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경제] 일본 자동차 업계에 큰 파장을 예고했던 혼다(Honda)와 닛산(Nissan)의 경영 통합 협상이 사실상 무산되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양사가 “대등한 형태”의 협업을 전제로 기본합의(MOU)를 맺었으나, 이후 혼다가 닛산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가로 제안하면서 갈등이 급속도로 심화된 것이다. 특히 닛산 이사회가 이를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양사 최고경영진이 회담을 통해 협의 중단 의사를 직접 주고받으면서 1개월 반에 걸친 통합 논의가 종료 수순에 들어갔다.
당초 양사는 미래차 시장에서의 급변하는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협업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작년 12월경 지주회사를 세워 그 아래 양사를 두는 형태로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동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서 연구개발(R&D) 비용을 절감하고,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특히 부진한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던 닛산 입장에서는 혼다의 자금력 및 기술 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문제는 닛산의 구조조정과 경영 재건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혼다는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닛산에 더욱 적극적인 경영 쇄신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혼다 측이 당초 지주회사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닛산을 직접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구상을 전격 제안했고, 이는 닛산 내부에서 “독립성과 브랜드 가치의 훼손”이라며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NHK에 따르면, 닛산 이사회는 이달 5일 회의를 통해 혼다가 제시한 자회사화 안건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일부 이사들은 통합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자회사 편입 방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흐름에 따라 우찌다 마코토(内田 誠) 닛산 사장은 6일 오전 도쿄 혼다 본사를 찾아 미베 토시히로(三部 敏宏) 혼다 사장과 직접 회담했다.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내타 사장은 이 자리에서 “이사회 결정을 존중하며 더 이상 협의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취지로 협상 중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통합 논의가 깨진 결정적 원인은 양사가 품었던 불만이 서로 엇갈렸다는 데 있다. 혼다는 닛산 측이 제시해야 할 구조조정 및 재건 계획이 제때 나오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고, 닛산은 혼다가 당초 발표와 다른 자회사화 제안을 들고나온 데 대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고 맞섰다. 결국 양사는 지난해 12월 23일 체결한 기본합의서(MOU) 철회를 각각의 이사회에서 공식 의결할 전망이다.
이번 무산 소식은 주가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작년 12월, 합병 논의가 최초로 전해졌을 때 닛산 주가는 큰 기대감을 반영하며 23.7% 급등했지만, 혼다는 자금 부담과 경영 리스크를 우려하는 시선 때문에 3% 하락했다. 반면 2025년 2월 5일, 통합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보도가 나오자 닛산 주가는 4.87% 떨어지면서 5일 기준 386.9엔에 장을 마감했다. 향후 독자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감이 커진 탓이다. 같은 날 혼다 주가는 8.19% 급등해 1,500엔까지 올라섰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대규모 투자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시장에 퍼진 결과로 풀이된다.
통합이 무산된다고 해서 양사의 모든 협업이 즉각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EV)용 배터리,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분야 등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에서 기술 및 개발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양측 모두 부분 협력은 지속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난 1개월 반 동안 진행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전략적 간극과 감정적 균열을 단기간에 봉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닛산은 내부 경영 정상화와 전동화 전환 계획을 독자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혼다 역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 새로운 파트너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한 상황이다.
양사는 공식적으로 2월 중순을 전후해 경영 통합 협상과 관련한 최종 결론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는 “역사적인 빅딜”이 될 수 있었다는 평가와 함께, 경쟁 심화 속에서 두 기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구상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지금, 이번 협상 결렬이 두 회사뿐 아니라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편 닛산 내부에서는 최근 판매 실적 둔화와 인재 유출 문제까지 겹쳐 경영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혼다 역시 독자 노선만으로는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차세대 사업 파트너를 다시 물색해야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결국, 양사가 긴 시간 쌓아 올린 신뢰 관계를 보완하고 일부 협력 사업을 유지한다고 해도, 깊어진 균열을 하루아침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혼다와 닛산은 “경영 통합에 대한 최종 발표 시점은 2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다. 협의 결과를 지켜봐 달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미 양사 최고경영진이 직접 만나 협의 중단 의사를 교환한 터라, 경영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닛산과 혼다가 향후 어떤 경영 전략을 펼치며 글로벌 경쟁력 회복에 나설지 업계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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