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인천 강화도에서 군인으로서 활동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성재(誠齋) 이동휘 선생이 서거한 지 올해로 90년 됐다.
함경남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동휘(1873~1935) 선생은 강화도 진위대에서 대장으로 근무하며 인천과 연을 맺었다.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침략이 빨라지자 이 선생은 강화도에 보창학교의 전신인 육영학교를 설립해 군인 등에게 근대적인 교육을 시키며 민족교육운동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송암 박두성 선생과도 인연이 있다.
이 선생은 인천 강화 출신으로 보창학교를 다닌 박 선생에게 ‘암자의 소나무처럼 절개를 굽히지 말라’라는 뜻의 ‘송암(松庵)’이란 호를 지어줬다.
박 선생은 이에 남이 하지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한글 점자 연구에 헌신했다.
이 외에도 이 선생은 기독교가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라는 신념을 갖고 기독교 전도 활동에 매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애썼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당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내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한인사회당을 창당하며 공산주의자로 활동했으나,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는 이를 독립자금 확보 등 광복을 위한 시대적 선택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 선생의 공훈을 기려 지난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한편 이동휘 선생 서거 90주기 추모식이 지난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됐다.
추모식에는 홍경화 인천보훈지청장, 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 회원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홍경화 청장은 “이동휘 선생은 대한제국 강화도 진위대 대장을 지내시는 등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다”라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를 뜨겁게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하셨던 선생의 애국애민 정신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다.
/홍준기 기자 ho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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