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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음모론에 방울을 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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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힘이 세다. 마이클 셔머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2021년 미국인 3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음모론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미국의 정부, 언론, 금융계는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 집단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19% 동의) “미국 정부는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불법적인 대통령이라는 증거를 은폐해 왔다.”(20.7% 동의) “지구온난화는 정치적 인기에 편승하려는 자유주의 엘리트와 직업 과학자들이 꾸며낸 사기극이다.”(22% 동의) 대략 5명 중 1명은 위의 음모론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부정선거와 관련해서는 음모론 동의 비율이 더 높다.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34.9%)은 “2016년 대선(트럼프 당선)은 러시아 고위 정치인과 프로그래머에 의해 조작된 부정선거”라고 믿으며, 응답자 4분의 1이상(27.9%)이 “2020년 대선(바이든 당선)은 고위 정치인, 프로그래머, 투표소 직원에 의해 조작된 부정선거”라고 믿는다. 트럼프 지지자나 바이든 지지자 양쪽 모두 상당수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는 얘기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국가존립의 뿌리를 흔든다.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평화적 안전장치이다. 이 안전장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적대적 폭력과 내전은 일상화된다. 미국의 의사당 폭동, 한국의 서부지원 난입사건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리는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열린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변론기일마다 윤석열측 변호인단은 대통령이 국가 비상상황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첫번째 요인이 ‘최대 국정문란사태인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지난 2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도 옥중서신을 통해 “악의 무리들은 오직 권력욕에 매몰돼 중국·북한과 결탁해 여론조작과 부정선거로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통째로 북한·중국에 갖다 바치고자 한다”며 서부지원 난입사건으로 구속된 ‘애국전사’들을 성원해 달라고 했다.

이미 수차례 선관위와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증언과 반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의 불씨는 왜 꺼지지 않는 걸까?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정선거론에 동의하는 여론이 오히려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2월29~30일 MBC 의뢰로 코리아리서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29%, ‘없었다고 생각한다’는 61%로 3:6의 비율이었는데, 지난달 24~25일 MBC 의뢰로 케이스탯리서치가 조사한 바로는 38:56의 비율로 그 간극이 좁아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음모론은 어떤 사건에 비밀스런 조작과 배후가 있을 거라는 단순한 의혹 제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음모론은 ‘그 음모가 실제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구조화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음모론의 덫에 빠지면 어떤 새로운 정보가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고독한 선지자’처럼 더욱 굳건히 새긴다. 사실을 말해도 듣지 않고 보여줘도 보지 않는 이들을 어떻게 음모론의 미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태극기부대의 맹신과 엇나간 부족주의적 충성심을 탓하는 것만으로 음모론의 재생산을 근절할 수 있을까?

2017년 김어준 제작으로 개봉된 영화 ‘더플랜’은 2012년 18대 대선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투표분류기로 처리되지 않은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지지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이 핵심적 이유였다. 이후 뉴스타파와 MBC PD수첩 등을 통해서 ‘보수성향이 강한 노년층에서 기표 실수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반박이 나왔고 중앙선관위에서도 더플랜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에 응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으나 더플랜측은 별다른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 영화 ‘더플랜’ 스틸컷.
▲ 영화 ‘더플랜’ 스틸컷.

극우파 음모론자들은 2024년 총선에서 ‘사전투표지에서 당일 투표보다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는 이유로 조작설을 제기했다. 사전투표자와 당일 투표자 사이에 세대별, 지역별 차이가 있다는 점을 무시한 궤변이었지만 이런 주장은 216건의 부정선거 소송이 모두 기각된 이후에도 철회되지 않았다. 해킹설, 배후설, 개표조작설 등 부정선거 음모론은 명확한 증거나 출처 없이 떠돌며 극우 유튜버들의 노다지 수입원이 되고, 윤석열의 내란 획책 명분이 되었다.

음모론은 유독성 제초제처럼 갈수록 세지고 황당해지고 공고해진다. 상대방의 음모론에 또 다른 음모론으로 대항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는 세상은 모두에게 지옥이다. 음모론의 무한 루프 속에서 그간 일궈온 모든 공화의 기초를 부정하고 파괴하면 우리는 심리적 내전 상태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음모론은 동조하기는 쉽지만 비판하거나 설득하기는 어렵다.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받아쓰기식으로 퍼 나르는 언론은 고정독자를 확보하지만 일일이 토 달고 검증하고 비판하는 언론은 외면당하기 쉽다. 도리어 “넌 누구 편이냐?”고 돌맞기 십상이다. 그러니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지금은 내전을 선동하는 세력에 맞서서 지난 세월 피땀으로 지켜온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사수해야 하는 시기이다. 불투명한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고 정당한 권리이다. 그러나 검증결과를 외면하며 오류로 드러난 주장을 철회하지도 수정하지도 않는 것은 건강한 의혹 제기가 아니라 부족주의적 음모론일 뿐이다.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오류를 시인하는 쪽만이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사회적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양극화된 불신과 적대의 강을 건너 제대로 이기는 길이다. 횡행하는 음모론에 맞서서 질문하고 검증하고 입증하는 언론인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 이진순 성공회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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