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가 시작되면서 일각에서 수익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달러 환율 급등기에는 정해진 환율로 달러를 매도하는 환헤지 방식을 따르기보다 달러를 보유하는 게 환차익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 있어서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최근 환율이 역사적 고점에 있어 환율 하락 가능성이 커진 만큼 지금이 환헤지에 나서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반박한다.
환헤지란 환율 변동의 위험을 없애는 거래를 말한다. 국민연금은 자체적으로 정해 놓은 기준보다 환율 수준이 높을 경우 보유한 해외 자산의 일부를 선물환을 통해 매도(미래 일정 시점에 사전에 정한 환율로 달러를 팔기로 계약하는 것)하는 방식으로 환헤지에 나선다. 달러를 매도해 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리기 때문에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 2018년부터 환헤지 0%로 낮춘 국민연금… “변동성 감소 효과”
8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6년까지는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해외주식 0%, 해외채권 100%로 유지했지만, 이듬해부터 해외채권에 대한 환헤지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8년에는 해외자산에 대해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규정상 자산의 5% 범위에서 전술적인 환헤지를 할 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았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낮춘 것은 해외투자 자산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의 해외주식과 해외채권 투자 규모는 각각 399조원, 81조원에 달한다. 전체 자산대비 투자 비중으로는 각각 34.8%, 7.1%다. 해외투자 자산 규모가 크다보니 환헤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한 데다가 물량을 받아줄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반면 환헤지로 기대할 수 있는 실익은 크지 않았다. 지난 2015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분석에 따르면 해외투자 비중이 49% 이하인 경우 환오픈(환헤지를 하지 않고 외환시장에서 발생하는 환율 변동성에 자산을 노출하는 것)을 하면 오히려 기금 전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기대수익률 측면에서도 환헤지와 환오픈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2022년 12월부터 국민연금의 환헤지 방침이 다소 수정됐다. 해외자산의 최대 10%에 대해 한시적으로 환헤지를 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선물환 매도를 통해 시중의 달러 공급을 늘리려는 외환당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후 이 조치가 계속 연장되면서 아직도 환헤지 비율은 10%로 유지되고 있다. 작년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자산이 4828억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환헤지 규모는 482억달러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를 발동한 것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자산 변동성이나 수익률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 않은데 환헤지 비용만 늘리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인 연구를 보면 수익률 차원에서는 환오픈을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대다수”라면서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다른 연기금들도 대부분 환오픈 방식을 택하고 있어 환헤지 비율을 10%로 올린 2022년에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했다.
◇ 이창용 “국민연금 수익률은 미실현… 환율 올랐을 때 실현시켜야”
그러나 외환당국은 지금처럼 추가적인 환율 상승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환헤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6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가 국민연금 수익률을 담보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환헤지는 국민연금과 같은 장기 투자자에게 유리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 수익률은 환율이 변동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실현 수익률”이라면서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 있을 때 미실현 수익의 일정부분을 헤지를 통해 실현시키는 것이 각 기관의 수익률 극대화에 좋다”고 했다. 이어 그는 “헤지를 했더니 환율이 더 올라가서 손실을 봤다는 것은 헤지의 의미를 모르는 얘기”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도 현재 환율이 상당히 오른 만큼 환헤지에 나서는 게 낫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는 낮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면서 “(환헤지로)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고 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환율이 오를지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환헤지를 반대하는 것은 합리적인 비판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적절한 대응 방향 등을 놓고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전략적 환헤지 가동을 앞둔 지난달 3일 ‘환헤지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환헤지 대응 전략 등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기금운용본부 고위 관계자들은 전략적 환헤지 관련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관계자는 “환헤지는 미실현 이익을 고정시켜서 향후 실현 이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외환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전체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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