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겪는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경험은 결국 개발자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개발을 이끈 진성건PD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프로젝트와 그 안에 담긴 기억들을 따라가 보았다.
Q. 2002년 게임업계에 입문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개발자로서의 시작을 들려주세요
경영학과 출신인데, 원래는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넥슨에 계시던 아는 선배님께서 “여기에는 너 같은 사람들과 잘 맞는 사람들이 많으니 와서 일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해 주셨고, 그렇게 얼결에 입사를 하게 됐어요. 일을 시작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대학원 진학은 그만두고, 이후로 쭉 게임 업계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Q. 게임업계에 오셔서 처음 맡으신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시작은 BnB라는 프로젝트였어요. 그 안에서 미니게임들을 계속 만드는 일을 맡았죠. 히든 캐치, 퍼즐 게임,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게임들을 개발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Q. 경영학도셨는데 게임 개발자로 잘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그때는 지금처럼 게임업계가 전문화되거나 직무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였어요. 배우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웠죠. 당시 2D 게임들은 대부분 자체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며 규약을 정하고, 기본적인 논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획을 진행하곤 했어요.
Q. PD로서 처음 맡으신 게임은 뭐였어요?
당시 게임업계는 굉장히 젊은 분위기였죠. 처음 PD를 맡았을 때가 스물일곱, 스물여덟 정도였는데, 팀 내에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두세 명 정도뿐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획 리드를 일찍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퍼즐 게임의 리드 기획을 맡았지만, PD로서는 ‘우당탕탕 대청소’라는 프로젝트가 첫 작품이었어요. 조금 아쉬운 게임이긴 했죠.
Q. 첫 작품인 ‘우당탕탕 대청소’가 50일 만에 서비스 종료됐다고 들었어요. 그때 많이 힘드셨겠어요. 혹시 시기적으로 운이 안 좋았던 걸까요?
시기적인 문제는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 돌이켜보면 큰 원인은 역량 부족이었죠. 첫 프로젝트다 보니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나 콘셉트는 지금도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버그가 많았고, 콘텐츠 양과 안정성이 모두 부족했어요. 결국 완성도가 미흡했죠.
Q.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이전에 PD님에게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앞서 언급한 ‘우당탕탕 대청소’요. PD로서는 처음이다 보니 완전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었어요. 기술적인 부분도 부족했고, 정말 힘겹게 런칭까지 갔지만 아쉬운 결과를 받았죠.
두 번째는 ‘몬몬몬’이라는 프로젝트여요. PD로서 제작을 주도했지만, 출시 막바지에 ‘이제 PD는 그만하시고, 기획을 하시죠’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상 잘린 거죠.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개발과 서비스 간의 의견 조율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많았어요. 심적으로 충격이 컸고, 한 반년정도 쉬었죠.
Q. 두 개 모두 가슴 아픈 기억들이네요. 그래도 배운 점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자만했던 것 같아요. 공부와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PD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균형을 잡고,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세 번째 프로젝트에서도 배움이 있었는데 비슷한 맥락이에요. 이후에 ‘가디언즈 아레나’를 만들었는데 게임성은 괜찮았지만, 소규모 인원으로 만들다 보니 여력이 부족했고, 상품화가 안됐어요. 이를 통해 게임 제작에서 장기적인 서비스 환경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제작비와 비용 관리를 철저히 해야 조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Q. 게임 개발에 있어서 어떤 걸 중요하게 보시나요?
장르마다 고유한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액션 게임은 조작의 재미, 레이싱 게임은 타임 어택의 재미처럼 장르가 제공하는 즐거움이 있죠. 우선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제가 정의한 재미가 유저들이 통상적으로 기대하는 즐거움과 일치하고 있는지 입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는 싱글 플레이 액션 게임이라 공략의 재미, 패턴 파훼, 아티펙트 파밍 등을 키포인트로 잡았고, 이 부분의 재미를 극대화하고자 했습니다.
Q. 일하는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점이 있을까요?
프로세스와 팀 빌딩을 중요시 여겨요. ‘킹 오브 파이터 올스타’때부터 있었던 철학인데, 리더 역할, 업무 방식, 회의 방식 등의 대한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좋은 팀이 만들어져야 프로젝트가 좋게 나옵니다.
Q. 그렇다면, 좋은 팀이란 무엇인가요?
파트별로, 조직별로 중간 리더들이 있어요. 리더들의 역량을 키우고, 적정 수준의 권한을 부여하는게 필요해요. 논의가 필요한 일은 충분히 서로 의견을 내면서 조정하는게 좋다고 봐요.
그런 과정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오너십이 만들어진다고 봐요. 수직적인 프로세스는 일의 진행은 빠를 수 있지만, 구성원들이 책임감이 없어지고, 오너십이 부족해질 수 있거든요. 이 때문에 같이 하는 구성원들의 성장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수를 숨기지 않는 것. 매우 중요하죠.
Q. 넷마블네오에 오셔서 ‘킹 오브 파이터 올스타’를 맡으셨는데, 어떠셨나요?
합류했을 때는 ‘킹 오브 파이터 올스타’가 거의 완성된 상태였어요. 한국 출시쯤 합류해서 라이브 서비스를 약 3년 정도 담당했죠. 그 과정에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어릴 때 격투 액션 게임을 좋아하긴 했지만, ‘킹 오브 파이터’ 시리즈에 대해서는 해박하지 않았죠. 그래서 시리즈 전반을 공부하고, 캐릭터들을 세세히 분석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Q.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를 맡았을 때 ‘이건 된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반대로 ‘어렵겠다’고 느끼셨나요?
뭘 맡던지 ‘이거는 되게 한다’는 생각으로 해요. 물론, 어렵죠. 게임 제작하면서 한번도 쉬운 적이 없었어요. ‘어렵지만 무조건 된다’는 마음으로 합니다. 구성원들도 ‘무조건 되게 한다’는 에너지가 있었어요. 특히 초기 구성원은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는 큰 성공을 이룰 것이다’라는 목표의식이 뚜렷했죠.
Q. 지스타2023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반응이 뜨거웠어요. 이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당시 내부 평가가 엄청 높았던 건 아니에요. 그래도 개발실은 자신감과 열정이 있었고, ‘분명히 좋은 반응이 있을거야’ 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물론 게임 수준이 100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의구심은 없었어요. 지스타 때 평이 좋아, 자신감을 얻기는 했죠. 하지만 출시가 아니었으니, 내부적으로 약간의 우려는 남아 있었어요.
Q. 확신이 있어도 내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 어떻게 균형을 잡으시나요?
게임을 만들다 보면 ‘이건 안된다’는 평가를 듣는 일이 필연적이죠. 부족한 점에 대한 피드백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을 견디는 사람이 결국 게임을 출시합니다. 사실 피드백은 모두 게임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선의에서 나오는 말이에요. ‘UI가 부족하다’, ‘편의성이 아쉽다’, ‘아트가 별로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죠. 이때 PD는 무엇을 반영하고, 무엇을 버릴지 명확히 선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질적으로 재미있었던 게임이 출시 시점에는 재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겨요.
Q.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가 글로벌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대한민국 게임대상까지 수상하며 높은 성과를 이뤘죠. 소감이 어떠신가요?
PD로서 경력을 쌓은 지 10여 년이 됐지만, 모두가 아는 대작이나 성공한 타이틀을 만든 경험은 없었어요. 넷마블네오에 입사했을 때 개인적으로 두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대형 프로젝트의 PD로서 제대로 된 경험을 쌓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 프로젝트를 사업적으로도 성공시키는 것이었어요.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를 통해 그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Q. 게임을 제작하시지만, 게이머이시기도 하죠. 인생 최고의 게임을 하나 꼽는다면요?
단언컨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우)’입니다. 어릴 때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좋아했어요. 삼국지나 심시티 같은 게임들을 즐겨 했죠. 그러다 와우가 나왔는데,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거의 모든 콘텐츠를 다 즐겼고, 업적도 다 달성할 정도로 열심히 플레이했어요.
Q. 마지막으로, 개발자로서 동료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첫 번째로,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만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몇 천 권은 읽었을 거예요. 제 인생이 만화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일본 드라마도 수백 편 봤고, 영화와 음악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걸 좋아하는 사람은 왜 좋아할까?’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해요. 게임으로 치자면, 장르에 대한 이해와 비슷한 맥락이죠. 취향을 갈고닦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작업물 A와 B가 있을 때, 하나를 택해서 ‘나는 이게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미묘한 색감이나 선의 변화에서 어떤 게 더 적합한지 알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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