상’ 요인이 반영됐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현재 우리 전망의 전제엔 ‘중국 10% 관세 인상이 올해 끝까지 간다’는 점을 깔았다”며 “멕시코와 캐나다 관세 부과는 일단 유예가 됐기 때문에, 그 이외 관세 부과 조치는 여전히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가정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는 우리 경제에 분명한 하방 요인이다. 정 실장은 “우리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서 중국을 통해 미국에 들어가는 상품들이 있는데,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지 못하면 우리 수출도 줄어드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중국 경기 자체가 악화하는 것 역시 우리나라에 부정적인 요소다. 두 가지 경로 모두 하방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오른쪽)과 김지연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이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KDI 경제전망 수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273/image-40f29872-7bd1-46be-b6dd-b437273944ad.jpeg)
◇ ‘철강·알루미늄’ GDP 영향 미미, ‘반도체·車’는 타격 커
이번 전망에 반영되지 않은 각종 관세 조치가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시행되느냐에 따라 한국의 성장률도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KDI의 2월 수정경제전망에선 ①캐나다·멕시코 관세 부과 ②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③반도체·자동차·의약품 관세 부과 등 시나리오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모두 우리 경제 하방 요인이다.
우선 다음 달 초 발효가 예고된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의 경우,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게 KDI 시각이다. 정 실장은 “한국 철강은 이미 쿼터제(수출 물량 70% 제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25%를 부과했을 때보다는 (수출 감소)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철강·알루미늄이 우리 전체 수출에서 0.8% 정도여서, 산업계엔 큰 타격이 있겠지만 GDP(국내총생산) 차원에선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역시 마찬가지다. 정 실장은 “우선 캐나다·멕시코는 우리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 아닐뿐더러 미국에서 (같은 상품으로) 경쟁하는 부분도 있어서, 긍정·부정 요인이 혼재한다”며 “그걸 합치면 GDP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반도체·자동차·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치명적이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철강·알루미늄 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정 실장은 “우리 반도체·자동차 수출이 워낙 크기 때문에 관련 분야가 타격을 받는다면 (성장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시나리오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조치가 정량적으로(관세 부과율 등)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내릴지) 수치를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수출에서 반도체와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8%, 10.4%다. 15대 수출 품목 중 1·2위 비중을 차지한다. 두 품목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때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점치듯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도 떨어질 수 있겠느냔 기자의 질문에 정 실장은 “우리 수출에서 워낙 큰 부분이기에, 아니라고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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