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기자들에 ‘조기 대선 출마 여부’ 질문받고
“검토 안 해…지금 그런 말하면 尹에 예의 아냐”
탄핵 반대 입장 분명히 하면서도 계엄엔 부정평가
평론가들 “강성 지지층 향한 전략적 메시지” 분석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권 행보 관련 질문에 자세를 한껏 낮췄다. 조기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생각한 것이 전혀 없다”, 지지율 상승 배경엔 “특별히 한 일은 없고 상식적인 얘기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등 평소 그의 거침없는 어투와는 온도차가 있어 당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김문수 장관은 4일 국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질문받자 “검토하거나 생각한 것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과 계엄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며 “조기 대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탄핵이 인용될 경우 출마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엔 “지금 그런 말을 하면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 양심에도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다수의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본인의 지지율이 상승한 배경에 대해선 “‘대통령이 구속 안 되는 것이 좋겠다’ ‘대통령이 석방되면 좋겠다’ 외에 한 이야기도 없다”며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들이 요즘 안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국민께서 답답하시니까 그렇게 응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전체 2위를 기록하거나, 이 대표와의 양자 대결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결과가 잇달아 나오며 여권의 잠룡으로 급부상했다.
본보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0~21일 이틀간 100% 무선 ARS 방식으로 조기 대선을 전제로 김 장관과 이 대표의 양자 대결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1.5%가 이 대표를, 38.3%가 김 장관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3.2%p로 오차범위 내다.
또 한국갤럽이 세계일보의 의뢰로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100%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차기 지도자 여론조사에서는 김 장관이 11% 지지로 이 대표(37%)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여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7%), 한동훈 전 대표(5%), 홍준표 대구시장(4%) 등을 제치고 1위였다. 두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 장관은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속 탄핵당하고 불행한 역사를 계속 겪어 나가는 것은 국민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계엄 정당성 여부를 떠나 대통령이 계엄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감옥에 갇혀 있다. 내가 만약 국무회의에 참석했으면 강력하게 (계엄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의 이날 발언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한 것과 동시에 중도로의 외연 확장 효과를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기 대선을 부정하면서 강성 지지층에 ‘대통령을 끝까지 지킬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심어주면서도, 계엄 반대 입장과 정제된 어투를 통해 ‘극우 색채’를 희석하려는 의도란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보수층 일각은 아직 탄핵 기각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 장관이 조기 대선에 대해 성급하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라며 “대선 출마를 검토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출마 생각을 상당히 굳힌 상태에서 지지층을 향한 굉장히 정제된, 전략적인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탄핵 심판이 대략 두 달 남았다고 한다면, 보수층은 두 달 동안 김 장관 쪽으로 계속 결집할 것”이라며 “김 장관이 극우 성향을 보여왔다고 평가되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을 하면서 ‘주 52시간 근무’ 정책 등과 같이 유연한 측면을 많이 보였다. 막상 대선 후보가 되면 (외연 확장을 위해) 좀 달라질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김 장관의 현 지지 기반인 윤 대통령 지지층 입장에서는 탄핵 기각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대선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순간 ‘아웃'”이라며 “탄핵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철저히 대선 출마에 무관심하고 윤 대통령 탄핵에 끝까지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김 장관의 발언은 전략에 의한 발언이 아닌,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김 장관은 원칙적인 사람이다. 정치적 이념을 다투는 문제에 대해서는 강성 발언을 많이 하지만, 자신은 지금 현직 장관이고 대통령은 직무정지만 당했을 뿐인데 자신을 향해 대선 후보를 운운하는 건 온당치 않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태도가 윤 대통령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면서 “이 사람들에게는 김 장관이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장관은 윤 대통령 면회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의 윤 대통령 면회를 두고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선 “대통령은 기소만 됐을 뿐이다. 유죄로 추정해서 면회도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고 가혹만 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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