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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s⑫] 여순이 잃어버린 70여년의 시간

투데이신문 조회수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뉴스news’가 아니라 ‘올드스olds’에 있어요. 얼마만큼 희석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10년 이상 들여다보는 언론이 필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20년, 30년 취재하는 언론이 필요해요. 그런데 조회 수에 의존하는 언론이 그게 가능할까요? (중략) 2000~3000년 전에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얘기해야 돼요. 이제는 뉴스의 시대가 아니라 올드스의 시대니까요.” – 도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中

올드스(OLDs)는 ‘오래된’이라는 뜻의 ‘Old’와 ‘소식’이라는 뜻의 ‘News’라는 뜻을 담아 만든 단어입니다.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그때’와 ‘지금’을 짚어봅니다. 신문 헤드라인에서 지금은 한 모퉁이로 자리는 옮겼지만 마음 한가운데 남아야만 하는 뉴스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여수시에 위치한 여순사건 위령비. ⓒ투데이신문
여수시에 위치한 여순사건 위령비.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7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슬픔 속에서 보낸 이들이 있다.

이들은 과거 이념 갈등과 국가 폭력 앞에서 이유도 모른 채 무력하게 희생당해야 했으며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소중한 가족을 잃어야만 했다. 누구의 잘못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다웠던 친구 혹은 정 많고 친절하던 이웃들은 온데간데없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 손가락이라는 총구를 겨누며 깊은 상처와 증오만을 남겼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여순사건(麗順事件)의 피해 유족들이다.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국군 제14연대 일부가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일으킨 반란과 이에 대한 정부의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을 중심으로 반란군이 점거했는데, 정부군의 반격으로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좌익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탄압받았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것이다. 공식 통계로는 만 113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하지만 최대는 2만5000명~3만 5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전야에 남한 사회의 이념 갈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최근에는 여순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이 논의되고 있다. 

여순사건 당시 모습.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여순사건 당시 모습.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이에 2020년 7월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해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이 발의됐으며 2021년 6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후 같은 달 본회의에 의결돼 7월 20일 공포, 2022년 1월 21일 시행됐다.

특별법을 통해 추가 신고 접수와 진상규명 및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판단된 것이다. 특히 희생자와 유족들이 고령이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후 조사 기한이 지났지만 지난해 12월 10일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중단될 뻔했던 진상규명 활동이 최장 2년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이번 조사 기한 연장 외에 특별재심 규정을 새롭게 만들어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적법 절차 없이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 재심 청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직 유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상태다. 진상규명은 여순사건위원회 중앙위원회 방식이 개선되지 않은 탓에 지지부진했다. 현재 중앙위원회는 심의·의결 기능만 갖고 있는데, 실무위원회에서 올린 안건을 이중 조사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다 보니 지난 2년간 중앙위원회는 단 10차례만 회의를 진행했다. 조사 완료율은 전체 접수된 사건의 25%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중앙위원회 위원 중 여순사건 전문 연구자가 한 명도 없을뿐더러 배·보상 등 유족 지원을 관리할 재단 등이 없어 관련자 대다수가 고령임에도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해야 할 우려도 있다.

이에 유가족들은 본보를 통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냈다. 평생 가슴 속에 묻은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과 함께 미래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순가족 여수유족회 서장수(73) 회장이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여순가족 여수유족회 서장수(73) 회장이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70여년

여순가족 여수유족회 서장수(73) 회장은 자신을 ‘유복자’라고 소개했다. 유복자는 배(腹) 속에 남겨진(遺) 아이(子)로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서씨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여순사건 당시 마을의 구장으로 활동하던 중 예고 없이 찾아온 전란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버지를 그리워한 지 어언 73년이 지났다. 그가 자라면서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찾아본 것은 아버지의 침구, 옷가지 등 생전 흔적과 아버지가 묻어 있는 자신의 얼굴뿐이다.

서씨의 아버지는 여순사건이 발발하던 당시 한 마을의 구장으로 지내고 있었다. 14연대가 여수에서 순천으로 이동할 때 열차가 마을을 지나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구장이던 아버지를 비롯해 동네의 이장, 반장 등이 소집됐다. 그는 군의 지시에 따라 열차에 올라 한 파출소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무기고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순천이 정부군에 의해 장악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마을로 돌아갈 수 없었고 결국 몸을 숨긴 채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 여순사건이 잦아들자 정부는 ‘국민보도연맹’을 설립해 연맹에 가입하면 과거의 일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아버지는 이 말을 믿고 자진해서 보도연맹원이 됐다.

그렇게 연맹원으로 지내며 야간 근무와 심부름을 도맡던 중 6.25 전쟁이 발발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을 소집했다. 그의 아버지도 다른 연맹원들과 함께 여수 경찰서로 이송됐다. 그리고 다음 날 이들은 14연대를 도왔다는 이유로 집단 처형을 당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서씨의 아버지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길을 따랐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가정의 모든 책임은 모두 서씨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어머니 혼자 5남매를 키우고 생계를 책임지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다. 하지만 서씨는 위기 때마다 가족의 손을 잡고 아득바득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좋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서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항공 장교에 지원했고, 그 모든 절차를 거쳐 합격했지만 “빨갱이 자녀”라는 이유로 연좌제에 의해 퇴교 당했다. 이제야 살 구멍을 만났다 싶었지만 서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연좌제에 의해 교육 과정 중간에 탈락을 당했어요. 모든 절차를 적법하게 다 거쳤는데 갑작스러운 퇴교에 자포자기했습니다.” (서장수씨)

여순사건 여주유족회의 보고서에 실린 여순사건 당시 모습. ⓒ투데이신문
여순사건 여주유족회의 보고서에 실린 여순사건 당시 모습. ⓒ투데이신문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서씨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짐을 덜고 멋지게 살아보려던 희망이 남김없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더욱이 ‘빨갱이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어딜 가도 자신을 쫓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어머니의 한 마디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서씨에게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망가졌냐”라는 말에 서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고작 단 한 번의 위기로 흔들렸던 자신이 하찮게 여겨졌다.

어머니의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그는 다시 일어섰다.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공학 계열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에 대기업에 취업하게 됐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주말 근무로 대체해 대학원을 다니면서 일과 병행했다. 휴식을 모두 반납해야 했고 때론 극심한 피로에 휩싸이곤 했지만 서씨는 어린 나이부터 남편을 잃고 자식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에게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 성실히 살아가던 그는 결국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어머니에게 박사 학위복을 입혀준 날이 생생합니다. 그때 돼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좀 풀어드렸다고 생각했죠. 어머니에게 성심성의를 다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생전에 더 해드릴걸… 후회가 커요.” (서장수씨)

이제라도,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그 명예를 회복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우리는 70여년간 국가폭력에 의해서 학살당한 유족들 아닙니까? 심지어 일부 유족은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어디에서 돌아가신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특히 여순사건 유족은 1세대가 고령화돼 있고 일부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과거 집, 사진 등도 모두 전소돼 기록조차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자식들이 빨갱이 취급받을까 여순사건 피해를 입었다고 전하지 않고 혼자 안고 사망하신 분들도 많아요. 참혹한 현실은 우리 유족들 기억 속에만 있어요. 몸서리칠 정도로 괴로운 현실입니다.” (서장수씨)

여순사건 당시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여순사건 당시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그 누구보다 거셌던 ‘비상계엄 트라우마’

그러던 지난해 2023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여순사건에 대한 재조명으로 이어졌다.

1948년 10월 25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여수와 순천 일대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진압군을 보냈다. 이 계엄은 다음 달 제주도까지 확대되면서 4.3사건이라는 비극으로까지 확대됐다. 첫 계엄령이 발령된 여수·순천지역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순천과 여수지구에 임시계엄이 선포됨에 따라 “범죄를 범한 자는 군·민(軍·民)을 막론하고 군법에 준거해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내용의 고시문이 발표됐다. 이를 근거로 민간인에게도 군법처형이 내려졌고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했다.

12·3 계엄령의 포고령에도 위반자에 대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하고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이에 유족들은 여수·순천 지역에서 포고령에 따른 군사령관의 고시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처럼 12·3 계엄이 해제되지 못하고 확대됐더라면 포고령에 근거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계엄 아래 국가로부터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12·3 비상계엄 사태’는 큰 두려움이었다. 비록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극심한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유족들은 당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현재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한 군의 계엄보고서까지 공개되면서 유족들은 또 한 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슬픔으로 몰아넣고 고통 속에 세월을 보내게 한 ‘계엄’이 현실에 다시 등장하자 유족들은 “역사적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연한 목소리를 냈다.

이와 더불어 여당도 합의한 여순사건 특별법을 통해 진상 규명 절차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역사 교과서 논란 이후 또 ‘반란’ 오명을 씌우려 했다고 규탄했다. 이를 두고 유족들은 “정부가 또 한 번 우리 가족을 죽였다”고 표현했다. 진실을 규명하겠다던 정부에서 부끄러운 왜곡이 또다시 반복됐다는 현실은 유족들의 분통을 터뜨리기 충분했다.

“계엄 선포 당시 너무나도 두려웠고 그 공포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시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았다면 여순사건보다 더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무섭습니다.” (유족 A씨)

“불행 중 다행히도 계엄이 해제됐지만 아직까지 그 공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명명백백하게 죄를 묻고 다시는 이런 내란이 일어나지 않아야 해요.” (유족 B씨)

“그 누구도 다시는 해서는, 겪어서는 안 될 경험입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면서 유족들은 모두 심적으로 큰 고통을 앓았고 그 무서운 일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계엄 이후로 집회를 하면 그 자유마저 박탈돼 한 명씩 잡혀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유족 C씨)

서 회장을 비롯한 여순사건 유족들이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서 회장을 비롯한 여순사건 유족들이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평온히 나의 가족이 잠들 수 있도록

“우리 오빠는 서울대 법학과를 1등으로 들어갈 정로도 수재였어요. 그래서 한 경찰서장 아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그때 그 서장이 오빠를 마음에 들어해 행정고시를 봐서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설득했죠. 그래서 행정고시를 봤는데 덜컥 합격한 거예요. 그래서 서장에게 서류를 제출했는데, 그때 아버지의 (여순사건) 기록을 보고 연좌제가 돼 ‘너희 아버지는 빨갱이 아니냐’며 쫓겨났어요. 형편마저 더 안 좋아져 졸업도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오빠는 농사지으면서 살았는데, 과거 억울함 때문인지 화병이 나서 맨날 약을 먹고 힘들게 살다가 일찍 생을 마감했습니다.”

“손가락질만 하면 잡아 잡혀갔어요. 그렇게 정답던 이웃들이 서로 살기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이들을 지목했습니다. 더욱이 군에게 밥을 주는 등 도와줬다면 바로 재판을 받아야 했고 이는 무자비한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말도 못 하게 서러운 생활을 많이 했죠. 그 흔한 직장생활 제대로 못했어요. ‘빨갱이’라는 그 한 줄 때문에요. 그래서 아직 가슴속에 응어리가 가득합니다. 사실 여순사건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대화도 하기 싫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사실을 바로 잡고 싶어요. 힘들게 산 우리에게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은 없었으면 합니다.” (유족들 증언 일부)

이에 유족들은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여순사건위원회 위원 재정비 △국가 차원 직권조사 실시 △유족단체 지원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이어 오랫동안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억울하게 살아온 유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 소중한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를 둔 특별법이 제정되고 현재 개정까지 이뤄졌지만 유족들에게는 현실적인 벽이 많은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과의 소통’도 강조했다. 유족들은 대부분 고령자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나 진상규명 참여 과정에 대해 취약하다. 서씨는 이 같은 점을 문제로 들며 진상규명을 하는 실무단이 유족들을 대상으로 직접 대면해서 설명해 주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길 희망했다. 그 자리에서는 현재 진상 규명 및 명예 회복 진행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마음 졸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 동조한 당연직 위원들이 사퇴하거나 교체될 전망이고 파견직 등의 잦은 인사로 인한 업무 차질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위원회(이하 위원회) 누리집을 살펴보면 위원장은 한덕수 국무총리, 부위원장은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이다. 당연직 위원(4명)은 법무부 박성재 장관, 국방부 김용현 장관, 법제처 이완규 처장, 김영록 전남도지사다. 이 가운데 김 도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위원은 현재 계엄에 동조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계엄 사태를 조직 쇄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족들은 “현재 위원회는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로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을 구성하는 등 성향이 편향적이다”고 지적했다. 또 위원회 업무를 지원하는 행정안전부 소속 여수·순천 10·19사건지원단장은 지난 2년 동안 네 차례 교체되는 등 직원들이 잦은 인사로 전문성·연속성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사무실 입구, ⓒ투데이신문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사무실 입구, ⓒ투데이신문

직권 조사에 대한 요청도 나왔다. 현재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유족은 7465건이지만 유족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가 끊겨 가족이 없거나 여수·순천 지역을 떠난 이들, 행적을 알 수 없는 피해자 및 유족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직권조사를 진행해 아직 잔재하는 피해자를 발굴해 이들을 지원·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직권 조사를 통해 대규모 학살로 어디서 사망한 지조차 모르는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을 해 가족을 찾아줘야 하며 더 나아가 묘역까지 조성돼야 한다고 유족들은 입을 모았다. 한 유족은 “유해 발굴을 철두철미하게 하고 DNA 조사도 진행해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야 한다”며 “우리의 소원은 세상을 여순사건 당시 세상을 떠난 영령들이 편히 쉬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욱이 열악한 피해자·유족단체에 대한 지원도 요청했다. 유족들을 관리하고 이끌며 사건의 진상을 널리 알릴 단체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여순사건 당시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여순사건 당시 [사진제공=이경모 작가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 일부]

여순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희생자에 대한 명예 회복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늦지 않은 시대적 책무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통탄의 세월과 자행되고 있는 왜곡들은 영원히 역사 안에서 기록으로 남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더욱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다시는 여순사건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서는 안 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진실된 역사가 기록이 됐을 때 우리 유족은 그때서야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장수씨)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 우리는 과거의 어둠을 직시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 국가에 의해 무참히 생을 마감한 이들이 지금이라도 그 한을 풀고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말이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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