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불편해도 매일 학교에 나왔어요. 뭐라도 끈질기게 하면 안 되는 건 없는 거 같아요.”
6일 오전 11시쯤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계명고등학교에서 만난 졸업생 박종연(83)씨의 말이다. 제47회 졸업식이 열린 이곳에선 유독 희끗희끗한 머리의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성인학생, 만학도가 대부분인 진실1반 학생들의 졸업 소감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사연도 제각각이다.
진실1반 담임 조윤숙 교감이 어르신 졸업생들에게 아쉬움이 가득하면서도 애정이 담긴 응원의 마음을 담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계명고 졸업생 120명 중 70명은 성인 학생이다. 성인 대상 2년제(성인반)와 청소년 대상 3년제(학생반)로 나눠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계명고에선 매해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올해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졸업을 축하하러 온 손자들로, 평생의 한이자 꿈이었던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만학도로 강당이 붐볐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6학년 때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눈썹 공장에 일하러 나간 노해남(73)씨도 이제야 벅찬 꿈을 이루게 됐다. 생계에 치여 살다 뒤늦게 단체 회장도 맡고, 10여 년간 보건복지부 소속 홀몸노인 생활관리사로 활동했지만, 오랜 세월 마음 한구석엔 늘 ‘졸업장’에 대한 아쉬움과 열망을 눌러뒀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챈 건 남편이었다. 노씨는 “은퇴 후에 쉬려고 했는데 남편이 성인학교 진학을 제안했다”며 “국민학교 졸업장도 없었기에 즉시 검정고시를 준비해 그해 합격했고, 수원제일평생학교를 거쳐 계명고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그는 1학년 땐 반장을, 2학년 땐 전교 회장을 역임하며 동급생 중에서도 남다른 열정을 불태웠다. 학교는 그의 확고한 신념과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하며 이날 노씨에게 공로상, 교육부장관상을 수여했다. 오는 봄, 오산대 사회복지과에 합격해 입학을 앞둔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질 좋은 봉 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최고령 졸업자인 박종연씨 역시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다. 국민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채 오로지 남편만 믿고 살던 그가 대학에 가기까진, 짧은 시간엔 차마 말로 다 담지 못할 기나긴 세월과 삶의 무게가 함께한다.
박씨는 “TV도 켤 줄 몰랐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엔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내가 살림살이를 책임지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며 “시장에서 만물 가게를 크게 운영하며 사기도 당하고 어려운 세월도 보냈지만, 죽자 살자 마음먹고 공부했다. 학급 동료들이 도움도 많이 줘 결국 졸업장을 받았으니,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선생님들이 천사 같았다”며 “(학생들) 마음도 다 헤아리고 그 속에 들어가 본 것 같이 잘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두 사람을 포함해 35년간 성인 학생들을 가르쳐온 조윤숙 교감은 “오늘 졸업식은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늦은 나이에도 입학해 노력한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결실“이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막연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잘 극복할 거라 믿는다. 죽는 날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1975년 안양시에서 평촌재건학교로 시작한 계명고는 1996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으로 이전해 터를 잡았다. 1986년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시설로 인가받은 후, 주·야간반을 나눠 근면반, 진실반에서 성인 학생들의 꿈과 열정을 실현하는 데 힘을 쏟는 중이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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