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한국 선거 시스템에 중국인이 개입했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일부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혐중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선관위 선거 관리에 중국인이 개입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선관위가 2020년 실시한 21대 총선 당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서울 은평구 선관위가 개표 사무원 중 6명을 중국인으로 뽑아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지난달 16일 선관위 전산 시스템 비밀번호가 ‘12345’인 점을 들어 부정 선거 중국 배후설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당 숫자가 중국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연결하는 표준 번호가 같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선관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선관위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2023년 11월30일 공직선거 절차사무편람을 개정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을 투·개표사무원으로 위촉할 수 없도록 했다”며 부정선거 주장을 일축했다.
선거연구원에서 숙박 중인 중국인 간첩 90여명이 계엄군에 의해 체포됐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에 대해서도 거짓이라고 못박았다.
선관위는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에 제출한 회신 자료를 통해 “현재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의 신뢰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선거와 관련한 왜곡된 정보가 국민들께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전파돼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국민 사이의 반목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다만 이 같은 대통령 측의 주장에 일부 지지자와 극우 유튜버들은 음모론을 확산하는 한편으로 중국대사관 인근 명동 거리에서 반중 시위를 전개하는 등 중국 혐오 정서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전 국민의힘 대변인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 규탄 집회, 이른바 ‘멸공 페스티벌’이 열렸다.
집회 측 추산 약 150명의 참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노 차이나(NO CHINA)’, ‘중공을 거부한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겟 아웃(Get Out·나가라) 시진핑”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손팻말과 태극기, 성조기를 들고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명동 거리를 행진했다. 이후 자유발언에서 전(前)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 백지원은 “지금 대한민국의 매국노들은 친중 세력”이라며 “중공에 부역하는 매국 세력들이 중국인들에게 참정권까지 부여하고 중국인들은 우리 국민 혈세로 만든 국민 건강보험을 수탈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업급여 편취하고 부동산 투기하고 취업, 입시 특혜로 대한민국을 속국화하고 한국 청년들 위에 군림하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우한 폐렴’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는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을 우려로 WHO에서 사용 자제를 요청한 명칭이다.
이에 전문가는 전 지구적으로 횡행한 인종주의적 기조가 국내에 수입됐다고 보면서도 이 같은 현상이 유지될 경우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김희교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트럼프와 북미 회담을 하는 등 국제 사회에 연착륙하려는 조짐이 보이자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을 대체할 새로운 외부의 적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반공주의와 대치되며 미국의 세계 체제에도 반대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국의 경제적인 침체, 일자리 문제를 이민족 탓으로 돌리고 안보에 관련된 부정적인 논리까지 끌어오는 ‘인종주의’를 수입한 것”이라며 “인종주의가 극성화되면 군사주의와 동반되기도 하는데, 국내 극우 진영은 이 단계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잘못은 정부에게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종차별주의적 행위가 일어나더라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중국 혐오는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국익에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일이다. 결국 혐오의 피해자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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