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회사의 선수금이 기업 특수관계인의 ‘자금줄’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법 개정에 나선다. 상조업체 선수금은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최근 들어 그 규모를 무섭게 불리고 있는데, 이런 자금 운용을 규제할 법망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31일 “현행 할부거래법 체계로는 상조 사업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공감대가 있다”면서 “상조업체가 계열회사나 오너 일가 같은 특수관계인에 대해 선수금을 저리(低利)로 대출하는 등의 문제를 막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조회사는 미래에 일어날 장례 절차에 대비해 고객들로부터 선수금(先受金)을 받고 있다. 선수금 규모가 불어나는 데 비해 상조업체의 파산·회생절차 돌입 시 소비자를 보호할 규제가 부재해 ‘먹튀’ 등 문제가 생기자, 공정위는 지난 2010년 할부거래법을 개정해 선수금의 50%를 은행이나 공제조합 등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했다.
현재 해당 규제 이외에 선수금 자금 운용에 관한 규제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이런 선수금 규모가 9조4486억원으로 늘었고, 최근 기준으로는 ‘1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규제 밖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올해 업무보고에서 ‘상조업체의 책임 있는 경영 유도와 부실화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언급한 것도, 이 문제와 연관된다. 공정위는 최근 파산한 상조업체들뿐만 아니라, 현재 운영 중인 업체들에서도 이런 자금 운용 방식의 공통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선수금인데, 이런저런 사업에 쓰다가 못 돌려받고 업체가 망하게 되면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라면서 “상조업체의 재정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할부거래법을 개정 추진하려고 한다”고 했다.
상조업계 ‘톱5′ 안에 드는 대명스테이션(대명아임레디)의 선수금이 대명소노그룹 내 계열사들의 자금줄로 활용되고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명스테이션의 부금예수금(선수금) 규모는 재작년 기준 1조2125억원이다.
대명스테이션의 부금예수금은 2017~2022년 장·단기 대여 방식으로 그룹 계열사 대명투어몰·제주동물테마파크·서앤파트너스·소노인터내셔널 등에 활용됐다. 일부는 회수됐지만, 일부는 대손 처리되거나 부실 자산이 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이런 자금 활용 방식이 결국 대명스테이션의 재무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공정위는 이런 유용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현재 50%로 규정된 선수금 의무 예치 비율을 상향 조정하거나, 예치 외 나머지 선수금에 대한 투자 용처를 제한하는 등 자산운용 규제를 하는 등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선 거론되고 있다.
반면 업계에선 일부 업체의 일탈을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조업을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산업 육성의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규제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도 작지 않은 만큼 추후 법 개정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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