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불법 경영승계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유죄 확정판결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정농단 유죄판결 등 사법부의 관련 판결 취지를 거스른 판단이 2심에서도 유지됐다. 4일 아침신문 중 이를 짚는 신문은 드물다. 다수 신문은 검찰이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사법리스크가 끝났다’는 취지로 단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3일 삼성 불법 경영승계 혐의 사건 2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삼성 전·현직 임원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합당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고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불공정한 비율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한 혐의로 2020년 기소됐다. 그가 받은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배임, 로직스 재무제표 거짓 공시 및 회계분식 행위로 인한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다. 이 회장이 지분을 많이 가진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으로 이어지는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고자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등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이 회장에 대해 1심 구형량과 동일한 징역 5년,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제시한 주요 범죄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는 영장 범위를 벗어난 정보가 압수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 증거물을 제시해 얻어낸 진술도 모두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전화 또한 적법절차를 벗어나 수집돼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선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내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가 개입했으나, 그 처리 결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서버들은 검찰 수사를 대비해 공장 바닥이나 직원의 집 등에 숨겨져 있었다. 검찰은 서버 등을 숨긴 직원 등을 증거은닉 혐의로 입건하고, 영장을 발부받아 이들 서버를 압수했다”며 “재판부는 증거은닉은 타인의 형사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숨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압수한 서버에서 타인의 형사사건과 관련된 자료만 추려 압수하는 절차를 별도로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기존 사법부 판단 거스른 판결, 경향신문만 사설서 지적
이번 판결은 기존에 이 회장의 관련 혐의와 관련 있는 각종 헌법재판소·대법원·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단 취지와 어긋나 또다시 논란을 남긴다. 이 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을 도와 달라고 최순실씨 모녀에게 말을 사주는 등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죄로 징역 2년6개월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2019년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판결에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각 회사 경영상 판단이 아니라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바이오로직스가 금융위원회 제재 취소를 구하는 판결에서 삼성물산 합병을 이유로 한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도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던 엘리엇이 입은 손해에 대해 국민연금이 1500억 원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민연금과 엣리엇은 당시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로,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으나 국민연금이 찬성하면서 주주들에게 불리한 비율의 합병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기금 본부장 등은 국민연금이 이 사건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고인 이재용의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와 관련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탄핵됐을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재용 회장도 뇌물공여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게다가 지난해 서울행정법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분식회계 존재 및 삼성물산 합병과의 관련성을 인정했다”며 “그런데도 이 모든 판결들을 외면하고 일방적인 합병작업 지시와 분식회계를 부정한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무죄, ‘재벌 경제범죄’ 관대한 법원」에서 “재판부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법원이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 아닌지 묻게 된다”고 했다. 주요 범죄 증거를 인정하지 않은 데에는 “일반인 재판에서도 똑같이 적용해야 재벌을 봐줬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무죄 선고에 대해서도 “앞서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제재 취소 소송에서 2015년 비상식적이고 의도적인 분식회계가 있었고, 이는 구 삼성물산의 합병 문제 등을 이유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며 “일반인의 법 상식으론 같은 사건에 서로 다른 법원 판단이 나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 도대체 재벌 총수의 재량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한국·동아 등 재판 결과 끝났다고 제목에 단정
여러 신문은 이를 전하는 1면 보도에서 “9년 ‘사법리스크’ 족쇄가 풀렸다”(동아일보) “사법리스크 8년 만에 일단락”(국민일보) “4년 5개월 발목 잡은 사법리스크 해소”(한국일보) 등 제목으로 사실상 재판이 끝났다고 단정했다. 검찰은 이날 무죄 선고에 대해 판결문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다수 신문이 검찰의 기소 자체부터 무리했다는 주장을 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서울고법 판단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유라씨에게 건넨 말을 뇌물로 본 2019년 대법원 판결 취지, 일부 분식 회계를 인정한 지난해 서울행정법원 시각과 다소 엇갈리는 면도 없잖다”면서도 “1심에서 이 회장의 19개 혐의가 전부 무죄로 나온 데 이어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건 그만큼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고 혐의 입증에도 실패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이 정도면 없는 죄를 만들어 기업인을 못살게 군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할 말이 없다”며 “당시 수사 지휘선상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복현 금감원장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도 했다.
국민일보, 상고 포기 압박까지…조선일보는 참여연대 공격
일부 신문은 검찰을 향해 상고를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사설을 냈다. 국민일보는 「이재용 항소심도 무죄… 검찰은 상고 포기해야」란 제목의 사설을 내고 “이 회장을 법정에 세운 검찰은 공소권을 남발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며 “1, 2심 모두 완패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상고를 포기하기 바란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안은 참여연대 등이 쟁점화한 것이다. 검찰이 이를 받아 기소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한꺼번에 19개의 죄를 짓는다는 것도 상식 밖”이라며 “당시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고, 수사와 기소를 주도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이들이 죄가 아니라 사람을 표적으로 해 잡는 이른바 한국식 ‘특수 수사’ 방식으로 이 회장을 수사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법원 판단에 선뜻 납득되지 않는 점도 있지만 검찰이 혐의 입증에 실패한 건 사실”이라며 “검찰의 수사 역량과 적법 수사 관행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 공소장에 담긴 언론사 봉쇄지시, 각사 1면에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전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한겨레·경향신문·JTBC·MBC 등 “언론사를 봉쇄하고 단전·단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나타났다. 101쪽 분량의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를 위해 소집한 국무회의에서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24시께 한겨레·경향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경향신문은 「윤석열 “경향신문 등 언론사 봉쇄하라” 직접 지시」란 제목의 보도로 이를 1면 머리기사에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윤, 언론사 봉쇄 지시” 검찰 공소장에 적시」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냈다. 한겨레도 「“윤석열, 한겨레 등 봉쇄·단전단수 직접 지시」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이 사실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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