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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토평동 소재 대한불교태고종 구룡사에 봉안된 목불상은 1643년에 조성됐다. 이 불상은 당대 최고의 목불조각승인 화원 명혜·성민 스님 작품이다./부두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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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토평동 소재 구룡사 대웅전/부두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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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에 위치한 구룡사에 1953년 지리산 쌍계사에서 1643년 조성된 목조불상을 모셔와 봉인했다는 이야기가 구두로 전해져 오고 있던 중 72년이 지난 올 해 1월 그 구전이 사실로 드러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목조불상에서 382년만에 세상 밖에 나온 유물들의 보존상태가 매우 완벽해 문화 유산으로 가치가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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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구룡사(대한불교태고종) 목불을 개복하는 순간 불상안에 가득찬 400년전 성보문화유산이 보인다.지난 8일 발굴단이 첫 불경을 꺼내고 있다./구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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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불교대학 최종남 학장(중앙승가대 명예교수)팀은 지난 8일 진행한 복장(불상을 봉안할 때 불상 내부에 보물을 함께 넣는 것)유물 조사에서 구룡사가 소장중인 목조불상이 조선시대 승려 벽암각성스님이 1643년 쌍계사에서 조성한 불상임을 확인했다.
17세기 목조 불상에서 조성연대가 ‘大明崇禎17年(1643년) 5월’이라고 명기된 발원문이 조선조 전기의 전적류, 다라니 등을 포함해 후령통(喉鈴筒 : 복장을 넣는 통)과 함께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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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 조성을 발원하는 발원문이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구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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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발굴팀에 따르면 복장유물 개봉으로 발견된 발원문에는 조선중기 대선사 ‘벽암 각성(覺性)’대사가 조성했다는 명문이 있었다. 대공덕주(大功德主)가 각성대사의 제자인 ‘취미수초(翠微遂初)’대사다. 대시주자(大施主者)는 ‘동지통정대부 손춘절(同知通政大夫 孫春節)’로 돼 있고 불상을 조각한 화원(畵員)으로는 ‘명혜(明惠)’와 ‘성민(省敏)’스님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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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유물을 보관하는 후령통 보존상태도 완벽하다./구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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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령통(복장을 넣는 통)은 보존상태가 완벽했고 발원문과 함께 황초폭자 보자기로 싸여 있었다. 황초폭자에는 이 보살상의 명칭이 ‘미륵’이며 증명법사가 ‘희천(希泉)’으로 돼 있어 발굴팀은 이 스님에 대해 조사 중이다.
전적류는 모두 ‘법화경’이라 하지만 판본이 매우 다양해 조선초기 판본부터 여러 가지의 판본 수십권으로 추정된다. 목판본 다라니도 수백 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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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팀이 사찰측 입회하에 목불상을 개복하고있다./구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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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복장 조사에 참여한 유근자 국립순천대 연구교수는 “구룡사보살상은 1643년 조각승 명혜와 성민이 조성했다고 한다”며 “이는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서지학 전공, 현 사단법인 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장)도 “법화경 조선조 초기판본으로 보여진다”며 “이는 귀중한 유산으로 정밀한 감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을 총 지휘한 김포불교대학 최종남 학장(중앙승가대 명예교수)은 “이렇게 좋은 상태로 보존돼 놀랍다”고 감탄했다.
사찰측은 발원문(發願文)을 통해 불상 조성 등 불사 관련 목적과 제작자, 참여자, 시주자 등이 밝혀짐에 따라 관련보고서가 나오는대로 문화재 지정을 위한 준비도 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복장유물 조사는 태고종 전 종회의장 법담스님과 구룡사 주지 대현스님, 구룡사 신도회 고석권 회장등의 입회하에 최종남 학장, 유근자 국립순천대학교 연구 교수,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서지학 전공·현 사단법인 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장)가 개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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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팀이 개복후 유물을 기록하며 정리하고 있다./구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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