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사과도 소용없었다. 검찰은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사건에 상고를 제기했다. 이제는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삼성의 경영시계가 다시금 멈춘 순간이다.

삼성은 검찰 상고에 별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바라지 않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면서 내부적으로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재계는 반도체·인공지능(AI) 분야에서 글로벌 빅테크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가운데 위기에 직면한 삼성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특히 이 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의 경영 정상화가 당장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등기이사 재선임,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 인수합병(M&A) 및 투자 등 삼성이 꼭 내딛어야 했던 발걸음에 걸림돌이 생긴 것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3월 주주총회를 거쳐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복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검찰의 상고 이후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건을 상정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 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재계에선 이번 무죄 판결에 따라 콘트롤타워 재건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 있었다. 선친인 이건희 회장도 2008년 일시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사라진 ‘전략기획실’을 미래전략실로 부활시키며 조직을 재정비 한 적이 있다.
삼성의 ‘워치독’ 역할을 하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이찬희 위원장은 2022년 10월 이재용 회장과 면담을 가진 후에도 “개인적 신념으로는 콘트롤타워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 대응과 글로벌 대형 AI 프로젝트 참여 여부에도 리더십 공백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 회장은 무죄 선고 다음 날인 4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을 만나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참여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AI 등 삼성의 총체적 위기는 1차적으로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며 “삼성이 시스템 경영에서 벗어나 기민한 경영 판단으로 향하는 결정적 순간에 검찰의 상고는 뼈아픈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하태경 보험연수원장은 8일 SNS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 삼성그룹 편, 친삼성 발언을 한다”며 “검찰 상고는 국가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는 폭거이자 살얼음판인 우리 경제에 얼음이 깨지라고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5일 이재용 회장이 항소심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검찰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이재용 회장을 상고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법조계는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해 무죄를 확정해도 빠르면 6개월, 최대 1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1·2심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라 대법원에서 뒤집힐 여지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나오면 사법리스크가 연장돼 선고 확정까지 2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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