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우클릭’ ‘중도행보’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번엔 반도체 고소득 연구개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예외적용에 찬성하고 나서 논란이다. 이 대표가 주재한 토론회에 참석한 노동법 학자는 이 대표를 향해 “부끄럽다”고 비판했고, 삼성 SK하이닉스 반도체 노동자들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다는데 왜 노동시간을 문제삼느냐”고 반박했다. 이에 이 대표는 “세상에 노동만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노골적으로 업계 이해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에 정의당과 노동계에서는 “윤석열식 주 69시간과 뭐가 다른가”, “노동과 인권의 감수성이 있다면 할 수 없는 말”이라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재명 대표는 3일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의 입법토론회를 주재해 본인이 토론 좌장을 맡았다.
반도체특별법 연구개발직 노동자 주52시간 예외 시도는 국민의힘이 앞장서고 있는 이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8일 대표발의한 ‘국가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을 보면, 제18조(국가반도체산업에 대한 각종 특례) 제2항은 “국가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 종사자가 소득세법상 소득이 상위 100분의 5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연장ㆍ야간 및 휴일 근로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예외를 뒀다.
이철규 의원이 지난해 11월11일 대표발의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의 제34조 제1항의 경우 이들의 근로소득 수준, 업무 수행방법 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당사자 간 서면합의로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고, 심지어 제2항에서는 이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했다. 12월3일 구자근 의원 법안도 이철규 의원 법안과 비슷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 원칙이며, 예외적으로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더라도 근로자에게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문제는 이재명 대표의 인식도 국민의힘 법안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고도의 전문적 연구자들에 대해서만 본인이 동의하는 조건에서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게 합리적이지 않냐, 저도 많이 공감이 돼요. 그 왜 안되지, 왜 반대지”, “그 얘기가 일리가 있더라니까요. 일반 국민도 느끼실 것 같아. 그래서 저한테 압력이 많다”, “특정 중요 산업의 연구 개발자 중 고소득 전문가가 동의할 경우만 예외로 ‘그들이 좀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자’, ‘이걸 왜 안 해 주냐’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 거절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석한 노동계 학계 관계자들에게도 이게 왜 안 되는지 나를 설득해보라고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정광현 SK하이닉스 이천노조 부위원장이 “예외 적용을 허용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잘하고 있고 (현행법상 허용되는) 재량근무제도 시행했지만 그조차도 회사가 ‘전혀 필요없다, 실효성이 없다’고 해서 중단시켰다”며 “현재 가지고 있는 제도만으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고, 주 43시간 될 정도로 현재 저희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도체 경쟁력’이라는 이 문구가 왜 노동 시간에만 연관 지어야 되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이해한다. 그거 안 했으면 좋겠죠. 근데 세상일이 노동(자)만 사는 건 아니잖아요. 상대가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를 다 고려해야 될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이 ‘왜 노동 시간 가지고 이야기 하느냔 말씀이다’라고 재차 반문하자 이 대표는 “그건 별로 의미 없는 얘기 같다. 현재 필요하다고 하는 쪽이 있고, 반대하는 쪽이 있으니 우리는 결정을 해야 될 입장”이라며 “제가 보기에는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불필요한 쪽은 안 쓰면 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깨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닌데 일하겠다는데, 그걸 왜 당신들 법으로 막냐라는데 대해서 답을 해야 된다”며 반도체 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논리를 폈다.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11시간 연속휴식제도’ 완화 요구를 두고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은 최소 기준이다. 산업 안전과 과로사 예방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 장치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예외적용하겠다는 건) ILO 권고와 세계 보건 기구의 건강 연구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며 중대재해 처벌법 적용 리스크의 높은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물론 현재 법이 그렇게 돼 있다”면서도 “근데 ‘그게 일주일에 하루 3~4시간만 쉬고 굳이 11시간 안 쉬는 날이 하루쯤 있어도 되지 않나’라는 거에 뭐라고 할거냐는 거다”라며 거듭 예외적용이 왜 안되냐고 했다. 손 위원장이 “완전히 막혀 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대표는 “막혀 있는 걸 절대로 헐어서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따졌다. 손 위원장이 “그렇다. 노동법을 만들 때 그렇게 한 것은 그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하자 이 대표는 “우리가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결국 누군가 권한 가진 사람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된다”고 말해 거듭 추진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노동법 전공자인 권오성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고, 주52시간이라는 것도 예외인데, 지금 하는 얘기는 예외의 예외”라며 “민주당과 같이 책임 있는 정당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근로기준법을 안착시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치의 몫”이라고 밝힌 뒤 “이 논의 자체가 되게 부끄럽다. 개별 기업의 근로 시간을 위해서 법을 고치는 걸 가지고 제가 나와 앉아 있다는 자체가 사실 부끄럽다”고 성토했다.
업계를 대표해서 나온 김태정 삼성글로벌리서치 상무는 현재 삼성전자 전체 직원의 90% 출퇴근 시각이 자유로운 1개월 선택적 근로 시간제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주52시간 연장 근로 준수라는 측면에서 업무량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월초에는 늦게까지 실험이 가능하지만 월말로 갈수록 근로 시간이 부족해서 출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특히 고객이 갑자기 납기를 당겨 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 근로시간 관리를 할 때가 남감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김 상무는 특히 11시간 연속휴식제 준수를 두고 “1일 최대 근로 시간이 제한되고 있어 늦게까지 실험 검증하기도 힘들고, 3일 집중 근무 후 2일 여유 있는 근무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토론 내내 반도체 연구개발직 고소득자에게만 한해 특별법으로 적용하는 것이니 타 산업에 확산될 의심은 하지 말라고도 거듭 강조했다.
이를 두고 야권과 노동계의 반발도 쏟아졌다. 정의당은 3일 성명에서 “‘69시간 근무제’를 말한 윤석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이 대표가 던져야 할 질문은 현행제도를 놔두고 ‘왜 반도체 기업에만, 아니 삼성에만 노동자를 혹사해도 되도록 특혜를 주어야 하냐’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상에 노동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라는 이 대표 언급에 정의당은 “노동자와 국민을 갈라치는 문법”이라며 “이 대표의 머리 속에 있는 국민이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이 대표가 윤석열 정부의 69시간 근무제에 “겨우 정착된 주52시간 노동을 되돌리려고 주69시간 제도로 퇴행하려고 한다”(지난해 3월 양대노총 정책간담회), “69시간 화끈하게 일하고 화끈하게 쉬자는 생각일 수 있는데, 화끈하게 노동하고 화끈하게 망가질 것”(2023년 3월14일 IT 노동자 간담회)이라고 했던 발언도 소환됐다. 정의당은 “이런 식의 낯부끄러운 말 바꾸기는 이념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도 논평에서 22대 총선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주4일제 , 장시간 압축노동 근절 등 노동정책을 약속한 민주당을 두고 “조기대선을 염두에 두고 실용주의 운운하며 약속을 어기는 것을 넘어 친기업, 반노동 정책에 동참하는 이중적 행태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도 4일 성명에서 ‘몰아서 일하는 것이 왜 안되는지 할 말이 없다’고 한 이 대표를 두고 “야당이 노동자의 목소리에 조금만 귀 기울였다면, 친기업적 합리성이 아닌 노동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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