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역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안중근은 체포 직후 조사에서 자신을 포수라 했고, 무직이라고 했다.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은 자신을 담배팔이라고 했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는 권총 한 자루로 세계사적 야만성에 맞서는 안중근의 ‘대의’보다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하얼빈으로 향하던 한 사내의 구체적 몸이 그려진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하얼빈’은 소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우민호의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대한의군의 참모 중장이며, 먼저 간 동지들의 목숨값을 치르기 위해 살아서 하얼빈 역사에 당도한 큰 정신의 군인이다.
그의 품속에 있던 실탄 일곱 발이 출력되는 정적의 순간… 카메라는 압도적 높이로 올라가고, 나는 그 시선의 힘에 머리가 열렸다. “까레아 우라(러시아어로 대한독립 만세)…” 젊고 순결한 목소리는 하얼빈 역사 위로 솟구쳐 눈송이처럼 사방에 박혔고 총알은 이토의 몸속을 휘저은 후 흉곽 안에 멈췄다.
그 순간, 나는 왜 서른 살 젊은이가 유랑했던 만주의 빙판이 떠올랐을까. 살을 파고들던 추위, 얼어붙은 시체가, 말 달리던 광야, 어둠과 담배 연기가, 한때 동지였던 주정뱅이 마적의 넋두리, 밀정이 울면서 삼킨 고깃덩어리 같은 것들이….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영화 ‘하얼빈’ 중 이토 히로부미 대사
김훈의 ‘하얼빈’과 우민호의 ‘하얼빈’, 현빈의 ‘하얼빈’과 안중근의 ‘하얼빈’… 관객들이 어떤 목적지의 티켓을 끊고 하얼빈역 기차에 탑승했느냐에 따라 감동은 다를 것이다. 나는 소설 ‘하얼빈’을 목적지로 승차했으나, 영화 차창 밖으로 펼쳐진 2시간 동안의 장엄한 풍광과 역동적인 큰 정신에 매료되었다.
우민호와 현빈의 ‘하얼빈’이 500만 관객이라는 전환점을 향해 가고 있다.
감독의 전작 ‘남산의 부장들’이 10.26 총성이 울려 퍼지기까지 권력 중심부 나약한 악인들의 치정극이었다면, ‘하얼빈’은 그 70년 전 10.26의 총성이 울려 퍼지기까지 권력 바깥에 있던 강인하지만 흔들리는 의인들의 이야기다.
한국의 독재자, 한국의 대리 통치자를 향한 70년 간극의 총성은 둘 다 실화였고, 더욱 복잡한 시작을 열었고, 그 밑바닥에 엄청난 국민들의 에너지가 있었다.
우민호 감독을 만났다. 낮은 천장에 몇 개의 파티션으로 공간을 구획한, 경희궁 인근의 오래된 사무실이었다.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에는 각종 사양의 총기가 띄워져 있었다. 무채색 공기를 비집고 모직 코트에 청회색 머플러를 두른 사내가 녹색 신호등처럼 웃으며 들어섰다.
-멋지게 입으셨네요.
“평소엔 운동복 차림이에요. 얼마 전 영화 홍보차 현빈 배우와 MBC 라디오 이상순 DJ의 ‘완벽한 하루’에 출연했어요. ‘하얼빈’을 보고 극장에서 나온 효리 씨 첫마디가 이거였대요. ‘남자는 역시 코트야!’ 그래서 오늘 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둘렀어요.”
-그 시대 독립 투사들은 다들 근사한 코트에 헌팅 캡을 썼더군요.
“제가 알기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를 살았기에, 복장에 신경을 썼다고 해요.”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보면 안중근과 우덕순은 거사 전날, 새 코트를 사 입고 이발하고 2루블을 내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래요? 그 사진이 남아있나요?”
-아니요. 소설 속의 이야기지요. 김훈의 ‘하얼빈’은 읽으셨나요?”
“아니요.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중근이 자서전을 읽고 ‘하얼빈’ 영화를 촬영하기 시작했을 때, 공교롭게도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토 히로부미의 서사를 중요하게 다뤘다더군요.”
-맞아요. 그런데 매우 공교롭게도 당신의 전작인 ‘남산의 부장들’도 10.26의 총성을 다루고 있더군요. 70년을 사이에 두고, 궁정동 안가와 하얼빈 역사에서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니, 신기합니다. 총알에도 눈이 있는 걸까요? 양복 입은 나약한 악인들의 충성 경쟁을 보여주던 냉소적 시선이 코트 입은 의인들 앞에서는 달라졌어요. 뭐랄까… 아주… 정중해졌달까요.
“맞아요. 10월 26일, 하얼빈의 총성만큼은 먼저 간 동지들이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선에서 찍고 싶었습니다.”
-감독의 의도는 몰랐지만, 엄청난 높이의 부감숏이 감동을 주더군요. 하지만 불만을 품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총 쏘는 안중근의 멋있는 얼굴, 쓰러지는 이등박문의 비참한 모습, 피, 군중들… 이런 식의 몽타주는 너무 일반적이에요. 다들 그렇게 찍는데, 제가 굳이 그렇게 또 찍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민호는 단호했다.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다고 해도, 그 부분은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겨울의 소란이 깊어갈 즈음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린다’고 선포한 사람은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이었는데, 영화 속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그 문장을 몸으로 실행하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죄책과 사명이 얽힌 삶에서, 아무도 탓하지 않고 염치를 지키려 했던 이들이 선조들이었구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서전을 읽었을 때 놀라웠던 건 안중근 장군이 만 서른이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저 영웅이고 40대 언저리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는 서른이었고 실패한 군인이었어요.
‘만국공법’에 따라 그가 석방한 일본군 포로가 독립군을 공격한 일로 많은 동지들이 죽었어요. 벼랑 끝에 선 청년 지휘관이 대체 어떤 마음으로 하얼빈까지 왔을까, 그 안중근의 그 마음을 보고 싶었습니다.”
헤쳐진 조국에서 살았던 이들은 마음, 그 자체가 스펙터클일 것이다.
-하얼빈이라는 장소가 지닌 흡인력도 대단하지 않나요? 바이칼호수, 블라디보스토크, 평양, 대련에서 오는 열차가 다 그 장소에 닿고, 등장인물 모두가 그 역을 향해 다가오잖아요.
“일단 하얼빈은 대단히 춥습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죠. 이등박문도 털코트에 털모자를 쓰고 내렸어요.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하얼빈의 추위만큼이나 좀 차갑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차갑게?
“네. 신파로 뜨거워지기보다 차갑게 거리를 두고 숭고함이 스며들길 바랐어요. 저는 ‘내부자들’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자극적이고 통쾌하게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빵 터지고 휘발되는 영화를 누구보다 잘 찍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안중근과 독립군에 관한 이야기예요. 자극으로 휘발되면 안 되는 영화죠. 감사하게도 제작사와 투자자가 제 의견에 동의했고 지금처럼 찍을 수 있었어요.”
-아름답게, 우아하게, 광활하게, 품격있게. 무엇보다 저는 ‘내부자들’처럼 감정을 우악스럽게 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10.26 총성과 궁정동의 카오스 이후의 편집이 백미였어요. 경호실장과 대통령을 동시에 저격한 후 흥분과 패닉에 빠진 중앙정보부장 이병헌의 표정, “육본이냐? 남산이냐?”를 묻는 참모총장의 질문에, 카메라는 목적지를 잃은 이병헌의 눈과 함께 엄청난 높이의 부감으로 자동차가 커브를 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클로즈업과 부감, 길잃은 자를 바라보는 우민호의 우아한 집념은 이병헌에서 시작해 현빈에서 정점을 찍은 느낌입니다.
“(미소 지으며)우악스러움에서 우아함으로… 그렇게 와보니 괜찮았어요.”
-대담하시군요.
“저는 다음이 없어요.”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니… 정말 대담하시군요!
“네. 이렇게 해서 흥행 안 되면 다음 작품은 못 찍을 텐데… 이런 생각이 떠올라도, 일부러 무시해요. 다음 작품 못하면 여기서 은퇴하면 돼지… 쫄지 않아요(웃음).”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아닌지요?
“(미소지으며)생계는 어떻게든 이어집니다. 어떻게든 일은 들어오지요. 드라마도 찍고 있고 ‘하얼빈’도 500만 넘으면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어요.”
흥행은 창작자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내부자들’은 당시 이병헌의 스캔들이라는 엄청난 리스크를 딛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사적 사건이었다. 반면 ‘남산의 부장들’은 불운했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던 중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다. 확진자가 극장에 다녀갔다는 보도 이후 관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202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한 ‘하얼빈’은 계엄과 탄핵 이슈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극장보다 광장의 열기가 높은 가운데서도 선전했다.
“당장 흥행이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결국은 다 채워져요. 내 마음에 후회가 없을 정도로 작품을 만들면, 그 보상이 계속 돌아와요. 돈으로 기회로…”
-의도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네. 하지만 혼자는 못해요. 지지해 주는 동지가 있어야 해요. 저는 하이브미디어의 김원국 대표와 거의 모든 작품을 같이 했어요. 믿어주는 제작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당장 잘 안돼도 또 어떻게든 다음을 ‘메이드’ 시켜오지요.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거예요.”
-창작자에게 전문가 동료는 절대적이지요.
“맞아요. 저 혼자였다면 이런 영화를 찍을 용기도 못 냈을 거예요. 독립운동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안중근도 우덕순이 있어서… 동지들이 있어서 용기를 냈어요.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큰 정신인데, 그 정신을 지탱하는 게 이런 강한 연대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연대의 크고 아름다움은 변함없어요.”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의 이전 작품 ‘서울의 봄’은 1,300만 흥행 신화를 달성했습니다. 그 기본 에너지는 분노였어요. 그런데 ‘서울의 봄’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았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의 정우성이 ‘하얼빈’에서는 변절한 마적단 주정뱅이로 나와서 놀랐습니다. 의로운 군인이었던 인물을 정신이 망가진 마적단 두목으로 캐스팅한 이유가 있나요?
“실제로 독립운동하다가 만주를 배회하고 마적이 된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길을 잃은 신념을 잃은 사람이죠. 그 역을 존재감 있는 배우가 해주길 바랐는데, 특별 출연을 위해 그 먼 거리를 와줄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어요. 정우성 씨가 의도가 멋진 작품에 함께 하고 싶다고, 기꺼이 몽골의 구석진 곳으로 달려와 줬습니다.”
-길을 막아섰던 사람이 길을 잃은 모습을 보니 아이러니했어요. 폭탄을 구하러 마적단 동굴을 찾아가는 여정은 꼭 필요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대자연에서의 고단한 여정이 장엄한 아우라를 만들어내지요. 그 끝에 동굴에 갇혀 길 잃은 자와의 대면도 중요했고요. 신념을 지키며 사는 게 그만큼 어려워요. 만주, 연해주, 상해를 떠도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기회가 되면 3시간짜리 감독판을 내고 싶어요. 만주에서 찍은 좋은 장면이 정말 많아요. 아이맥스로 보면 좋을 겁니다.”
‘내부자들’의 감독판인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도 200만 관객이 넘게 들었다. ‘하얼빈;디 오리지널’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이야기를 나눌수록 흥행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도, 이 사람의 넘치는 ‘흥’을 막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내고 싶은 걸 해냈다는 자부심이 우민호의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그동안 독립군을 다룬 수작 영화가 여러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밀정’의 이병헌, ‘암살’의 김해숙, ‘하얼빈’의 현빈을 좋아해요. 캐릭터의 공통점은 역시나 품위였어요. 배우의 아우라 혹은 인간의 아우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처럼 어지러운 시국에서는 더욱 절실하지요. 뜨거운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할 때도 최소한의 품격을 갖추면 좋겠어요.”
-맞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양분된 고도 갈등 사회를 살다 보니, 말하는 자가 얼마나 정중한지를 눈여겨보게 돼요.
“예의와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게 중요해요. 누구나 분노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분노가 좀 차가웠으면 좋겠어요. 너무 뜨거운 분노는 경솔해지기 쉽고, 경솔한 분노는 타고나면 휘발돼요.”
-현빈은 그런 품격과 아우라를 갖춘 배우였나요?
“첫 만남 때부터 품위 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현빈의 품위는 인내심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세요?
“정말 그래요. 그런데 독립운동도 인내심이 없으면 못 해요. 하얼빈에서 안중근 장군이 총을 쏘던 순간도 채 1분도 안 되지만, 그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습니까.”
-‘역린’이라는 영화에서 정조로 나왔을 때부터 현빈의 인내와 정성이 남다르게 느껴졌어요. 이병헌의 품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밀정’에서 의열단장 정채산 역으로 나왔을 때, 모든 장면을 다 잡아먹을 만큼 존재감이 커보였어요.
“이병헌의 품위도 대단하지요. 어쨌든 저는 두 배우와 촬영할 때 한 번도 ‘빨리 찍자’거나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두 사람의 품위는 무엇이 다른가요?
“글쎄요. 인내의 강도만 보면 현빈이 더 센 것 같아요(웃음). 이병헌은 살짝 개구짐이 있어요. 이병헌은 뭐랄까… 아우라의 밀도만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들어와 앉기만 해도 공기가 달라지고 감정의 물이 사방을 채우는 느낌이죠. ‘내부자들’의 안상구나 ‘남산의 부장들’의 김재규 역으로 나온 모든 장면이, 다 그런 식이었어요.”
-문득 궁금합니다. 액션 연출에 능한 감독으로서 총이나 칼… 사용하는 흉기에 따라 표현의 욕망도 달라지나요?
“저는 액션 장면을 싫어합니다. 힘들어요. 언제 끝나나 싶어요. 흥분되지도 않고요. 어쩔 수 없이 할 뿐입니다.”
-‘내부자들’에서 조우진이 이병헌의 신체를 훼손하는 고문 신은 지금 봐도 최고 등급의 공포 액션인데요.
“자르는 게 액션은 아니잖아요(웃음). 저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뭘 좋아하시나요?
“화려한 액션보다는 다이얼로그 신을 좋아해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김규평이 궁정동 술자리에 총을 갖고 들어가서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몰라요. 언제 그 총이 터질지. 관객은 알죠. 그런 플롯을 좋아해요.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감이랄까요.”
-차갑고 연극적인 분위기죠.
“그래선지 ‘남산의 부장들’도 ‘하얼빈’도 연극적이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히치콕도 세트 촬영을 우아하게 컨트롤하는 분이지요. 저는 우아함과 힘이 균형을 좋아해요. 드니 빌뇌브도 구로자와 아키라도 그런 우아한 힘이 있는 감독들이지요.”
-고전적이면서도 흡인력 강한 화면을 만드는 비법이 있을까요?
“컷을 자주 바꾸지 않고 정지한 화면만으로도 관객의 집중력을 유인하려면 그 안에서 계속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눈이 내린다든지 바람이 분다든지, 불이 깜빡인다든지, 사람이 움직이거나, 그림자가 흔들리거나.”
-실루엣이나 텍스처도 중요하지요?
“그럼요. 이번에도 현빈이 롱코트를 딱 입고 섰을 때 그 라인이 너무 좋았어요. 독립군들이 입은 코트의 거칠거칠한 텍스처도 잘 살았고. 모리의 군복이나 이토의 의상도 격이 있게 했어요. 라트비아나 몽골에 있는 건물들도 100년 전 건물이 그대로 있어서 과거의 느낌을 다 담을 수 있었어요.”
-이동욱이 연기한 상상의 독립군 이창섭의 등장과 퇴장도 너무 강렬해서 잊히지 않습니다.
“이창섭의 죽음은 ‘칼리토’의 알 파치노처럼 보이길 바랐어요.”
-박정민이 연기한 실존 인물 우덕순도 우직하더군요. 저는 박정민이 ‘동주’에서 윤동주 옆의 송몽규를 ‘하얼빈’에서 안중근 옆의 우덕순을 연기하는 방식이 참 좋아요.
“끝까지 자기 임무를 완수하지요.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와 촬영팀이 다 지구 두 바퀴 반을 도는 험난한 여정을 거쳤어요. 동지애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웃음).”
-서로를 향한 존경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실제로 안중근 장군이 죽기 직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흰색 한복을 입은 모습이 고결해 보여요. 흰 얼굴에 안광이 빛나서 일본 간수들도 조심했다고 해요. 저는 안중근이 저격한 적장 이토 히로부미도 격조 있게 그리고 싶었어요. 이토도 일본 근대화의 영웅이었고 자국 내에서 카리스마가 대단했습니다. 릴리 프랭키 배우가 그 느낌을 잘 표현해 줬지요.”
우민호는 ‘숭고미’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독립군들이 모인 실내 장면은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빛과 그림자의 텍스처가 살아있고, 야외 로케의 움직임은 서부극의 주인공들처럼 역동적이다.
“모든 장면이 다 액자 속의 명화처럼 보이길 바랐습니다”라고 그가 첨언했다.
-점프 컷과 카오스 편집에 중독된 현대인에겐 낯설지만 황홀한 경험이더군요!
“철학자 칸트는 숭고함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대자연 앞에 서면 인간은 처음엔 보잘것없는 자기 육체를 자각합니다. 그러나 점점 크고 너른 자연과 대면하다 보면 육체를 넘어서는 큰 정신이 깨어나지요.
저는 정말 궁금했어요. 독립군들은 어떻게 계속 패하면서도 거대 일본을 상대로 의연하게 싸울 수 있었을까… 북간도로 연해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땅을 잃고 떠돌면서, 그 광활함 속에 큰 정신이 살아났다고 봐요. 실제로 영화 스태프들과 몽골 평야를 두루 다녀보니 그 느낌이 몸에 전해졌어요.”
영화 장비를 싣고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비포장도로 이틀을 달리다보면 다들 유목민처럼 초연해졌다고 했다.
-배회와 유랑이 의연함으로 이어지는군요. 생각해보면 코리안 디아스포아라를 다룬 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이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에도 고통과 기품이 함께 있었어요. 험한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다 보면 밥 대신 별을 먹을 때가 많았고, 별을 먹다 보면 스스로 별이 되는 거지요.
“정신이 커지는 거예요. 언젠가 유럽의 미술관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봤을 때도 눈물이 쏟아졌어요. 고흐도 윤동주도… 고난을 통과한 사람의 시선은 높고 맑아요. 안중근도 권총 딱 한 자루 들고 재지 않고 나섰어요…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해 보면 하얼빈의 거사는 엄청난 기적입니다. 수천 가지 경우의 수가 다 맞아들어가야 가능했을 일이지요.”
-숭고함이든 수치심이든 감정의 풍미는 매우 다층적이라 집중력을 요합니다. 감독 입장에서는 어떤 장면에 가장 애착을 느낍니까?
“빙판 위에서 걸어가는 안중근이 쓸쓸해도 강단 있어 보여서 괜찮았어요. 신아산 전투신은 통쾌하기보다 사실적으로 처절하게 찍었어요. 로케이션이 광주였는데, 기적처럼 50년 만에 폭설이 내렸어요. 대본에는 눈밭이 아니었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그대로 찍었습니다.”
-끔찍한 눈밭 전투 장면에서는 영화 ‘남한산성’이 떠올랐어요.
“‘남한산성’은 가짜 눈이에요(웃음). ‘하얼빈’은 진짜 눈이고요. 우리가 가는 곳마다 눈이 왔어요. 몽골에서도 눈이 오고, 라트비아에서도 눈이 오고.”
‘닥터 지바고’를 곁들여 이야기하며 눈 주위가 환해졌다.
영화, 음악, 미술 영역에서 시간을 초월해서 고전이 갖고 있는 힘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얼빈’의 음악은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애비로드에서 녹음했다. 최고의 장비, 최고의 연주로 독립군을 최고로 예우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웅장함에 대한 야심이 느껴졌어요. 영화 ‘듄’과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를 찍었던 아리 알렉사65 카메라를 썼지요?
“네. 얼어붙은 몽골 홉스굴 호수와 사막이 스크린에서 광활하게 열렸지요. 저는 ‘듄’과 ‘매드맥스’가 지닌 우아한 면에 반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하얼빈’을 찍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은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었어요.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고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데도, 책에 묘사된 독립군들의 품격이 놀라웠어요. 그분들은 말도 별로 없어요. 동지끼리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동토의 바람을 피해 옷깃을 여미거나… 의지할 게 담배밖에 없는 스산한 공간에서도 서로에게 의젓했어요.”
동지와 담배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다는 말이 안개처럼 폐부를 찔렀다.
-우리나라 국민이 정말 멋이 있군요!
“그럼요. 그런 면에서 영화에 나오는 일본군 모리 다쓰오는 안중근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입니다. 우리 민족은 누군가에게 멍에를 지면 그걸 갚기 위해 열심히 삽니다. 미안해서 열심히 살아요. 그 속죄의 힘이 어마어마해요.
반면 일본 민족은 죽는 걸로 수치를 갚으려고 해요. 죽는 걸로 명예를 회복하고 죗값을 치르겠다고 할복까지 합니다. 그래서 일본 민족을 칼의 역사라고 해요. 그걸 박경리 선생에게 배웠어요. 모리는 안중근이 자신을 살린 것에 불명예를 느꼈고, 그래서 끝까지 추적해서 죽이려 합니다.”
-‘인간의 품격’에 전 생애를 걸었던 안중근과 비교하면, 모리는 ‘인간의 짐승성’에 승부를 걸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안중근 장군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배신한 동료도 살렸고, 감옥에서도 동양평화론을 썼어요.”
-살면서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제 삶에서 처음 존경심을 알려준 분은 아버지였어요. 젊은 시절 무명 연극배우였는데, 결혼 후 생업 때문에 꿈을 포기한 후에도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담배는 피우셨지만 술을 못해서 친구가 없으셨죠. 주말마다 토요명화를 보는 게 낙이셨는데, 아버지 옆에서 보다가 저도 영화의 매력에 빠졌어요.
제가 영화감독이 됐을 때도 정말 좋아하셨어요. ‘간첩’하고 ‘파괴된 사나이’가 흥행에 실패하는 걸 보고 가슴 아파 하셨어요. 비평이 아닌 악플을 보면 치를 떨며 신고하겠다고 경찰서까지 찾아가셨어요. 그런데 ‘내부자들’이 흥행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갚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있어요.”
감독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사방에서 돌팔매질할 때 자신을 믿어준 사람이 아버지라고 했다. 영화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스트레스에 뇌압이 올라가도 견디는 힘은,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온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정말 중요하군요.
“실력이 있다고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좋은 아버지를, 좋은 제작자 동료를 만나서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았으면 6개 작품을 못 찍습니다. 영화 한 편 메이드되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비교하긴 어렵지만 하얼빈역의 거사도 어떤 조건 하나만 틀어져도 성공할 수 없었어요. 운명과 운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거죠.”
그러니 무언가 결정돼서 할 때는 겸손하고 격 있게 접근하고 싶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힘겨운 일인데 흥겹게 하시는군요.
“흥이 나서 얘기하다가 돌아서면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 싶어요. 왜냐하면 정말로 힘드니까요. 창작자의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몰라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당사자에겐 비난하는 쪽이 더 크게 보여요. 분명히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은데도 급격하게 우울해지죠.
언제까지 할까, 그만할까… 그러다 극장 무대인사에 가서 관객들을 만나면 큰 힘을 받아요. 지금 우덕순(박정민)이 없어서 제가 현빈 씨와 독립운동하듯 극장에 인사를 다녀요(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관객이 6장이 넘는 손 편지를 주고 갔어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소개한 그 관객은, 우울이 심해서 영화 한 편을 마지막으로 삶을 끝내려 했다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본 영화가 ‘하얼빈’이었어요. 보고 나서 살고 싶어졌대요. 편지에 그렇게 적혀있었어요. 저는 가끔 질문했어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영화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요?
“예전엔 부정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구할 수도 있구나!”
안중군의 맑고 높은 마음이 바깥으로 전해져 한 생명을 구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자격과 품격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예전엔 제가 영화를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선 작품이 저에게 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올 수도 있었던 작품이 나에게 왔다면 열심히 해야죠. 무엇보다 처음 제 마음이 움직인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해요. 박경리의 ‘토지’ 22권을 다 읽지 않았다면, 저는 ‘하얼빈’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1권, 2권, 12권… 이후 ‘토지’를 읽는 모든 순간이 제가 하는 일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어요.”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이 우민호를 일으켜 세웠고, ‘하얼빈’으로 이어졌다. 빼앗긴 영토를 찾은 지 8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어지러운 시절이다. 죽은 자가 산자를 살리고, 자격이 품격으로 입증되기까지,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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