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다시 올랐던 날 지상파와 종편 뉴스에서는 지방 곳곳의 탄핵 집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연결했다. 그 분위기는 어디든 뜨거웠다. 보수 성향이 강한 부산, 대구, 경북, 경남에서도 광장에 사람이 들어찼다. 뉴스는 이 장면을 주요하게 다뤘다.
국가 중대사 때마다 전국이 들썩인다. 소위 ‘중앙언론’이 드물게 지방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언론의 관심은 식는다. 사사건건 전국 동향을 보도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경남에서도 비상 계엄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그 생각을 구태여 드러내진 않는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걷어찰 필요는 없으니까. 그들은 전국이 들썩일 때나 한번쯤 모습을 드러낼런지 모르겠다. 일상에서는 침묵을 택하는 게 편리하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위헌이 맞다. 헌법이 정한 요건(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충족하지 못했다. 비상계엄 선포를 심의하는 국무회의는 졸속으로 이루어졌으며,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국회에 계엄 사실을 통고하지도 않았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계엄을 통해 국회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국민들은 경찰이 국회 정문을 봉쇄하고,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그럼에도 경남에서 이를 비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지역 사회의 분위기가 갈수록 더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으로 흐른다. 서울 여의도 정치인들이 앞장서면 지방의원들은 기세가 오른다. 공개 석상에서 계엄 옹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지역에서 그 의견을 말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다.
독일의 정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노이만은 이러한 현상을 ‘침묵의 나선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을 꺼린다.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살핀다. 자신의 의견이 소수라고 판단되면 침묵하는 경향성이 있다. 반대로, 다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특정 의견이 주류로 자리 잡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수’는 더욱 강해지고, ‘소수’는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럴 때 지역 언론 역할이 중요하다.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침묵을 깨고자 나선 이에게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래야 공론장을 마련할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에서는 윤 대통령 비상계엄 이후 매주 창원시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를 유튜브 생중계하고 있다.
여린 비가 내렸던 2월1일 토요일 오후에도 어김없이 집회가 열렸다. 집회 측 추산 200명이 모였다. 탄핵안이 재상정됐던 날 2000명이 모였으니, 10분의 1 수준이었다. 생중계 영상에는 조롱 섞인 댓글이 달렸다.
“소모임이냐.”
“동아리 수준이네.”
“너무 초라하다.”
그 댓글을 보고 몇 년 전 한 성직자와 인터뷰했던 때가 떠올랐다.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서는 보수 개신교가 주류 대접 받는 사회에서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흔치 않은 성직자였다. 그는 성경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동성애 혐오’로 해석하는 성경이 세계적으로는 주류 해석이 아니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고한 주류 담론이 깨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에게 물었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보수 개신교는 한국의 거대한 기득권 아닌가요?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닐까요?”
그가 먼저 한마디를 꺼냈다.
“세상은 마이너들이 있어서 바뀝니다.”
‘마이너들이 바꾼다’라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가 ‘있어서’ 바뀐다는 말, 그 뜻을 나는 단번에 이해하진 못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기자님, 세상은요. 단계적으로 꾸준히 바뀌는 게 아니에요. 어느 순간 어떤 큰 사건으로 트리거가 당겨지면 그때 한번씩 크게 바뀌죠. 그전까지는 기자님이나 저처럼 마이너들이 버텨줘야 하는 거예요.”
광장에서 군중의 함성이 폭발할 때마다 사회는 크게 한번 바뀐다. 그 순간이 오기를 염원하며 어김없이 매주 광장에 나오는 이들이 있다. 지방 곳곳에 있다. 다만 서울 매체에서 다루지 않아서, 대중에게는 없는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이런 목소리를 다소 지난하더라도 꾸준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지역언론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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