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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는 비상계엄이 어이없는 폭동 불러왔다”

프레시안 조회수  

‘12.3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또 한 번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분노한 군중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1.19 법원 폭동’이다.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무도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한국사회는 이 극단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란의 밤’에서 ‘폭동의 밤’까지 불과 한 달 반 사이 일어난 헌정사 초유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학자 세 명의 견해를 들어봤다. (☞관련기사 : “1.19 법원 폭동, 윤석열과 그 일당이 신호 줬다”, “피해자 지위 착취한 尹의 음모론적 정치, 급기야 폭동까지”)

「프레시안」이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이는 사회학 연구자로 「한국, 남자」를 쓴 최태섭 작가다. 최 작가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확신을 갖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 배경에 “한국의 사실상 최고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음모론 인증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법원에 난입한 이들이 “전략이나 정치적 비전”을 갖고 폭동을 벌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건의 우발적 성격을 함께 언급했다.

그러면서 최 작가는 우발성이 강해보이는 이번 폭동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는 과잉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예컨대 극우의 발흥이라는 거시적 흐름을 이번 사태에 직접 연결하거나, ‘안티 페미’ 성향이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마저 폭동에 부정적임에도 법원에 난입한 100여 명의 행동을 2030 남성 전반의 특성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건의 원인 이해를 오히려 왜곡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향후 대응과 관련 최 작가는 단기적으로는 “내란 수습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은 사회라는 것을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버전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 공론장이 무너진 것 등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래는 사태 발생 이틀 뒤인 지난 21일 전화로 진행한 최 작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비상계엄과 음모론 인증이 확증편향 강화”

프레시안 : 지난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어떻게 보았나.

최태섭 : 일단 어이없는 일(비상계엄)이 일어났으니까 어이없는 일(법원 폭동)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전에도 계속해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있었다. 기존에 있던 음모론적 세계관을 대통령이라는 엄청나게 거대한 한국의 사실상 최고 권력이 인증해 준 셈이니까…. 당연히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더 확신을 갖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슨 전략이 있고, 정치적 비전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요컨대, 기존에 음모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계엄이라는 걸 통해, 또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확증편향이 심해졌고 그 결과가 폭동이라는 행동까지 이어진 것 같다.

프레시안 :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도 강해 보이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태섭 : 그건 더 이상 영향이 어떻다 말할 게 아니다. 이미 생활세계의 일부다. 유튜브나 인터넷에 영향을 안 받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종류의 음모론이 창궐하고 발전하기 좋은 곳이 인터넷이다. 유튜브를 통해 극우적 세계관이나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번다. 그만큼 영향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프레시안 :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어떤 특성이 음모론의 확산에 친화적이라고 보나?

최태섭 :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반향실 효과)와 필터 버블(filter bubble, 정보 여과), 확증편향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점점 그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공론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언론이나 기타 소통 수단은 없어지고 있다. 각자 원하는 걸 찾아서 원하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반대 의견을 굳이 찾아 들으려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러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고, 그런 사람들이 또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룬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상식이 된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한 명 만났다. ‘부정선거가 있고, 대통령이 그걸 바로잡으려고 계엄까지 했는데 나쁜 놈들이 대통령을 잡아가고. 이런 나라가 어디 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21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차량이 대통령경호처 호송을 받으며 헌법재판소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탄 법무부 호송차량이 대통령경호처 호송을 받으며 헌법재판소로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발성 강해 보여…과잉 해석 경계해야”

프레시안 :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번 폭동을 볼 수 있는 면이 있을까? 유럽 극우의 발흥을 이야기하면 불평등 문제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이야기가 항상 나온다. 그런 원인이 작용한 면은 없을까?

최태섭 : 사람들이 법원에 난입해 난동을 피우는 일이 이례적이기는 한데, 아까도 말했듯 엄청난 계획이나 의도 속에서 이뤄진 건 아닌 것 같다. 국민의힘 일부와 극우 세력의 선동에 의해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건 같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고, 막는 쪽도 어떻게 막아야 될지 몰라 허둥대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물론 음모론적 세계관의 확산에 사회경제적인 면이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가령 미국에도 ‘큐어넌(QAnon)'(딥 스테이트라는 사악한 비밀조직이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트럼프가 그에 맞서고 있다는 음모론)같은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엄청나게 확산하고 실제 사회와 정치에 막대한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사람들이 세상이 돌아가는 데에 의문을 품었을 때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그 빈 공간을 음모론이 채운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런 점에서 광범위하게 이번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있을 텐데, 다만 법원 난동에 거시적 흐름을 다 소급해 적용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다.

프레시안 : 이번에 체포된 이들 중 상당수가 2030 남성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2030 남성의 극우화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다.

최태섭 : 집회 참여자의 일부가 전위대가 되는 현상은 새로운 건 아니다. 자꾸 요즘 일을 남태령의 여성과 법원의 남성이라는 식으로 나눠서 구도화해 보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장에서 경찰에) 안 잡힌 사람을 다 잡아들인다고 해도 100명이 조금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인원들이 소위 2030 남성을 대표하거나 대변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리고 소위 ‘안티 페미’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펨코(fmkorea) 같은 커뮤니티도 윤석열을 싫어하고 극우가 일으킨 이번 사태에 찬동하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법원에 쳐들어가서 난동 부리는 걸 찬동하겠나.

자꾸 2030 남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법원 난동을 왜곡하는 관점일 수 있다. 광범위하게 남성성의 문제가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는데, 너무 광범위한 진단이다. 이 사건에서 남성성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해석을 방해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내란의 빠른 수습이 급선무, 그래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지만

프레시안 : 비슷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최태섭 : 적어도 당분간은 재발 안 할 거다. 그 사람들 경찰이든 법원이든 가만두지 않을 거다. 정말 한 순간의 실수로 강하게 처벌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면 사회가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돼버릴 거고….

이런 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그걸 제대로 진압하는 게 해야 할 첫 대응이다. 둘째로 사회를 안정시키면 이런 일이 줄어들 거다. 지금은 어쨌거나 내란을 빨리 수습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내란 수괴를 빨리 탄핵하고 빠르게 재판해서 관용 없이 처벌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온전히 수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이 정치적 혼란을 제거해야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

프레시안 : 탄핵에 반대하거나 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최태섭 : 지금 아마도 모든 사회학자가 고민하는 일일 텐데 잘 안 될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고 박사까지 딴 사람들이나 돈 많이 버는 저명한 학원 강사도 부정선거 타령을 하는 판국이다.

어찌 보면, 사회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공유할 때 공통의 사실에 기반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사회라는 것을 완전히 각자만의 버전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같은 시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니까.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 공론장이 무너진 것 등등 해서 그걸 다 같이 수습해야 문제가 해결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그런 노력이나 변화 없이 한 사람을 2박 3일 붙잡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설득되지는 않을 거다. 좀 슬픈 이야기지만….

프레시안 : 말씀 감사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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