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 作, 그와의 약속](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005/image-07013a02-1943-49e9-84d8-2a6d9e957afd.png)
조각가 류인은 체구가 작고 가늘다. 류인은 해부학적 탐구에 기초한 인체 조각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설치 작품으로 1990년대 구상 조각계를 주도했다.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을 보여준 류인(1956~1999)은 10년 남짓한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에 진한 여운이 존재한다.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김옥길 기념관 옆은 조각가 류인이 살았던 집이다. 류인의 힘찬 인체 조각이 오랫동안 마당에 서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그는 석조나 철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고 제작공정에 손이 많이 가는 브론즈 조각으로, 그가 남긴 작품 수, 특히 순수한 개인 창작의 작품 수는 예외적으로 많은 편이다.
브론즈 조각은 손으로 흙을 주무르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손의 노동이 절대적이다. 왜소한 체격의 류인의 손은 그 누구보다도 노동의 근육으로 작업한다. 그는 흙을 직접 만지고 주무르며 하나에서 열까지는 물론 대형 조각까지 순수 노동이다.
그는 무리하게 브론즈 조각의 전 공정을 한꺼번에 다 하진 않았다. 우선은 흙으로 몰딩을 한 후 이를 합성수지(FRP)로 떠서는 보관했다. 합성수지는 브론즈 에디션을 위한 원본이 되어 준다. 그는 비용이 많이 드는 주물 공정은 일단 뒤로 미루었다. 가끔 환경조형물로 일감이 주어지면, 여기서 생긴 돈으로 미리 떠 놓았던 합성수지 원본을 주물공장에 보내어 주물 공정을 마쳤다. 이러한 제작 방식을 취하며, 류인은 쉴 새 없이 균질한 속도로 개인 순수작업의 브론즈 조각을 지속해서 제작했다.
그의 인물상에서 보이는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손가락 발가락은 그의 몸인 듯 아프다. 강한 자의식과 흙에 대한 본능적 욕구로 류인은 조각가의 길을 걸었다. 인체를 매개로 정밀하고도 힘 있게 묘사한 조각을 선보이며 명실상부한 미술가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율이 온다. 인간이 본연적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에너지를 바라본다. 하물며 근원적인 불안, 울분, 콤플렉스를 치열하게 느끼게 한다. 1997년 9월 어느날, 인사동 모 화랑에서 개인전을 할 때였다. 깡마른 사람이 들어서는데 못 알아볼 정도로 수척해진 류인 작가였다. 머리는 안정되지 못해 일렁였고, 표현이 좀 민망하지만 마치 송장 같은 몰골이었다. 그는 그럴싸한 작가가 아니다. 찐 작가다. 미술계는 세월이 흘러도 그를 기억한다.
![안재영 미술평론가](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4-0005/image-d6748d3b-7825-4b58-a927-d54e3acc4655.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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