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한다던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1차 시추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사업 지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야당은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기대 성과를 지나치게 부풀렸다는 지적과 함께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나머지 6개 유망구조에 대한 추가 탐사시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차 시추에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재정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정치적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향후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경제성 없음’ 결론에도…정부, ‘못 먹어도 고’식 추가 분석 예정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동해 심해에서 석유와 가스를 개발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으로, 예상 매장량은 11조원 규모에서 최대 2000조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번 결과로 사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먹어도 고’ 식으로 사업을 계속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기대와 달리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추진될 전망이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가스 징후가 잠정적으로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1차 시추 결과와 별개로 후속 시추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1차 시추에서 대왕고래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양호한 것으로 추정한다며 후속 시추를 통해 더 정밀한 분석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저류층 두께가 두꺼웠고, 공극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지질학적 관점에서 나머지 6개 유망구조도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차 시추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후속 시추 추진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산업부 안덕근 장관은 지난 7일 YTN 뉴스플러스에 출연해 “1차 탐사는 동해 가스전의 탐사 시작이라고 볼 수가 있고, 우리 국토 내에 아주 유망하게 있는 자원개발사업의 시작이 된 부분이라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볼 상황은 아니다”라며 후속 시추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7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자원개발은 인내가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라며 “14번째 탐사시추에서 리자 유전을 발견한 가이아나, 33번째 탐사시추에서 에코피스크 유전을 발견한 노르웨이 사례 등과 같이 도전적인 환경에서도 꾸준한 탐사와 지질 데이터 축적·분석 등을 통해 발견 가능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회사채까지 발행한 석유공사…해외 투자 유치 ‘절실’
문제는 추가 시추 예산이다. 1개의 시추공 작업에 약 1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가 오징어·명태 등 나머지 6개 유망구조에 대한 시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최소 6000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1차 시추에서 1000억원을 전적으로 투입한 석유공사는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됐다.
애초 정부와 석유공사가 500억원씩 시추 비용을 나눠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국회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석유공사는 회사채를 발행해 1차 시추 총사업비 1000여억원을 자체 조달하게 됐다. 결국 회사채를 발행해 시추비용을 충당했지만, 평균 4~5%의 차입금리를 감안하면 이자로만 연간 20억원 이상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석유공사가 추가 시추 예산을 감당하게 될 경우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지난 2023년 12월까지 총 78개 해외자원개발사업을 종료한 결과 총투자액 4조8100억원 중 3조12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손실률은 65%에 달한다.
석유공사는 이같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지속하려 하고 있으나, 정부는 올해 예산에서 대왕고래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으며, 추경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석유공사가 단독으로 추가 시추를 진행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해외 투자 유치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1차 시추에서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글로벌 오일 메이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석유공사는 1차 시추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외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미 몇몇 글로벌 석유사들이 자료를 열람한 뒤 사업 참여 의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부는 3월쯤 해외 기업들과의 투자 유치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추가 시추 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설령 해외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한국의 지분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충분한 이익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에 안 장관은 “지금 해외 유력 메이저들이 관심을 보이는 유망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면서 “모든 개발비를 해외 투자자들에게만 의존하면 나중에 개발이 됐을 때 국부 유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정 악화와 정부 지원 부재 속에서 석유공사가 무리하게 추가 시추를 강행하면 경제적 손실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와 석유공사는 추가 시추에 대한 실익을 면밀히 검토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정치권 공방 확산…대왕고래 프로젝트, ‘사기극’ vs ‘필요한 투자’
이번 발표로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향후 추진 방향에 대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추가 시추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야당은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정치적 논쟁도 가열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자원개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 번의 시추 실패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한 번 시추해봤는데 바로 (석유·가스가) 나온다면 산유국이 안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며 “자원개발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같은 날 “동해에 7개의 유망 광구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탐사 성공률이 5%도 안 된다”면서 “한 개를 시추했는데 경제성이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계획된 사업”이라며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용기를 잃지 말고 추가 탐사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며 대왕고래 외 6개 광구에 대한 탐사를 예고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 GPU 최고급 사양 3000장을 살 수 있는 돈을 ‘대왕 사기시추’에 쏟아부었다”며 “이걸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하려고 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도 “윤석열 대통령은 예산 삭감을 계엄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웠다”며 “대왕고래 사기극을 명분으로 더 큰 사기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6일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가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정한 연구·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된 미국 자문업체 ‘액트지오(ACT GEO)’와 관련해 “석유공사가 영업기밀을 이유로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며, 액트지오 선정 과정, 사업성 평가 자료, 국내외 자문단 명단 및 회의록 등 정보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산자위는 오는 19일 전체회의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현안 질의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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